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적더라도 더 오래 일하고 싶다”
“월급 적더라도 더 오래 일하고 싶다”
대한민국 50대는 산업화의 역군이자 민주화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50대가 20~40대 때 흘린 땀은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하는 자양분이 됐다. 하지만 “내 삶이 팍팍하다”고 말하는 50대가 주변에 흔하다. 퇴직을 했거나 앞둔 대다수 50대는 자녀, 노후 걱정에 선잠을 자는 날이 많다. 아직 젊고, 더 일해야 하고, 일하고 싶지만 현실은 자꾸 그들을 사회 밖으로 내몬다. 50대가 말하는 50대의 삶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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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서구에 사는 최기식(가명·58)씨는 국민은행 지점장을 지내다 4년 전 명예퇴직 했다. 퇴직 후 그는 1년 동안 사업 구상도 해보고 프랜차이즈 설명회도 다녔다. 하지만 모두 포기했다. 자금이 너무 많이 들어서다. 자산은 꽤 있었지만, 부인 병원비와 자녀학비, 생활비 등으로 썼고 그나마 남아있던 4억7000만원짜리 아파트(53평형)를 정리해 1년 전 20평대 아파트로 옮겨 혼자 살고 있다. 3년 전 부인과 사별했다. 최씨는 1년 전부터 한 중소기업에서 운전사로 일한다. 월급은 100만원이 조금 넘는다.
그는 “고등학교 동창들 중에 대기업 임원도 있고, 사업해서 잘된 친구도 있다. 나도 한때 그들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격차가 크다”고 말했다. 자신이 운전사로 일하는 것을 보고 친구들이 “그렇게 사정이 어렵느냐”고 묻지만 최씨는 “노느니 이렇게라도 소소하게 버는 게 즐겁다”고 했다. 경제적인 어려움보다 일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시간이 싫다는 것이다.
최씨는 퇴직금 중 일부를 성남시 분당에서 직장 생활하는 맏딸(32)이 오피스텔(1억4000만원) 구입할 때 절반 정도 보태줬다. 아들(30)은 올해 초 취직해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월세가 많이 나가서 걱정이다. 더 큰 걱정이 있다. 아들이 여자 친구와 결혼하고 싶다고 하는데 결혼 자금이 부족하다.
그는 부인과 사별한 후 형수 소개로 서너 차례 재혼 자리를 알아봤다. 하지만 만나는 여성마다 첫 질문은 “재산이 얼마나 있느냐”였다. 그는 “우리 나이가 돼서 재혼하려면 자식들 직업은 안정됐는지, 모두 출가했는지 여부가 재혼 성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한 여성으로부터는 “자식들 결혼부터 시키고 여자 찾아보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는 재혼을 포기했다.
이른 퇴직, 긴 노후가 불안의 핵심
“제 또래들과 얘기해 보면 대부분 최소 70세까지는 일하고 싶어하는데, 막상 퇴직을 하면 재취업이 너무 힘들어요. 50대들의 경험이 사장되는 것 같아 사회적으로도 낭비라는 생각이 들고요. ”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에 다니다 얼마 전 퇴직한 황기수(가명·55)씨의 말이다.
그는 요즘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마땅한 자리가 나오지 않아 불안하다. 그는 “50대는 퇴직 전후로 심리적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소득은 40대 들어 은퇴 직전에 가장 많은데 그 상태에서 은퇴하게 되면 갑자기 소득이 없어지면서 생활 수준이 이전하고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황씨는 “우리 같은 중산층 대부분은 집 한 채씩 갖고 있는데 집값이 많이 떨어지면서 집을 팔거나 집 크기를 줄여서 남은 돈으로 장사를 하든지, 생활비를 준비하려는 친구들이 많다”고 전했다. 황씨는 “일자리는 정부에서 만사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창업하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사업하다 망하면 노후가 비참해질 것이라는 불안이 커서 리스크를 감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년을 더 늘려주면, 월급은 적게 받더라도 상관 없어요. 일이 있느냐 없느냐는 단순한 금전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 못 하느냐의 문제죠. 은퇴라는 것은 사회에서 퇴물이 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죠.”
산업은행에서 임원으로 일했던 나국환(59)씨는 현재 한국경영자 총연합회에서 법정관리인 양성 과정을 밟고 있다. 과정을 이수하면 법원 파산부가 선임하는 법정관리인이 되거나, 법정관리 회사의 감사로 취업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나씨는 “양성 과정에 들어가는 데만 경쟁률이 7대 1이었다”며 “금융기관에서 일했거나 기업 임원, CEO 출신이 많다”고 말했다. 물론 과정을 이수해도 수강생 75명 중 3분 1만 취업이 된다. 감사로 취업하면 월급은 150만원 정도.
두 회사에 적을 두면 300만원 정도 벌 수 있다. 나씨는 “퇴직 전에 비하면 적은 월급이지만 재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인 상황에서 경쟁은 치열하다”고 말했다. 그는 퇴직 전부터 이 프로그램을 고려하고 있었다고 했다. 나씨의 최대 고민은 역시 자녀 교육이다. 그는 “산업은행에서 연봉은 넉넉한 편이었지만, 두 자녀를 키우고 사교육비가 많이 들다 보니 노후대비를 위한 저축 여력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녀가 결혼을 하면 전세 보증금 등 돈이 굉장히 많이 들고, 자녀 둘 이상을 둔 집은 거의 집을 팔아서 결혼을 시켜야 한다는 지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50대는 남은 30~40년의 여생을 일 하지 않고 소득 없이 사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크다”며 “한 달에 150만원만 받을 수 있어도 무조건 일자리를 갖고 싶어할 것”이라고 전했다.
5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김대범(59)씨는 서울 송파구에서 부동산 중계업을 한다. 충주 출신인 그는 차남이지만, 형이 중학생 때 죽고 줄곧 장남 역할을 했다. 상고를 졸업한 그는 조흥은행에 취직했다. 좋은 직장이었다. 돈도 제법 모았다. 그는 “1990년대 말까지 재산이 4억~5억원 정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여파로 회사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두고 자전거 대리점과 가구점을 운영했다. 아내도 인테리어 소품점을 운영했지만 재미를 못 봤다. 김씨는 2004년 공인중개사 공부를 시작해 2006년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개업했다. 처음 1~2년은 벌이가 제법 괜찮았다. 하지만 이후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면서 지금은 겨우 임대료만 내는 수준이다. 집값 하락 충격도 그대로 받았다.
2007년 용인 죽전에 3억9000만원을 주고 아파트를 샀는데, 지금은 2억5000만원까지 떨어졌다. 그는 “지난해 딸을 시집 보내는데 8000만원 정도를 썼고, 이제 아들도 보내야 하는데 여유자금이 3억원(송파구 집 전세금) 정도 밖에 없어서 이마저 쓰고 나면 우리 부부 노후가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재산을 더 모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가 2009년 돌아가실 때까지 8년 동안 요양원에 모셨다. 한 달에 60만~70만원 정도가 나갔다. 교육비에도 허리가 휘었다. 그는 “애들 키우는 동안 거의 매달 100만원 이상씩 교육비가 나가다 보니 한창 벌 때 저축을 많이 못했다”고 했다.
그는 “은행을 나온 직후만 해도 좋아하는 골프를 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12년 된 소나타 차를 바꾸고 싶어도 부인에게 말을 못한다”며 말했다. 그는 “다른 벌이를 찾고 싶어도 늘 넥타이 메고 일했던 터라 자존심도 상하고 험한 일을 할 자신이 없다”며 씁쓸해 했다.
1960년생인 구효식(53)씨는 택시를 몬다. 결혼이 늦어 세 자녀는 19살, 17살, 13살이다. 전남 광양에서 태어난 구씨는 스무 살 때 이삿짐 센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10년 만에 직접 이삿짐 센터를 열었다. 당시 6000만원이나 빚을 지고 시작했지만 장사가 잘 돼 1년 만에 빚을 갚고 자리를 잡았다. 15년 동안 이삿짐 센터를 운영하면서 자산은 10억원 가까이 모았다.
화근은 주식 투자였다. 2000녀대 초반 지인 소개로 주식에 손을 댄 그는 매년 1억~2억원씩 손해를 봤다. 구씨는 “본전 욕심에 더 무리하게 투자를 했고, 자산을 많이 까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주식에서 손을 떼고 개인택시 면허를 샀다. 현재 월수입은 250만원 정도지만 갈수록 줄어들어 걱정이다. 자산은 3억원짜리 아파트 한 채와 예금 6000만원이 전부다. 구씨는 요즘 절로 한숨이 나온다. 첫째가 올해 대학에 입학했고, 둘째도 내후년에 대학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큰딸 첫 등록금부터 부담이고 둘째가 대학에 갈 때면 막내가 고등학생이 돼서 교육비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첫째, 둘째가 딸이라 군대도 안 가니 쉴 틈이 없다”고 했다. 구씨는 “지금도 애들 교육비가 생활비의 절반인데 대학등록금까지 겹치면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노후 대비는 꿈도 못 꾼다. “그는 월 250만원 찍으려면 하루에 14~15시간 정도 운전해야 하는데, 이러다 내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고 토로했다. 그는 “형편이 빠듯해진 후로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용돈 한 번 마음껏 드린 적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