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성공하려면
조합원의, 조합원에 의한, 조합원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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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협동조합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닙니다. 멀지 않아 망하는 조합이 많이 나올 겁니다. 대단히 우려스럽습니다.”
협동조합 전문가인 강민수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사무국장 얘기다. 그는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생기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이제 걸음마를 뗀 협동조합에 기대가 너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사무국장은 “협동조합은 솔루션이 아니라 사업체의 한 틀일 뿐”이라며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조합을 설립할 목적이 분명해지고, 비즈니스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사업계획서가 명확해 진다”고 조언했다.
협동조합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남봉현 협동조합정책관 역시 “협동조합은 결코 만능이 아니다”며 “철저한 준비와 사업계획이 없다면 생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한 대학교수는 “사실상 실패한 사회적 기업 육성 정책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했다.
성과 미흡한 사회적 기업 육성책 되풀이 우려
협동조합은 불편한 점도 많은 모델이다. 캐나다 퀘백 주정부가 2008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협동조합의 5년 생존율은 62%, 10년 생존율은 44.3%였다. 주식회사 생존율은 같은 기간 각각 35%, 19.5%였다. 특히 주택·통신·사회서비스·음식·숙박·학교(북카페)·농업·산림·교통 업종에서 협동조합 생존율이 높았다. 하지만, 이를 우리나라 환경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퀘백은 협동조합의 천국으로 불리는 곳이다. 오랜 전통이 있고, 주민 대부분이 한 개 이상의 조합에 가입돼 있다.
협동조합 금융도 잘 발달돼 있다. 협동조합 붐이 불면서, 외국의 성공사례가 언론을 통해 집중적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실패 사례 역시 많다. 2000년대 들어 미국의 대형 농업협동조합인 팜랜드와 애그웨이가 몰락했고, 네덜란드의 원예협동조합인 비온은 경영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이탈리아 트렌티노나 볼로냐, 스페인 몬드라곤 등 협동조합이 잘 발달된 지역에서도 숱한 협동조합이 흥망을 거듭한 후에야 지금에 이르렀다.
이제 발걸음을 뗀 협동조합이 뿌리 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협동조합의 성공 조건은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협동조합의 한계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협동조합은 1인1표제다. 모든 조합원이 동등하게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한다. 민주적이기는 하지만, 소수 지배주주가 의사 결정을 하는 주식회사보다 느리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선 약점이다.
2월 22일 열린 협동조합연대 창립총회에서 고흥길 특임장관이 연설하고 있다. 이에 대해 LG경제연구원 장승희 책임연구원은 “성공한 협동조합은 강한 실행력으로 느린 의사결정을 극복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처럼 출자금의 차이에 따라 의결권에 일부 차등을 주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자본 조달에도 약점이 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가입·탈퇴가 자유롭다. 이는 역으로 자본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뜻도 된다. 투자를 받기도 어렵다. 협동조합기본법은 금융·보험 분야 조합 설립을 제한한다. 또한 협동조합은 이익을 극대화하지 않고 원가 경영을 추구하기 때문에 금융권 대출도 여의치 않다.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제정·세제 지원도 없다. 일정 규모 이상 조합원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사업체로서 적정 수준 규모에 도달하지 못하면 돈 문제로 버티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금융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강민수 사무국장은 “협동조합이 발달한 선진국을 보면 대부분 금융을 끼고 있고, 조합에 투자하는 사회경제적 펀드도 많이 설립돼 있다”며 “우리나라도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금융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승희 연구원은 “기존 협동조합의 경우 금융부문의 협동조합이 신규 조합의 창업과 투자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심장 역할을 한다”며 “이러한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기금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협동조합의 생명은 ‘협동’, 자신 덜 내세워야
협동조합의 생명은 단연 조합원의 협동이다. 조합원의 자발적 참여와 민주적 운영 원칙이 잘 지켜져야 협동조합 모델은 지속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조합은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조합원은 조직의 일원으로 개인의 자율을 일정 부분 포기할 각오를 해야한다. 기업으로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경영에 참여하는 전문가의 자율성과 독립성도 보장해야 한다. 이익이 생기면 배당하기보다는 내부 유보금을 쌓아 기술 개발과 양질의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도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협동조합 간 연대도 필요하다. 장승희 연구원은 “협동조합 간 연대를 통해 금융, 교육, 훈련, 재정 관리 등의 노하우가 상호교환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협동조합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지역 사회와의 네트워크나 지역시장 관리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정부 역할도 중요하다. 정부의 직접 지원에 대해선 전문가 대부분이 반대했다. 강민수 국장은 “기존 협동조합과 차별 받지 않도록 간접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합 난립을 막을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한 지역에 유사한 협동조합이 난립하면 조합 간 협동보다는 경쟁 심화로 공멸할 수 있다. 부실·유사 협동조합 방지를 위해선 최소한의 관리·감독 장치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
독일의 경우 지역 협동조합은 지자체가 감독권을 일임한 감사협회에 의무 회원으로 가입해야 한다. 장승희 책임연구원은 “성공한 협동조합은 조합의 가치와 정신에 대한 공유, 앞선 기술 확보, 자체 금융 기반 조성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철저한 준비를 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