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고준위 방폐장 지금 지어도 늦다

도일 남건욱 2012. 8. 23. 10:29

고준위 방폐장 지금 지어도 늦다
김영욱


역사가 전하는 교훈 중 하나가 인류는 과거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 경고다.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하고 남은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MB정부의 대처를 보면 이 교훈은 어김없이 옳다.2003~2004년 전북 부안군 위도에서 있었던 폭력사태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당시 정부는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하기 위한 방폐장을 건설하려고 했다. 강제로 부안군의 팔을 비튼 것도 아니다. 부안군 스스로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고, 정부는 부지로 선정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이 시작됐다. 환경 단체가 집결했고, 급기야 폭력사태까지 일어나는 바람에 부지 선정은 결국 무산됐다. 그렇다고 방폐장을 포기할 순 없는 일. 당장 급한 게 원전 작업자가 사용했던 작업복이나 휴지, 장갑 등의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이었다.

이전까지는 각 원전에 임시 저장했지만 2008년부터 포화상태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부는 편법을 썼다. 사용 후 핵연료 같은,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한 고준위 폐기물을 따로 떼냈다. 중·저준위부터 먼저 처리하고 고준위는 나중에 추진하기로 바꿨다. 2005년 경주 방폐장 건설이 그래서 결정됐다. 방폐장건설 문제를 검토한 1986년부터 따지면 무려 30년 걸렸다는 얘기다.

이제 남은 건 고준위 폐기물 처분이다. 고준위는 중·저준위보다 훨씬 민감하다. 게다가 지금은 더 그렇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문이다. 엄청난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고준위 방폐장을 건설하지 않을 수도 없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핵연료 재처리가 성사되면 모를까, 그렇지 않는 한 방폐장은 반드시 건설해야 한다. 원전을 가동하는 한 사용 후 핵연료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각 원전에 임시 저장하고 있다.

문제는 이 시설도 조만간 꽉 찬다는 점이다. 대략 2016년부터다. 2016년 고리원전, 2018년 월성원전, 2019년 영광원전의 순서다. 불과 4년 남았으니 시간이 촉박할 수밖에 없다. 건설하는 데만도 몇 년 걸린다. 과거의 예로 봐 부지 선정 작업도 몇 년 걸릴 게 자명하다. 역산해보면 지금 논의해도 늦다. 이걸 정부가 모르고 있는 건 아니다. 임시 저장 시설을 늘리고 있다. 그래 봐야 포화시기를 몇 년 더 늦출 수 있을 뿐이다. 해법은 고준위 방폐장 건설 밖에 없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 문제가 공론화돼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정부는 내부 논의만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골치 아픈 문제니 다음 정부로 넘기겠다는 계산이 아니라면 이럴 순 없다. 부안의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니 하는 얘기다. 코리안 루트니, 선진국 진입했다느니 하는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

이보다는 사용 후 핵연료를 어떻게 할 지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사용 후 핵연료를 길바닥에 내버리겠다는 참이 아니라면 말이다. 당연히 대선 주자들도 이 문제를 정식으로 거론해야 한다. 이 정부와 다음 정부의 문제기 때문이다.이 문제는 친핵이냐, 반핵이냐는 논쟁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반핵론자의 주장대로 원전을 지금부터 줄여나간다고 해도 핵 폐기물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당연히 임시저장시설은 곧 포화상태가 된다. 방폐장은 어차피 건설해야 한다는 얘기다.원전은 한번 사고가 나면 대재앙일 정도로 위험하지만, 반면 편리하고 값싼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중 후자의 편익만 잔뜩 누려왔다. 전기를 싼 값에 쓰는 것에만 열중했을 뿐, 그에 따르는 책임은 애써 외면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도 회피한다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건 대재앙뿐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지금 시작해도 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