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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공약, 애매한 공약, 나쁜 공약 가려라 인수위원회 경제팀의 과제

도일 남건욱 2013. 1. 17. 15:40


좋은 공약, 애매한 공약, 나쁜 공약 가려라
인수위원회 경제팀의 과제
박성민·김태윤 기자
부채탕감·무상교육·공공 일자리 확대 공약 재검토 필요…‘모든 공약은 잊어라’ 격언 새겨야


조사마다 편차는 있지만 대략 우리나라 역대 정부의 대통령 공약 이행률은 40~45% 정도 된다. 이를 탓하기만 해선 곤란하다. 때로는 지키지 않거나 빨리 폐기하는 게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는 공약도 있다. 이명박 정부의 ‘747 공약’ 같은 게 그런 예다.

산고 끝에 진용을 갖춘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할 일은 차기 정부 국정운영 방향을 설정하고 선거 과정에서 내놓은 공약 가운데 우선 과제를 선정하는 것이다.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공약(좋은 공약), 재검토해야 할 공약(애매한 공약), 폐기하는 게 나은 공약(나쁜 공약)을 구분해야 한다.

대통령 공약은 이해관계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이맘쯤 되면 지방자치단체나 이익단체의 로비도 치열하다. 한쪽을 위해 공약을 추진하면 다른 쪽은 피해를 보거나, 공약을 시행하는 효과는 없이 정부 재정만 낭비하는 경우도 흔하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부동산 취득세 감면 연장이 좋은 예다.

박근혜 당선인은 부동산활성화 대책 공약으로 취득세 감면 연장을 공약했다. 주택을 거래할 때 내야 하는 취득세를 줄여준다는 것인데, 이 조치는 2012년 9~12월 시행됐다가 지난해 말 정기국회에서 법안 처리가 되지않으면서 재연장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자 새누리당은 박 당선인 공약임을 내세워 올 1월 임시국회에서 취·등록세 감면 혜택 연장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방침을 정했다. 부동산 업계는 환영했다.

문제는 취득세 감면이 부동산 거래를 늘리는 데 효과가 미미할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지방 세수를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취득세 감면을 1년 연장할 경우 지방 세수는 약 2조9000억원 줄어든다. 실제로 2011년 3~12월 취득세 인하 조치 때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 세수 부족분 2조1000억원 가량을 보전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취득세 감면 조치는 ‘반짝 효과’에 그쳤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2년 9월 취득세 감면 조치 시행 이후 강남 3구 거래량은 늘었지만, 수도권 전체 거래량은 줄고 아파트값도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부채 탕감 공약 도덕적 해이 우려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집은 400쪽에 달한다. 큰 틀의 공약만 20대 분야 201개다. 이 모든 공약을 다 지킬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인수위는 어떤 원칙에 따라 공약의 우선순위를 매겨야 할까.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민주화 관련 공략을 우선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계부채를 탕감하는 공약은 재고해야 한다”고 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18조원의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해 322만명의 대출이자 부담을 낮춰주고, 부채 규모가 큰 대출자의 빚 50~70%를 깎아주겠다는 공약이 그런 예다. 전문가들은 박 당선인의 가계부채 공약에 특히 재검토하거나 폐기해야 할 것이 많다고 조언한다.

신용회복위원회의 ‘프리워크아웃제’ 적용 대상을 확대(현행 채무불이행 기간 연속 30일 초과 90일 미만→1년 이내 연체일수 총 1개월 이하)해 다중채무자의 조기 신용회복을 지원한다는 공약도 정부가 빚을 해결해준다는 기대감만 확산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강 교수는 “경제민주화 관련해서는 문재인 전 후보 측 의견을 일부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박근혜 캠프에는 금융감독과 관련해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며 “문 캠프 공약이 모두 맞는다고 할 수 없지만 참고한다면 분명 보완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문 전 후보는 금융감독체계 이원화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예금자, 투자자 등 금융 수요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일하는 가칭 금융소비자보호원 같은 기구를 만들겠다”고 했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민주화가 우선 추진해야 할 과제”라며 “어차피 할 것이라면 빨리 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관련 주요 공약은 골목상권 보호, 공정거래위원회 전속 고발권 폐지,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도입, 대기업 지배주주의 중대 범죄에 대해 사면권 제한, 일감 몰아주기 금지, 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한 신규 순환출자 금지,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 금산분리 강화 등이다. 

아울러 하 교수는 “가계 부채를 탕감해 주는 공약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자칫 일부 계층에 특혜를 준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형평성에 위배되지 않는 방향을 찾을 때까지는 무리하게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을 조기에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정표 교수는 “신규순환 출자를 금지하고 금융계열사 의결권을 기존 15%에서 5% 내로 낮추는 공약은 당장 추진해야한다”며 “임기 1년이 넘어가면 사실상 공약 실현은 힘들다”고 했다. 

대기업의 저항이 거세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당선인의 의지가 강한 공약은) 임기 초반 가장 힘이 강력할 때 추진해야 그나마 성공 가능성이 있다”며 “문재인 후보가 주장했던 기존 순환출자까지 금지하는 방법과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재도입 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수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경기부양책과 관련해 최 교수는 “재벌의 경제활동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정책은 이미 이명박 정부에서 실패를 겪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경제민주화 공약 중에서 재벌 총수 일가를 엄벌한다는 내용의 공약은 말 자체가 틀렸다”며 “재벌 총수 엄벌은 사법부의 권한이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재벌 총수라고 엄벌하는 것은 형평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의 표와 인기를 얻기 위한 하나의 발언일 뿐 효과도 실행 방법도 모호하다”고 했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부동산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정책을 우선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조언했다. 조 교수는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절대로 좋아질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박 당선인 공약 중 특히 ‘하우스 푸어, 렌트 푸어’ 공약에 허점이 많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 당선인은 후보 시절 이른바 깡통아파트를 보유한 집주인이 주택의 일부 지분을 캠코 등 공공기관에 50%까지 매각하고 매각 대금으로 대출금을 갚도록 유도하는 보유주택 지분 매각제도를 공약을 내걸었다. 이때 집주인은 매각한 지분대금의 6%를 임대료로 내고 거주할 수 있고, 소유권을 유지할 수 있다.

예산 많이 드는 사업은 신중해야하지만 이 제도는 일부 은행이 ‘신탁 후 임대’상품을 통해 시중에 내놨지만 실적은 거의없었다.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도 마찬가지다. 이 제도는 전세금이 없는 세입자 대신 집주인이 집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고 이자는 세입자가 낸다는 것이다. 대신 세입자에게는 세제혜택을 준다. 하지만 세금 조금 줄이려고 집을 근저당 잡혀 대출을 받아줄 집주인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예산이 많이 필요한 사업들은 신중히 검토하거나 보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국가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한 민간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1조5000억원 정도가 소요되는 기초노령연금 도입, 지속가능하지 않으면서 1조원 이상 재원이 필요한 공공부문 청년층 일자리 확대, 7조원 정도가 필요한 반값등록금 지원 등 공약은 서두르기 보다는 확실한 재원 확보 방안을 마련해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복지와 관련해서 예산을 쓸 때는 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는 사업을 우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 교수는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공약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박근혜 당선인은 ‘맞춤형 임신·출산비용 지원 확대’ ‘고위험 임산부 지원 강화’ ‘임신·분만 취약지역에 대한 의료지원 확대’ ‘임신 기간 근로시간 단축제 도입’ ‘셋째 아이 대학등록금 전액 지원’ 등을 출산 관련 공약으로 내놨다. 조 교수는 “다른 복지들도 우선순위를 둬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의료의 경우 중증질환이나 희귀질병을 가진 사람들을 우선 도와야 한다”며 “이런 환자가 발생할 경우 가계가 파산할 우려가 있고, 가계가 파산하면 그 충격을 사회가 받게 된다”고 했다.

최종찬 건전재정포럼 공동 대표(전 건설교통부 장관) 역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우선 펼쳐서 젊은 사람들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며 “저출산 관련 복지는 단순한 복지를 넘어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부분이기 때문에 집중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대신 “무상교육은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동근 교수도 “이른바 보편적 복지라면서 추진하고 있는 상당 수의 공약은 시기를 늦추고 적절한 타이밍을 봐야 한다”며 “특히 무상교육과 관련한 공약은 폐지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박 당선인은 고교 무상교육을 단계적으로 실시해, 수업료와 입학금, 교과서 대금 등을 무상 지원한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2014년부터 매년 25%씩 확대해 2017년엔 전면 무상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김유찬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양도차익 과세 확대, 금융소득 종합과세 확대, 비과세 감면 축소 등 ‘조세’ 관련 공약들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증세 폭은 작지만 점진적으로 더 늘려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장기적으로 계속 증세 정책을 펼쳐 국가 재정을 튼튼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복지와 소득분배에 집중되어 있는 패러다임을 성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전한 전문가들도 많았다. 기술, 사람, 과학, 창업 관련 정책을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조동근 교수는 “당선인과 인수위는 무엇보다 5년간 어떤 정치를 펼 것인지 큰 틀을 구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며 “큰 틀을 잘 짜면 나머지 세부 정책은 자연스럽게 결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당선인이 후보 당시 약속은 꼭 지킨다는 말을 강조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약속을 잊어야 할 시기”라며 “‘모든 공약은 다 잊어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선거 전의 공약은 다소 과장되게 마련이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진정 국가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