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바이오앤디오스텍 정형민 사장 - “줄기세포 만병통치약 아니다”3월 중 배아줄기세포 실명치료제 임상 돌입…2016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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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ACT(Advanced Cell Technology)사는 1월 27일 안과질환을 앓고 있는 2명의 환자에게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이식한 결과 시력 회복 효과가 관찰됐다고 발표했다. 이식거부반응이나 종양 등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았다. ACT는 지난해 스타가르트병를 앓고 있는 20대 여성과 노인성 황반변성증을 가진 70대 여성에게 배아줄기세포 치료제를 이식했다. 시험 당시 두 명 모두 실명상태였다. ACT의 이 시험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배아줄기세포 관련 임상시험이다. 미국 제론(Geron)사가 2010년 가장 먼저 배아줄기세포 임상시험에 도전했지만 지난해 말 중단했다. 중간발표이긴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인간 배아줄기세포 임상시험의 결과가 발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발표는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적인 의학저널 란셋(Lancet)에 23일 게재됐다.
다양한 배아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ACT 측이 환자에게 이식한 이 줄기세포는 국내 바이오기업인 차바이오앤디오스텍(이하 차바이오)과 공동으로 개발한 배아줄기세포 치료제다. 차바이오 역시 지난해 5월 국내에서 스타가르트병 임상시험을 승인 받아 임상시험을 앞두고 있다. 이 회사의 정형민(50) 사장은 “2016년에는 상용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스타가르트병에 이어 노인성 황반변성증도 곧 승인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두 질환 모두 조만간 환자 모집 공고를 내고 3월 중에는 임상시험에 들어갈 예정인데 협력사인 ACT의 시험에서 안전성과 치료효과 등을 확인한 만큼 성공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봅니다. 임상시험 기간도 다른 질환에 비해 짧기 때문에 3년 정도면 임상시험을 마칠 수 있습니다.”
차바이오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배아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다. 스타가르트나 황반변성증 외에도 당뇨병성 망막변성증을 치료할 수 있는 세포치료제 개발도 마쳤다. 당뇨병이 심해지면 신장에서 먼 혈관이 터지기 시작하는데, 이 때문에 발이 붓거나 망막이 손상돼 실명에 이르는 합병증에 시달린다. 차바이오가 개발하고 있는 치료제는 약해진 혈관을 튼튼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배아줄기세포로 만든 혈관주위세포를 이식하는 것이다. 정 사장은 “현재 독성 시험 중인데 내년 초쯤 임상시험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공혈액이나 급성심근경색 치료제 등도 기술 개발을 마치고 전 임상 단계에 도달했다.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제 개발도 활발하다. 차바이오는 태아 뇌줄기세포를 이용한 파킨슨병 치료제의 임상 허가를 받아 올 상반기 중에 임상시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파킨슨병은 중뇌에 있는 도파민 신경세포가 점점 없어지면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노인성 뇌질환이다. 현재는 치료제가 전무한 상황이다. 유일한 치료방법은 태아의 뇌줄기세포를 이식하는 것인데, 1980년대 스웨덴 연구팀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이래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 재현했다.
하지만 1명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최소 5~6개의 태아 뇌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에 윤리 문제를 피하기 어렵고 여러 조직을 사용하기 때문에 부작용도 많았다. 차바이오는 기증받은 태아 뇌조직을 대량으로 증폭하고 이를 신경전구세포로 분화한 세포치료제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정 사장은 “한 개의 뇌조직에서 이식한 줄기세포로 최소 5만명 이상을 치료할 수 있는 세포치료제를 개발해 식약청의 승인을 받았다”면서 “현재 진행 중인 독성시험이 끝나는 6월 말이면 임상시험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차바이오는 제대혈 줄기세포를 이용한 뇌성마비 치료제를 개발해 이미 연구자 임상 1상과 2상을 마치고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제출했다. 미국 듀크대 등이 동일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나 차바이오의 임상시험이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밖에 태반 줄기세포를 이용한 알츠하이머(치매) 치료제와 지방줄기세포를 이용한 피부함몰상처, 관절염 치료제 등도 개발하고 있다.
대학·병원·기업의 협업
차바이오가 거의 모든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이유는 모기업인 차병원 그룹이 가진 풍부한 인프라 덕분이다. 차병원 그룹은 경쟁사인 다른 기업과 달리 원천 기술을 개발하는 대학과 연구소, 개발된 치료제를 임상시험에 적용할 수 있는 병원, 이를 상용화할 기업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정 사장은 “세계 최초로 종합병원 내 의약품제조시설(GMP)을 갖췄고, 줄기세포 임상시험센터도 운영하고 있다”며 “미국에서 영리병원을 운영하고, 카메라렌즈 제조업체인 디오스텍을 인수해 탄탄한 재무구조를 확보한 것도 차바이오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차병원 그룹은 2009년에 옛 분당경찰서 부지를 매입했다. 이곳에 줄기세포 치료연구센터를 지어 판교 종합연구소 등과 함께 이 지역을 줄기세포 클러스터를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정 사장은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만큼 중요한 사업”이라며 “세계인이 찾는 줄기세포의 메카로 만드는 게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차바이오 등 국내 바이오 기업 세계 무대에서 선전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줄기세포 산업은 국내나 해외 모두 신생산업이고 임상 성공사례가 상당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산업화에 필요한 제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세포치료제 개발 자체가 각국 정부의 규제와 감독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관련 시스템을 구축하고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세포치료제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도 과제다. 줄기세포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 환자를 대하는 일반 의사가 세포치료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 사장 역시 “줄기세포 치료제가 자리를 잡으려면 아직 5~10년이 더 걸려야 한다”면서 “우리나라가 줄기세포 강국으로 나아가려면 현장에서 널리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줄기세포에 거는 기대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큰 곳이다. 2005년 황우석 사건을 겪으면서 줄기세포에 대한 국민적 이해도가 높아진데다 완전한 치료제가 나올 것이란 기대심리도 적지 않다. 정 사장은 줄기세포의 미래를 낙관하면서도 막연한 믿음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직 기술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는 의미다.
“저희 연구진이 실명 치료제 개발을 앞두고 있지만 첫째 목표는 환자의 상태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황반변성증이나 파킨슨병 등은 병세를 그 상태에서 지연시킬 수만 있어도 환자의 삶의 질이 훨씬 나아집니다. 치료는 최종 목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나 가족들에게 치료제만 개발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란 환상을 심어주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줄기세포는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제 눈으로 치료의 효과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절대 그렇게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ubiquitous8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