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Special ReportⅡ] 한·중 외교 어디로

도일 남건욱 2012. 4. 23. 11:08

 

[Special ReportⅡ] 한·중 외교 어디로
경제 따로 외교·안보 따로 ‘불안한 동거’
중국 부상 속 지정학적 갈등 심화…한·미 동맹 강화하며 중국과 상호 신뢰 쌓아야
김기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20년이 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십 년이 지난 느낌이다. 아마도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친밀한 감정이 유별나다는 뜻일 게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전후 처음 중국인들과 마주치게 된 한국 사람들은 중국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보인 바 있다. 한국전쟁의 원흉이고 우리의 숙원인 통일을 저지한 세력이라는 기억은 안개처럼 사라졌던 것 같다. 일이 잘 되려니, 4년 후인 1992년에는 양국이 수교했다.

1992년은 덩샤오핑이 이른바 남순강화를 시행한 해이므로 양국의 궁합은 찰떡일 수밖에 없었다. 1989년 천안문 사태라는 정치적인 소요와 자본주의의 도입으로 헷갈리던 중국 사람들의 사고를 친자본주의로 완전히 틀어놓은 것이 남순강화였으므로 그렇다는 말이다. 중국은 더욱 개방된 사회로 나갈 것이며, 따라서 돈이 있는 국가는 마음대로 투자하고, 자유무역을 지향할 테니 주변국의 협력을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중국이 필요한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던 한국의 입장에서는 중국과 경제교류를 강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 셈이었다.

상황이 그러하니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사랑이 식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관계는 냉혹한 것이어서 중국이 급속히 발전하자 양국관계에는 서서히 파열음이 일기 시작했다. 어로수역을 마음대로 침범하고 한국의 수경까지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는가 하면, 북한의 ‘불장난’에 대해서는 눈 딱 감고 모른 척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 주변국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더욱 놀라운 것이어서 과거 중화제국에 대한 예의를 갖추라는 식으로 이미 변해 버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모든 외교 사안에 대해 중국의 태도는 고압적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짝사랑을 했던 것 아니냐는 회의가 들기 시작하는 대목이다. 그나마 더 늦기 전에 그런 인식을 하게 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요즘 중국의 태도는 과거 중화제국의 대를 이었다고 생각하는 강대국의 자연스런 모습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대 중국 태도에 변화가 있다는 사실은 여론 조사를 통해서도 밝혀졌다. 한 언론사가 올해 초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2005년 20%에서 지난해에는 12%로 떨어졌다. 서울 올림픽 때부터 우리가 일방적으로 보낸 호의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임에 틀림없다. 가장 큰 이유는 아시아 최고 수준의 경제력과 정치제도를 지니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중국이 보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경제적으로 중국과는 대단히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우리의 처지를 중국인이 잘 헤아려 줄 것이며, 이에 기한 남북한 문제도 잘 풀릴 것이라는 기대가 한국인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중국이 보인 태도에 비춰 그런 바람이 충족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많은 한국 사람은 이제 알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중국의 실체, 혹은 국제관계의 냉혹함을 모르고 중국을 대했던 것일까.

한국인의 중국 호감도 떨어져
약 1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국제관계 연구는 서로 다른 차원에 있는 가치는 교환이 안 된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예컨대 안보영역과 경제관계는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하므로 이들의 가치는 서로 다르고, 그러므로 두 변수의 교환은 어렵다는 얘기다.

이 원리를 남북한 관계에 대입해 보면 한국과 북한 혹은 한국과 중국이 경제 등 비정치 분야에서 아무리 가까워도 안보문제를 풀 수는 없다는 결론이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 안보 상황은 안보의 논리에 따라 전개되는 것이므로 안보문제를 풀려면 경제가 아닌 안보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가설이 깨진 적은 현재까지 없다. 따라서 한국과 중국의 경우 경제적으로 그토록 가까우므로 중국이 북한을 잘 다독거려 한국이 원하는 안보상황을 조성하기를 바랐던 한국의 기대는 애초부터 무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국제관계 연구에는 민주자본주의 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중요한 가설이 있다. 역사적으로 민주자본주의 국가 간에 전쟁을 한 적은 없었으니 이 가설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가설을 통해 한·중 사이에 마찰이 심해지는 상황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해진다. 우선 중국은 정치적으로 분명 공산주의 독재국가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돈을 많이 벌었지만, 정치제도가 그러하므로 이로부터 영향을 받은 경제체제가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민주국가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중국 지도부는 물론 일반 중국인의 사고가 한국 혹은 일본과 비슷하다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일상생활에서도 사고가 다른 사람들은 다툴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국가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중국이 한국과 비슷한 민주자본주의 국가로 변신하기 전에는 양국의 마찰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무리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분석 틀에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환경을 대입해 보면 더욱 선명한 그림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결정적인 변수로 등장하는데, 주한·주일 미군은 미국의 위상을 상징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의 침공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음은 물론, 동북아시아 전체의 군사 균형을 잡고 있는 국가인 셈이다. 반대로 중국이라는 변수를 살펴보면 같은 상황의 대척점에 중국이 진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의 원리에 기초, 북한은 입술에 해당하므로 북한이 사라지는 경우 중국의 안보에는 구멍이 난다는 것이 중국의 생각이다. 따라서 싫든 좋든 중국은 북한을 감쌀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앞서 소개한 한국인의 절절한 열망, 즉 친밀한 중국을 통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는 희망 역시 현실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이 점차 강해지자 미국과 중국 간의 군사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서로 다른 차원의 가치가 교환될 수는 없다는 원리는 다시 한 번 이 문제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 미국과 중국이 경제적으로는 그토록 가깝지만 두 국가 사이의 안보관계는 전혀 다른 원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말이다. 최근에는 대단히 놀라운 연구 결과도 눈에 띈다. 베이징 대학 국제관계학원장인 왕지쓰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제로섬게임이며, 중국 지도부는 미국의 경제와 정치가 계속 삐걱거릴 경우 결국 중국이 승자가 될 수 있다”라는 과감한 주장을 했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실천한 이후 현재까지 중국의 유력 분석가가 미·중 관계가 충돌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적대적인 경쟁의 최종 귀결점이 중국 측의 승리일 것이라는 주장을 개진한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중국 유력 분석가 “미·중 충돌 때 중국이 승리”
결국 한국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미국과 경제적으로 가장 가까운 중국이 정면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므로 한국이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여기서 경제와 안보 두 분야 모두에서 한국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는 당연히 미국이다. 때문에 미국의 우위가 지속되는 것이 한국에는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그리 걱정할 상황은 아닌 게, 다음과 같은 이유로 중국이 미국의 적수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선 군사력이라는 관점에서 중국은 아직 미국의 상대가 아니다. 군사력은 경제와는 달리 짧은 시간에 강화될 수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전문 용어로 ‘축적(stock)’의 개념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데, 오랜 세월을 거치며 군사기술과 군사규모를 차곡차곡 쌓아가야만 한다는 뜻이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군사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물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군사력 증강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특히 소련이라는 군사강국과 정면으로 맞섰던 냉전 시절 미국의 군사력은 첨단의 기술로 무장하게 됐다. 그 유산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중국은 과연 미국이 경험한 군사력 강화 과정을 밟은 적이 있는가.

 


과거 소련은 국가 경제력의 상당 부분을 군사력 강화에 쏟아 부으며 군사적으로는 미국과 대등한 척 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경제가 파탄에 이르며 결국 멸망이라는 최후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중국은 과연 과거 소련처럼 국민을 굶기면서 군사력 증강을 위해 경제를 희생시킬 수 있을까. 그런 수순을 밟는 즉시 경제가 침체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작동하는 한 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경제 분야만을 따로 떼어 놓고 보아도 상황은 비슷하다. 규모는 어느 정도 성장했다고 볼 수 있지만, 질적으로 중국 경제가 강성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등 비서구권의 경제발전사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시장원리를 따르지 않는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 경제는 결국 수확체감의 법칙에 걸려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불균형 성장이 원인인데, 수출 주도형 제조업만을 국가가 의도적으로 키운 결과 금융을 비롯한 서비스 산업은 뒤처질 수밖에 없고, 국가의 과보호 때문에 기업의 기술력 또한 특정 단계를 지나면 한계를 보인다는 것이 이유로 지목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그럴진대, 국가가 주도하는 정도를 넘어 정부, 더 정확하게는 공산당이 모든 경제 사안에 개입하는 국유산업·국영은행 중심의 경제체제가 구조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지정학적 측면에서도 중국의 약세는 두드러진다. 우선 중국의 주변국 중 중국 편을 들 수 있는 국가는 북한밖에 없다. 이 말은 중국의 팽창 의도가 확인되는 경우 주변국 대부분은 중국을 견제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재작년 이후 이 가정이 현실화됐다. 중국이 베트남을 위협하자 베트남은 항구를 개방, 미국과 인도 함대를 끌어들인 적이 있다. 한국 역시 연평도 포격과 같은 안보 위협이 발발하자 중국의 반대에도 미국 제7함대 본진을 초대해 한·미 합동 훈련이라는 강수로 맞대응 했다. 중국이 일본을 위협하자 센가쿠 열도 동쪽에서는 전후 최대 규모의 미·일 합동 군사훈련이 실시됐다. 중국의 태도가 거만해지자 싱가포르는 미국이 최근 개발한 스텔스 함정의 상주를 허용했으며, 호주 역시 미국 해병대의 자국 내 주둔을 양해했다. 대만 또한 미국에 더 좋은 무기를 달라고 아우성이다.

이 밖에도 많은 사례가 있지만 중국이 움직이면 주변국 역시 정면 대응한다는 점은 분명해진다. 이는 중국의 지정학적 열세를 확인하는 것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최근의 국제환경이 과거 중화제국 시절과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이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지정학적인 열세를 활용만 해도 전략적 이득을 얻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 모든 환경은 한국민에게 다음의 중요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한·미관계가 돈독하면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