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경제기사모음

세계의 전기차 중심지로 떠오르는 제주도

도일 남건욱 2013. 3. 14. 12:36


지형·날씨·인프라 3박자 갖춰
세계의 전기차 중심지로 떠오르는 제주도
세계적 자동차 브랜드 제주 주목 … 하반기엔 국내 첫 민간 보급 시도


전기자동차는 자타가 공인하는 미래 수종사업의 하나다. 수많은 국가와 기업이 이 사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물론 판도를 바꿀 정도는 아니다. 화석연료 자동차 산업이 워낙 큰데다, 전기차 분야의 해결과제가 많아서다. 더 많은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결과가 불투명한 사업에 막대한 자금을 쏟는 것은 전기차의 무한한 성장잠재력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자동차 업계도 오래 전부터 전기차 개발과 인프라 구축에 힘쓰고 있다. 아직 결과는 미지수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좀 다르다. 작지만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 미래 전기차 중심지로 부상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환경부가 2011년 4월 제주도를 전기자동차 선도도시로 선정한 이후 차량 보급과 활용, 인프라 구축이 활발하다. 전력의 최적 활용을 기하는 ‘스마트그리드’ 사업과 연계돼 다양한 실험도 한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239대)와 충전기기(386대)가 보급됐다. 주로 공공기관 위주지만 올 하반기부터는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민간에 보급한다.

전기차·충전기기 전국에서 가장 많아


주목할 점은 제주도에 보급된 전기차가 실생활에 쓰인다는 것이다. 최근 수년 간 전국에 많은 전기차가 보급됐다. 하지만 대부분은 전시용에 가깝다. 전국 각지의 시청이나 도청 구석에는 쓰지도 않는 전기차가 한두 대씩 세워져 있다. 

제주도는 다르다. 도청 소속 공무원에게 전기차를 배차해 업무에 사용한다. 도청한 쪽에 마련된 충전기 주변에는 6~7대의 전기차가 배치돼 있다. 그중 4대는 충전기가 꽂혀 있다. 전기차를 빌려주는 업체도 있다. 아직 시험 단계라 요금은 받지 않는다. 사전에 신청을 받아서 차량을 빌려준다.

다른 지역에 비해 제주도의 전기차 활용도가 높은 건 섬‘ ’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현재 전기차의 가장 큰 문제는 인프라 부족이다. 주요 거리마다 충분한 수의 충전소를 갖추기 쉽지 않다. 현재 기술로는 최상의 조건으로 달려도 200km를 가기 힘들다. 경사와 주행습관(가속·급정지)에 따라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의 편차도 크다. 운전 중 언제 차가 멈출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해결하기 전에는 전기차 보급에 한계가 있다. 

제주도 면적은 약 1000㎢다. 한번에 이동하는 최대 거리가 길지 않다. 일정 수준 이상의 충전 시설을 보급하면 차가 멈출 수 있다는 불안감을 덜 수 있다. 제주도청 스마트그리드과 장철원 주무관은 “제주 북단 제주시에서 남단 서귀포시까지 한번 충전으로 거뜬히 갈 수 있다”며 “실제로 서귀포시로 이동할 때 전기차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세계 전기차 브랜드의 실험 장소로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 지금까지 전기차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곳은 덴마크의 보른홀름섬이었다. 2009년부터 에디슨 프로젝트란 전기차 실증사업을 진행했다. 섬 전체 인구(4만2000명)에 전기차를 보급하는 프로젝트다.

세계의 많은 자동차 브랜드가 전기차의 가능성을 살피기 위해 이 섬에 모인다. 제주는 보른홀름 섬보다 조건이 더 좋다. 면적이 보른홀름 섬(588㎢)보다 2배 정도 된다. 그간 덴마크의 섬은 전기차의 상용화 가능성을 점치기에 규모가 너무 작다는 의견이 있었다. 제주도는 환경 조건도 좋다. 

장 주무관은 “4계절·강풍·눈·비 같은 거의 모든 기상 조건에서 전기차의 문제점을 테스트할 수 있고, 산악 지형과 해안도로·시내 주행(러시아워)·고속도로까지 온갖 종류의 도로도 갖췄다”며 “다른 나라에서 제주와 같은 조건을 갖춘 지역을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사업이 가능성을 보이자 기업의 참여도 활발하다. 지난해 포스코ICT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5개 회사가 모여 ‘제주 전기 자동차 서비스’라는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이 컨소시엄은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고, 최첨단 전기자동차 주행 시스템을 개발한다. 현재 상당한 성과도 거뒀다. 가장 돋보이는 건 ‘지능형 충전 시스템 통합 인프라’다. 제주도를 누비는 모든 전기차에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중앙 통제실의 정보를 받을 수 있다. 

현재 남은 전력량을 체크해 알려주고 근처에 가장 가까운 충전소와 충전할 수 있는 충전기 대수를 알려준다. 전기차의 경우 일반적인 충전은 6~7시간, 급속 충전이라도 15분 이상 걸린다. 근처에 충전소가 있다고 찾아갔다가 다른 차량이 충전 중이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게 지능형 충전 시스템이다. 

또 중앙 통제실에서는 전기차 운전자의 사용 패턴과 수요를 파악해 가장 최적화된 위치에 충전소를 설치할 수도 있다. 또 충전기마다 다른 전기 요금 과금 체계를 규격화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한다. 현재 충전소 위치를 사용자에게 알릴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개발 작업이 마무리 단계고 민간보급을 눈앞에 뒀다.

전기차 시스템의 세계 표준 될 수 있을까

현재 개발 중인 시스템이 상용화되면 제주 전기차 서비스를 해외에 수출할 수 있다. 김대환 제주 전기자동차 서비스 대표는 “전기차 보급이 지지부진한 탓에 제어시스템·충전기기 등이 회사·국가 별로 제각각”이라며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면 전 세계가 참고할 수 있는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컨소시엄은 현재 시스템 구축을 대부분 완료하고 보완 작업 중이다.

어설픈 프로그램을 내놨다가 ‘역시 전기차는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다. 김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출퇴근 길에 직접 전기차를 이용하며 불편 사항을 점검한다. “예전부터 시스템 적용을 고민했다. 막상 내가 전기차를 타보니 보완할 부분이 많더라. 이제 많이 개선됐다. 가까운 시일 내에 세계 자동차 브랜드를 제주도로 초대해 시스템을 공개할 예정이다.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제주도는 올 하반기 전기차를 민간에 보급할 방침이다. 13억원의 구매 지원 예산을 마련했다. 구매 가능한 차종도 3종 이상 늘릴 계획이다. 현재 일반인이 전기차를 구매하면 정부에서 1500만원을 지원한다. 제주도는 여기에 추가로 800만원을 지원하고, 800만원 상당의 가정용 충전기도 무료로 제공한다. 

현재 전기차의 가격은 현대자동차 ‘레이’가 4500만원 정도다. 비싼 가격과 부족한 인프라로 그간 민간보급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제주도에선 정부와 도의 지원금을 빼면 2000만원 초반에 차량을 구입할 수 있다. 각종 친환경 세제 혜택과 휘발유의 10분 1 수준인 연료비를 감안하면 경제성은 충분하다. 도 관계자는 “올해 190대의 전기차를 민간에 보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