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기사모음
세계 최초 뇌혈관장벽 규명
도일 남건욱
2009. 1. 30. 20:43
세계 최초 뇌혈관장벽 규명 | ||||
[여기에 오기까지] 미지세계에 대한 탐구욕 컸다
“눈에 보이는 제품을 만드는 엔지니어보다 보이지 않는 현상을 다루는 과학자에 대한 동경이 더 컸어요.” 그가 대학원을 약대가 아닌 KAIST 생물공학과로 진학한 이유다. 미지세계에 대한 탐구 의욕이 넘쳤던 김 교수는 미국 미네소타대 생화학과에서 효모를 대상으로 유전 현상을 관찰했다. 1985년에는 미국 하버드대 다나-파버 암연구소에서 2년 동안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본격적으로 암 연구를 시작했다. 기초적인 실험재료인 대장균과 효모를 석·박사 과정에서 다룬 것도 생쥐의 암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1987년 부산대 분자생물학과에 조교수를 거쳐 2000년 9월부터 서울대 약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 뒤 2002년 올해의 생명과학자상 수상을 시작으로 2003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2005년 호암 의학상을 수상하며 국내 뇌혈관 연구의 권위자로 자리 잡았다. [어려움을 넘어] 국내 혈관연구회 첫 설립 “대학 교수가 되긴 했지만 처음엔 박사후연구원 시절보다 연구 수준이 후퇴됐어요. 당시 부산대 분자생물학과는 생긴 지 3년밖에 안 돼 연구비도 대학원생도 없었죠. 결국 당시 여건에서 암 연구는 바로 할 수 없어 유사한 혈관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혈관은 암세포처럼 증식하고, 주변으로 이동하면서 조직을 뚫고 지나간다. 이 때문에 혈관을 연구하면 자연스레 암세포의 증식과 전이과정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김 교수는 기대했다. 수정란은 껍질을 조금만 벗겨내면 혈관의 생성과정을 관찰할 수 있어 실험 재료로 재격이었다. 게다가 달걀은 개당 100~200원의 싼 가격으로 실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세계적인 연구 그룹을 따라잡기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김 교수는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연구 그룹과 공동연구를 하기 위해선 국내 연구진도 비슷한 수준의 연구 인프라를 갖춰야 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99년께 혈관연구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포항공대 채치범 교수와 유한양행 연구소 홍청일 소장, 연세대 권영근, 권호정 교수, 강원대 김영명 교수 등과 함께 국내 혈관 연구자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2003년부터는 일본 과학자들과 공동으로 한일혈관생물의학심포지엄을 개최할 정도로 연구회의 규모가 커졌다. [나의 성공담] 뇌혈관 주변의 소통 구조를 밝혔다
“조직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이라도 주변 사람과 소통을 잘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생명의 조절중추인 뇌혈관 주변 조직도 서로 소통을 하리라 생각했죠.” 실제로 인체의 뇌혈관에는 ‘뇌혈관장벽’(BBB, Blood Brain Barrier)이라는 독특한 구조가 있다. 기억과 학습, 신체 기능을 조절하는 뇌는 한번 손상되면 그 기능을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뇌로 들어가는 혈관에서 세균이나 독성물질을 걸러내는 것이다. 김 교수는 오염물질을 걸러내는 뇌혈관장벽이 만들어질 때 SSeCK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김 교수는 “도시를 둘러싼 성문이 제 역할을 못하면 도시가 혼란에 빠지듯 뇌혈관장벽이 무너지면 뇌가 손상된다”며 “혈관과 신경계를 둘러싼 상호작용을 연구해 혈관과 신경계에 질환이 생기는 근본부터 규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뇌혈관장벽을 만드는 핵심단백질인 A-KAP12의 유전자를 없앤 제브라 피시(zebra fish) 물고기를 이용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뇌혈관 연구의 미래상] “모든 질환은 혈관과 관련돼” “우리 몸에 혈관이 도달하지 못한 곳이 없습니다. 모든 질환이 혈관과 관련돼 있어요.” 김 교수는 혈관과 관련된 대표적인 질환으로 암을 꼽았다. 다음으로 치매, 뇌출혈과 뇌경색, 눈의 실명, 당뇨병, 심장마비, 염증, 피부병 등을 말했다. 그는 “건강한 사람은 심장에서 펌프질한 혈액이 손끝, 발끝까지 혈액을 운반하지만 아픈 사람은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다”며 “산소와 영양분의 공급이 끊길 때 피부나 망막이 터지고 염증이 생긴다”고 말했다. 따라서 김 교수는 “뇌혈관과 신경계의 소통을 엿들으면 질병의 근원을 캘 수 있다”며 “뇌혈관 연구는 기초과학에서부터 신약개발 같은 응용연구까지 폭넓게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뇌혈관은 [ ](이)다 김 교수는 “뇌혈관은 인간이다”고 말했다. 사람을 사람답게 행동하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조절중추가 뇌이기 때문이다. 손이나 다리, 신장, 맹장 등 일부 기관은 손상을 받더라도 살아가는 데 불편함이 있을 뿐이지만 뇌혈관은 인간으로서의 존립기반 그 자체다. 특히 김 교수가 “독불장군은 없다”고 강조하듯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는 홀로 살아갈 수 없다. 하나의 세포와 다른 세포가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소통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생명체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김 교수가 이끄는 연구단이 뇌가 아닌 뇌혈관에 주목하는 이유다. | ||||
글/서금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symbious@donga.com (2009년 01월 3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