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오경’과 ‘랍비’가 지력의 원천 『유대인 이야기』
‘모세오경’과 ‘랍비’가 지력의 원천
![]() ![]() |
‘떠나는 나라에는 몰락을, 이주한 나라에는 번영을’. 유대인의 유랑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할 수 있는 문장이다. 유대인은 어떻게 경제·문화·사회·의학 등 분야를 막론하고 굵직한 족적을 남겼을까? 이 같은 질문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나라 차원에서도 우리가 깊이 관심을 가질 만한 가치가 있다. 홍익희가 쓴 『유대인 이야기』는 이런 질문에 대해 해답의 실마리를 주는 책이다.
유대인의 역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난 그 자체였다. 그들은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박해를 받았다. 토대를 닦은 나라에서 추방돼 또 다른 나라를 찾아가는 일이 일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고난 역사에서 첫 번째 강제 집단 이주는 기원전 721년 북 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에 패배한 후 바빌론으로 추방된 사건이다. 그리고 두 번째 강제 추방은 66년과 132년에 발생한 1차 유대-로마전쟁과 2차 유대-로마전쟁으로 고대 유대 역사가 끝난 사건이다.
로마제국과 두 번의 전쟁으로 유대인들은 모든 걸 잃고 세상을 떠돌게 된다. 로마군과 맞붙은 1차 전쟁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110만명이 죽었다. 2차 전쟁에서 58만명 이상이 죽었다. 로마제국과 두 차례 전쟁에서 국민의 3분의 2가 목숨을 잃었다. 나머지 사람은 노예로 잡혀가거나 나라를 등지고 방랑길에 올랐다.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진 유대 민족은 세계 각지에서 국가적 조직체가 아닌 랍비 중심의 신앙 공동체로 살았다. 이를 ‘흩어진 사람’ 즉 ‘디아스포라’라고 부른다. 2500년 넘게 세계 각지에 흩어진 사람들이 어떻게 민족과 신앙공동체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단결해서 살아남을수 있을까? 이 점도 일반인들에게 놀라움 그 자체이다. 그들은 역경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를 갖고 영광의 역사로 바꿨다.
그러나 여전히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도 많다. 목회자의 설교를 들을 때면 은연중에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아직도 율법에 매여 사는 유대인을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인류 역사에 크게 기여한 민족임에 틀림없다.
일찍이 『유대인의 역사』를 집필한 폴 존슨은 그들의 독창성을 두고 “현대 세계의 정신적인 산물 대부분은 유대인의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대다수 인간들이 경험하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를 몸소 경험했다는 점에서 “유대인은 인간 삶의 모범이자 전형이었다”라고 평가했다.
그들의 저력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저자가 소개하는 한 가지 사례가 저력의 원천을 짐작하게 한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암기하고 배우기 위해 세 살부터 히브리어를 배운다. 특히 열세 살에 성인식을 치르는데, 이때는 이른바 ‘모세 5경’인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 중 한 권을 골라 반드시 암송해야 한다. 또 성인식에 참석한 사람을 대상으로 구약을 토대로 강론해야 한다. 이런 전통은 유대 민족의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는가? 열세 살 짜리 어린이가 강론을 하는 장면을 말이다. ‘토라’라 불리는 ‘모세 5경’을 갖고 어린이들이 행하는 토론과 학습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들었던 적이 있다. 이런 지적 훈련을 어린 시절부터 받는 것이 유태 민족의 오늘을 가능하게 만든 요인 가운데 하나다.
다른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기독교와 유대교의 차이다. 개신교나 가톨릭에서는 모두 성직자가 있다. 그러나 유대교에는 성직자가 없다. 학자인 랍비가 있을 뿐이다. 랍비는 공부를 많이 해서 아는 게 많기 때문에 유대인 지역사회의 지도자 역할을 하지만 그들은 성직자가 아니다.
유대교에서는 종교를 지키는 일이나 종교의 교리를 설교하는 사람이 목사나 신부와 같은 성직자의 몫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직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종교를 지킬 의무와 책임을 공동으로 나누어 진다. 성직자가 없기 때문에 유대인은 스스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 단지 랍비는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유대인의 힘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지력에서부터 나온다.
언젠가 케이블 채널에서 이스라엘의 유치원 교육을 다룬 적이 있다. “하느님이 인간을 모두 다르게 만들었는데 왜 질문에 대한 답이 꼭 같아야 하는가”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교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때 나는 “저 사람들은 저렇게 사람을 키우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주도적으로 자기 생각을 하는 교육은 이스라엘 정규 교육의 특징이지만 그 뿌리는 토라 교육에서 비롯된다.
이스라엘 군대가 남다른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이나 이스라엘에 유독 창의적인 벤처가 많이 나오는 것, 유대인 가운데 걸출한 인물이 많이 나오는 것은 이런 배움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느님은 1000가지 예물을 바치는 것보다 1시간의 토라 교육을 더 좋아한다’는 말은 유대 민족의 힘을 확인해준다.
저자는 이 책에 정성을 많이 쏟았다. 저자는 내용을 충분히 소화한 후 유대인의 성장사와 비결을 찬찬히 설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