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기사모음

고추 먹으면 60세에 걸릴 암 40세에 걸려

도일 남건욱 2010. 9. 7. 20:07

고추 먹으면 60세에 걸릴 암 40세에 걸려

건국대 이기원 교수팀, 캡사이신이 암 촉진한다는 연구 발표

2010년 09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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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PV1유전자를 가진 실험쥐(왼쪽)와 TRPV유전자를 제거한 실험쥐에서 캡사이신의 피부암 발생을 촉진하는 효과를 비교했다. TRPV1유전자를 제거한 실험쥐(오른쪽)에 캡사이신을 투여한 결과 종양이 훨씬 많이 발생했다. 이는 피부암 발생과정에 있어서는 캡사이신이 TRPV1유전자가 아닌 EGFR이라는 다른 표적 단백질을 통해 암 발생을 촉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성분인 ‘캡사이신’이 암 발생을 촉진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기원 건국대 특성화학부 생명공학과 교수는 6일 “청양고추 등 매운 고추를 지속적으로 다량 섭취하면 정상세포에 염증이 생겨 암세포로 발전할 수 있다”면서 “이 경우 60세에 발생할 암이 40세에 나타나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캡사이신이 정상세포에 염증 일으켜 암 유발

연구진이 쥐를 이용해 캡사이신이 정상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한 결과 캡사이신이 EGFR이라는 단백질을 활성화시켜 염증을 유도해 암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진이 실험에 사용한 쥐는 피부암에 걸렸다.

이 교수는 “캡사이신이 암 발생 속도를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처음”이라면서 “이 과정에서 EGFR이라는 단백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데 이번 연구의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암 연구에서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 못지않게 암 발생을 늦추는 연구가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고 있다. 또 이 과정에서 염증 작용은 정상세포를 암 세포로 바꾸는 열쇠를 쥐고 있는 만큼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 교수는 “염증은 ‘은밀한 암살자(secret killer)’로 불릴 만큼 암 연구에서 중요한 주제”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연구 결과에 따르면 캡사이신이 EGFR의 기능을 활성화시키는데, 이는 현재 시판중인 암 치료제의 효능을 무색하게 만들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이 교수는 “폐암 체료제인 ‘이레사’ 등 대부분의 암 치료제가 EGFR의 기능을 억제한다”면서 “항암제를 먹는 환자가 캡사이신을 복용할 경우 항암제의 효과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매운 맛 덜한 고추 먹는게 암 예방엔 유리

그렇다면 고추를 먹어도 건강엔 문제가 없는 걸까. 이 교수는 “맵고 짠 음식이 건강에 안 좋다는 통설을 입증한 셈”이라며 “맵다고 느끼는 음식은 되도록 먹지 않는 것이 암 예방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고추 자체가 암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캡사이신은 고추 속 흰 부분에만 있을 뿐”이라며 “고추는 비타민C를 많이 함유한 식품일 뿐 아니라 폴리페놀, 카로티노이드 등 인체에 유익한 성분을 많다”며 강조했다. 매운맛이 덜한 고추를 먹는 게 좋다는 것이다.

이 연구에 대해 오우택 서울대 약대 교수는 “현재 학계에 캡사이신이 암을 억제한다는 주장과 반대로 암을 촉진한다는 상반된 주장이 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실제로 영국 노티엄대 의대 연구진은 2007년 캡사이신이 암세포의 미토콘드리아에 있는 단백질과 결합해 암세포를 죽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바 있다.

이 교수팀의 연구는는 ‘암 연구(Cancer Research)’ 9월호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