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기사모음

에이즈 정복, 어디까지?

도일 남건욱 2010. 7. 21. 19:35

에이즈 정복, 어디까지?

오스트리아 빈에서 18일부터 제18차 국제에이즈회의 열려

2010년 07월 20일
글자 크기+- 이메일 프린트 오류신고 RSS주소복사

최근 사이언스 등 유명 학술지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치료에 대한 연구 결과가 잇따라 소개되고 있다. 에이즈 백신 개발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에이즈 백신 연구와 더불어 케냐·에티오피아·짐바브웨 등 일부 국가의 에이즈 감염률이 2001년에 비해 최대 25%까지 낮아지면서 에이즈를 극복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나온다.

그러나 경제 위기 이후 에이즈 백신을 개발하고 에이즈 확산을 예방하기 위한 예산은 정작 줄어드는 추세다. ‘에이즈 치료 사각지대’도 여전해 국제적인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사이언스·란셋·셀 등 유명 학술지에 에이즈 연구 잇따라 게재

에이즈는 ‘인체 면역결핍 바이러스(HIV)’가 일으키는 질병이다. 몸 안에 침입한 이 바이러스는 면역세포를 감염시키거나 파괴해 신체의 면역성을 낮춘다. 에이즈가 후천성면역결핍증이라 불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7월 9일자에는 HIV가 면역세포의 일종인 ‘CD4 T세포’를 감염하지 못하게 하는 항체에 관한 연구결과가 소개됐다.

VRC01, VRC02로 명명된 두 항체는 마치 우주정거장에 도킹하려는 우주왕복선을 막는 것처럼 HIV가 면역세포를 감염시킬 때 통로역할을 하는 특정 단백질에 작용해 HIV가 면역세포에 붙지 못하게끔 한다. 두 항체는 변종 HIV 가운데 91%에 효과가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오는 25일 영국에서 발행하는 의학 학술지 ‘란셋’에는 HIV의 활동성을 낮추는 에이즈 백신에 대한 연구가 실릴 예정이다. AP통신은 19일 “캐나다 HIV 및 에이즈 전문센터 연구진이 개발한 에이즈 신약이 몸 안의 HIV 수를 급격히 감소시킨다”고 보도했다.

연구진이 임상실험에 참가한 100명을 대상으로 이 약을 복용하도록 한 결과, 다른 사람에게 에이즈를 전파할 정도의 HIV 수를 지닌 사람은 3명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에이즈 백신을 개발하려는 연구가 한창이다. 서울대 화학부 김진수 교수팀은 1월 국제학술지 ‘게놈리서치’에 세포 안에 있는 특정 유전자만 제거하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에이즈와 같은 난치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보다 앞선 2008년 8월 한양대 생명공학과 이상경 교수는 ‘작은 간섭 RNA(siRNA)’라는 물질을 붙여 에이즈 바이러스 유전자를 적은 양으로도 효과적으로 분해하는 치료 물질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셀’에 발표한 바 있다.

이런 노력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국제에이즈백신추진본부(IAVI)는 3월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낸 기고문에서 에이즈와 유사한 원숭이에이즈바이러스(SIV) 백신 개발이 진전을 보였고, HIV 표면에서 에이즈 백신과 반응할만한 새로운 타깃을 발견했다는 점을 들어 지난 몇 년 간 해당 분야 연구가 발전했다고 평했다. 점진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 제18차 국제에이즈회의…선진국의 퇴치 기금 삭감에 우려 표명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로 불거진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에이즈 백신 연구 예산이 줄고, 그나마 배정된 예산조차도 에이즈 연구보다는 보다 시급한 다른 곳에 쓰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에이즈 백신 개발연구가 미진해지는 것은 아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1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막한 ‘제18차 국제에이즈회의’에서는 “선진국이 에이즈 퇴치를 위해 앞장서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제18차 국제에이즈회의에 앞서 발표한 보고서에서 “여러 선진국들은 경제위기를 앞세워 에이즈 퇴치 기금을 줄이려 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미국은 모잠비크에서 에이즈를 예방하기 위해 지원하는 금액을 4년간 15% 정도 줄일 계획이다.

에이즈를 물리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항체·후보물질 등이 속속 발표되고 있지만 에이즈 치료의 ‘사각지대’에 있는 감염인은 여전히 많다. 의학 학술지 ‘란셋’은 20일 “HIV 양성인 약물남용자 100명 중에 오직 4명만이 HIV예방치료를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은 세계적으로 500만 명의 에이즈 감염인이 치료제를 지원받지만 그보다 두 배 많은 1000만 명은 치료제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고 추정한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국제에이즈회의 개막날 있던 영상 연설에서 “에이즈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일은 일종의 보편적 접근으로 우리에게 횃불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