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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 목동 학원가

도일 남건욱 2007. 5. 13. 12:07
르포 - 목동 학원가
자타공인 ‘특목고 특구’…전학생 ‘수두룩’
3월 12일 월요일 오후 4시 30분. 지하철 5호선 오목교역과 목동역 사이 이른바 8단지 학원가가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한다. 각 학원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알록달록한 색깔의 학원 버스들이 오가는 빈도도 높아진다. 오후 5시, 거리는 학원 버스가 점령한 것이나 다름없다. 쉴 새 없이 오가며 각양각색의 교복을 입은 중학생들을 쏟아내듯 내려놓는다. 거리가 혼잡해지자 학원 앞마다 경광봉을 든 관리인이 나와 차량 소통을 돕는다. 아이들이 뛰듯이 학원으로 빨려 들어가고, 거리가 다시 평온해진 것은 5시 30분이 지나서였다.

같은 시각, 목동에서 원생이 가장 많다는 H학원 접수대 앞이 북적거린다. 4월 8일 있을 국제영어대회 IET(International English Test)에 접수하려는 아이들과 학부모가 줄을 서 있다. 양손에 응시료 3만3000원과 응시원서를 들고 접수를 기다리던 김은비 양(중3)은 “인터넷으로 개인 접수를 해도 되지만 그럴 경우 학원생들이 분산돼 성적 통계가 어려워진다고 해서 학원에 접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험에 대해 학원 관계자는 “대원외고에서 시험을 주최하는데, 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이후 외고 입시에서 가산점을 기대할 수 있고, 특히 대원외고에 진학하길 원하는 학생들에겐 문제 유형을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이 학원에선 응시생을 위해 학년별로 무료 특강을 개설하고 일요일도 강좌를 열고 있다.

하교 후 다시 학원으로 등원하는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11시 45분 이후. 이때 거리는 다시 북새통을 이룬다. 오후 5시의 소동은 아무것도 아니다. 학원가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근무하는 이경선 실장은 “일방통행 4개 차로 중 3개 차로를 아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 차가 점거한다고 보면 된다”면서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고 손을 내저었다.

‘쎈’ 엄마들, 목동 교육특구의 주역

중학생들이 학교수업을 마치는 평일 오후 4시 30분 이후 목동 거리는 ‘학원 전쟁터’나 다름없다. 대로, 이면도로 할 것 없이 학원 버스들이 줄지어 다닌다. 학원마다 10~20대의 버스를 운행하기 때문에 이 시간만큼은 일반 차량보다 학원 차가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 학원들은 여의도 신림동 홍은동까지 버스를 운행하며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커버 범위가 넓은 만큼 학원생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오붓한 분위기의 동네 보습학원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지명도 높은 학원들은 1000명 안팎의 학생을 ‘기본’으로 확보하고 있다. H학원 K 원장은 “원생 수는 일급비밀”이라면서 “천 단위는 당연히 넘는다”고 말했다. 단과 전문 F학원 H 원장도 “900명 선이라고 해두자”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학원생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웬만한 특목고 입시학원은 자체 레벨 테스트를 거쳐 학생을 걸러내고 있다. 특목고 진학 자체가 바늘구멍인 만큼, ‘될성부른 떡잎’만 골라낸다는 취지에서다. 일부 학원은 시험에 통과해도 학교 성적이 평균 80점에 미달하면 외고반에 넣어주지 않는다. 한마디로 ‘공부 좀 한다하는’ 아이들만 목동 학원생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목동 특목고 학원 강의실에선 다양한 거주지의 학생들이 어울려서 공부한다. 목동에 사는 아이들과 다른 지역 아이들이 고루 섞여 있다. F학원 강의실에서 만난 최슬기 양(중2)은 구로동에서 온 ‘유학생’이다. 반에서 1등, 전교 20등 내 성적을 유지한다는 최 양은 “엄마가 권해서 여름방학 때부터 다니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목동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랄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놀라운 이야기’는 주로 목동 엄마들의 교육열과 아이들의 성적 수준에 관한 것이다. 전 과목 100점을 맞는 아이들이 여럿이어서 공동 1등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 고2 수준의 수학문제를 척척 푸는 아이들을 본 경험 등을 말하며 최 양은 여전히 놀라운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른 강의실에서 만난 여상엽 군(중2)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목동으로 전학 와 현재 신목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교육 때문에 목동으로 이사 왔느냐”고 묻는 질문에 여 군은 “그런 걸로 알고 있다”면서 “목동 엄마들은 대체로 ‘쎈’ 것 같다”는 ‘평’을 내렸다. 여 군이 말하는 ‘쎈’ 목동 엄마는 “공부에 관한 한 모르는 게 없는 엄마”를 말한다. 특목고 진학 설명회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것은 물론, 학원 강사들의 자리 이동이나 평판에도 환하다는 이야기다.

목동 학원들은 ‘특목고 메카’답게 만만치 않은 수강료 수준을 자랑한다. 종합학원으로 분류되는 H학원의 경우 외고 준비반은 한 달 수강료가 60만 원선이다. 주3일, 하루 8교시 수업이 오후 5시부터 11시 45분까지 이어진다. 여름방학부터 시작되는 파이널반에 들게 되면 주6일 수강에 비용은 80만 원대로 올라간다. 단과 학원들도 수강료가 싼 편은 아니어서 F학원의 경우 주3일, 2시간 30분 수업에 월 37만 원을 받고 있다.

목동에 불고 있는 특목고 열풍은 한 발 앞서 사교육 바람이 거세게 몰아친 대치동 신드롬과 일견 유사해 보인다. 대치동 명문으로 꼽히는 대청중학교 진학을 위해 해당 학군 초등학교로의 전학에 매달리고, 멀리서도 학원 유학을 하는 모습이 그렇다. 하지만 목동을 잘 아는 이들은 그렇게 보지 않고 있다. 첫째 딸을 명덕외고에 진학시키고 중2인 둘째 아들 역시 외고 진학을 원하고 있는 김선미 씨(목동10단지 거주)는 “강남에선 굳이 외고에 가지 않아도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일반고에 갈 수 있고 빵빵한 친구 네트워크도 형성되지만 목동은 그렇지 않다”면서 “명문대 진학은 물론 평생 가는 네트워크 만들기를 위해서라면 외고에 진학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F학원 H원장은 ‘대치동 엄마와 목동 엄마’에 대해 색다른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대치동 엄마들이 진보적이라면, 목동 엄마들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릴 때 만들어지는 친구 네트워크가 평생 간다는 생각에 좋은 초등학교를 보내려고 애쓰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학원 선택 스타일이나 방식은 좀 다르다는 이야기다. 김 씨는 “대치동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학원을 이동하며 단과와 소수정예 과외를 받지만 목동은 종합학원 개념에 익숙해 학교를 마친 후 한 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편”이라면서 “심화학습에 신경 쓰는 엄마들을 중심으로 단과에 먼저 보내는 분위기가 일고 있긴 하지만 중3이 되면 거의 종합학원으로 보낸다”고 말했다.

한편 목동은 요즘 점점 심해지는 계층 구분 움직임으로 몸살을 앓고 있기도 하다. 특목고 준비생-일반고 준비생, 목동 아파트 아이-주택 아이, 아파트 소유자-세입자, 목동 단지-일반 아파트, 대형 평수-중소형 평수 등으로 마치 계층을 나누듯 신분을 구분짓는 것을 말한다. 목동 7단지에 사는 경찰 공무원 조모 씨는 “아내로부터 무리끼리 어울리고 상대편은 철저히 무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면서 “학력이나 재산 수준 등이 비슷한 샐러리맨들이 많이 사는 동네임에도 반목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글 박수진 한경비즈니스 기자 sjpark@kbizweek.com
입력일시 : 2007년 3월 21일 9시 28분 28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