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박사님이 읽은 책

일과 인생: 오자사 사장 이야기

도일 남건욱 2012. 3. 20. 08:56

양갱 전문점 ‘오자사’의 사장인
이나가키 아츠코 씨가 자신의 업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을 보면 사람이 한 평생을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1. 양갱을 만들다 보면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의 순간과
마주한다. 숯불에 올린 냄비에 팥소를 졸이다 보면 아주 짧은
순간 팥소가 보라색으로 빛난다.
두 눈이 멀 정도로 오묘하고 찬란한 보라색이다.
하지만 그 빛깔과 만나는 순간은 너무나 짧다.
아무 때나 마주하는 것도 아니다.
처음 그 찰나의 보라색과 마주한 후, 나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색과 만나기 위해,
그 색이 토해내는 숨소리를 듣기 위해 매일매일
양갱을 만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팥의 품질, 삶는 방법, 재료 배합, 화력 조절,
졸이는 방법까지 모든 조건을 갖추어야 할 팥소는
오묘한 보라색을 낸다.
그리고 ‘이제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다.
팥은 살아 있는 생명체다.
숨을 들이마시고, 온도에도 민감하다.
기온과 습도가 그날그날 다르고 숯 상태도
늘 같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맞추기란 매우 힘들다.


3. 그러나 나는 하루하루 최고의 양갱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오묘하고 찬란한 보랏빛 팥소를 만나는 순간을
기다린다.
그 빛이 나타날 때까지 가슴 졸이고,
그 빛이 내는 숨소리를 듣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


4. 양갱을 만들 때마다 나는 늘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그 시간을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양갱과 마주하는
순간이며, 유일하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절대로 원하는 맛을 낼 수 없다.
공장이나 가게 일, 인간관계, 바깥의 더위와 한기조차
모두 잊고, 오로지 맡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팥소를 졸여야 한다.
그렇게 팥소를 졸이고 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쾌함이 온몸을 적신다.


5. 오늘 잘 만들어졌으니 내일도 잘되겠지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내일은 그 보라색과 마주하지 못할 수도 있다.
손님들은 그 오묘한 보라색을 보지 못하지만,
나는 늘 그들이 그 오묘한 색이
만들어내는 맛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찾아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믿는다.
오묘한 보랏빛을 만나는 것, 그것이 양생을 만드는
데 가장 어려운 일이자 나를 지금까지 이끌어온
가장 행복한 즐거움이기도 하다.
-출처: 이나가키 아츠코, (1평의 기적), 서돌, pp.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