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박사님이 읽은 책

공병호씨가 정리한 조선의 왕과 신하

도일 남건욱 2008. 4. 28. 20:34

정말 잘 된 책을 한권 소개하겠습니다. 신동준 씨가 집필한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살림)이란 책입니다. 근래에 읽었던 한국사 관련 책 가운데서
가장 우수작이라 꼽을 만한 책입니다. 정말 공부를 많이 한 분이군요.

1. 조선이 패망한 근본 원인은 무엇보다 왕권이 미약하고 신권이 강한 이른바
'군약신강'의 왜곡된 통치 구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조선 특유의 붕당정치에서 비롯되었다. 조선의 붕당 구도의 특징은 오직 성리학을
맹종라는 '사림세력'에 의해 유지되었다.

2. 조선의 붕당은 선조 때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선조가 신권의 주축이었던 훈구 세력을
몰아내고 사림세력을 대거 등용하면서 조선에 처음으로 붕당이 출현하였다.

3. 원래 조선의 훈구 세력과 사림 세력은 한 뿌리였다. 고려말기에 나타난 신흥
사대부들이 바로 이들 훈구 및 사림 세력의 선조였다.
당시 성리학으로 무장한 이들 신흥 사대부들은 권문세족이 권력을 세습하는 것을
비판했다. 이들 가운데 정도전 등 혁명파는 역성혁명을 통해 새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정몽주와 길재 등 개혁파는 내부의 개혁을 주장하며 혁명에 반대했다.
마침내 혁명파는 신흥 군벌로 성장한 이성계를 부추겨 최영 등 권문세족과 개혁파를
제거한 뒤 조선을 열었다.


4. 당초 정도전을 비록한 혁명파들은 역성혁명을 일으킨 뒤 성리학의 왕도 이념을
좇아 조선을 왕권보다 신권이 우위에 있는 이른바 '신권국가'를 만들고자 했으나
이내 이방원에게 제거되고 말았다.


5. 이후 조선은 태종과 세종, 세조, 성종 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유혈 정변이
일어났으나 대체로 강력한 '왕권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공신들이 나타났다. 이들 공신들이 바로 훈구세력의 주축을 이루었다.


6. 성종은 세조 때의 정난공신들이 신권세력을 형성할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길재의 학통을 이어받은 김종직 등의 사림세력을
많이 발탁했다. 이로 인해 정난공신들이 주축이 된 훈구세력은
신권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그러다 오히려 사림 세력이 훈구세력을 압도하는
신권 세력으로 부상했다.

7. 연산군 때 일어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는 사림과 훈구 세력의 왕권에 대한 도전이
위험한 수위에 이르렀음을 방증하고 있다.
그러나 무오사화로 궤멸한 사림 세력과 달린 갑자사화에서 살아남은 일부 훈구 세력은
마침내 연산군을 몰아낸 뒤 중종을 앞세워 막강한 신권을 행사했다.
이로서 왕권은 심각하게 위협하는 신권이 처음으로 둥장했다.

8. 선조 때 퇴계와 율곡의 등장을 계기로 전국의 사람들이 이들의 문하로 모여들자
마침내 과거의 훈척 세력마저 사림을 자처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방계 출신으로 보위에 오른 선조는 이런 흐름에 편승해 자신의 취약한 왕통을
보완하고자 했다.
그는 스스로 사림의 일원임을 자처하며 남아있던 훈척 세력을 모두 몰아낸 뒤 오랫동안
금지해 온 붕당 결성을 적극 수용하고 나섰다
이로써 사림세력은 김종직이 중앙 정계에 처음으로 진출한 이래 근 1백년 만에 훈척의
견제를 받지 않고 독점으로 신권을 장악했다.

9. 당시 선조는 붕당 간의 갈등을 이용해 왕권을 유지하려고 했으나 이는 커다란
오산이었다. 이미 훈척 등의 견제 세력이 사라진 상황에서 독점으로 신권을
장악한 사림 세력이 신권 우위의 성리학 이론을 포기하고 왕권에 굴복할 리 만무했다.
이로써 조선은 마침내 왕권이 신권에게 제압당하는 '신권국가'로 치닫기 시작
하였다.


10. 본래 조선의 붕당 역시 위정자들이 정치 신념을 쫓아 만든 정치 집단이라는 점에서
볼 때 서양에서 발달한 정당과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조선의 붕당은 성리학을 맹신하는
사림 세력만이 독점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서양의 정당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당시 사림세력들은 주자의 해석을 금과옥조로 삼아 이에 어긋나는 것은 모두
사문난적으로 몰아갔다. 주자의 성리학을 절대시하여 그 밖의 사상에 대해서는
이단으로 낙인찍어 가혹한 사상적 탄압을 했던 것이다.


11. 사림세력이 독점으로 붕당 구도를 형성한 이래 조선이 신권국가로 줄다음 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들이 신봉했던 왕도주의 이념이 화석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왕도주의 이념은 붕당 구도를 통해 '국론분열'과 '폐쇄주의'를 널리
퍼트렸다. 이는 의리론에 얽매인 명분주의를 더욱 강화해 조선이 주변 정세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조선의 임기응변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시점에서 일제가 침공하자 덧없이 무너져 내리고 만 것이다.
-출처: 신동준,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 살림, 2008.

 

지난 21일에 보내드린 '조선 역사로부터 배움'의 마무리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결국 한 국가의 패망 원인을 내부로부터 찾는 가 아니면 그 원인은 외부에 돌리는 가에
따라서 현재를 살아가는 태도와 후일을 기약하는 자세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봅니다.

1. 조선은 정조 사후 순조, 헌종, 철종 등 3대 군왕의 치세에 걸쳐 무려 60년 동안
왕실의 외척인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로 일관했다.
세도정치는 척신 세력이 권력의 전면에 등장하는 척벌정치가 전래의 붕당정치와
기형적으로 결합한 통치 형태를 말한다.
이는 조선의 붕당정치가 만들어 낸 최악의 통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2. 어떻게 붕당정치와 척벌정치가 결합한 세도정치가 등장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조선의 세도정치가 붕당정치의 틀 위에서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세도정치는 기본적으로 세도를 내세운 붕당정치 구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세도정치가 붕당정치와 유일하게 다른 점은 바로 왕실의 외척인 척신 세력이 세도의
주인임을 내세운 것뿐이다. 그렇다면 세도정치의 효시는 누구인가?
정조 초기의 총신인 홍국영을 들 수 있다. 홍국영은 정조의 신변 보호를 내세워 궁중의
숙위소를 중심으로 모든 정사를 독단하면서 누이를 정조의 윈빈으로 책봉해
장기집권의 기반을 굳히고자 했다.

3. 순조 이후에 등장한 세도정치는 결코 일회적인 사건으로 초래된 것이 아니었다.
이는 숙종을 비록해 영조 및 정조가 환국정치와 탕평정치를 펼치면서 척신을 중심으로
한 친위 세력에게 모든 권한을 내맡기는 잘못을 저지른 데서 비롯되었다.


4. 세도정치 동안 군왕이 허수아비에 불과한 존재로 추락하면서
관직을 사고파는 것이 거리낌 없이 이루어지고 무자비한 가렴주구가 판을 치게 되었다.
당시 지방 수령들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안동 김씨에게 상납한 거금을 보충하기
위해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했다.

5. 이로 인해 영조와 정조 때 활성화되었던 유통 경제가 다시 후퇴하고 백성들을
수령들의 가렴주구를 견디지 못해 유랑민이 되어 걸식하는 상뢍이
일어났다. 세도정치의 당사자들은 18세기부터 활발해진 유통 경제로 인한
새로운 부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이들은 모든 이권을 독점하며 부를 쌓았다. 따라서 시전 상인들 중 이들 세력과
결탁한 자들만 살아남았다. 지방 역시 관직을 사서 내려운 관원들이 아전과 결탁해
관곡을 장사 밑천으로 삼아 고리대를 일삼으로 백성들에게 높은 이자를 강제로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궁지에 몰린 백성들이 마침내 민란을 일으켜 상황을 뒤집고자
했으나 그 결과는 비참했다.

6. 조선의 패망은 기본적으로 세도정치에서 비롯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당시 홍경래 난을 비롯해 임술민란 등 대규모 민란이 자주 일어난 사실을
통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백성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마지막 보루인 군왕이 허수아비인
상황에서 백성들은 부패한 통치 권력에 직접 저항하는 방법으로 권력과 싸우다 죽는
길을 택한 것이다.


7. 조선의 왕권은 중종반정(연산군의 폐위)이 일어나 신권에 꼼짝 못하게 된 이후
사림 세력이 주도한 붕당정치가 고착화하면서 3백년 가까이 황폐플 면하지 못하였다.
그 부작용으로 나타난 현상이 군약신강이었다.

영조와 정조의 탕평노선이 왕권과 왕위를 강화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신권우위의 통치 논리 위에 성립된 유일한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인 데 따른
당연한 귀결이기도 했다.

8.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던 것 역시 엄격히 말하면 조선의 내우가
원인이었다.
일제 역시 조선을 침략한 이유가 조선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어리석은 조선의 군왕을 대신해 조선을 통치하는 것이라고 호도하였다. 일제뿐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나라가 이웃나라를 침략할 때는 반드시 이런 말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결국 나라가 망하는 첫째 책임은 바로 최고통치권자를
비롯한 위정자와 이러한 위정자를 묵인한 그 나라의 국민들에 있다.
-출처: 신동준, <조선의 왕과 신화, 부국강병을 논하라>, 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