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박사님이 읽은 책

Business Book - 미국의 100년 세금 전쟁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도일 남건욱 2013. 7. 26. 19:29


Business Book - 미국의 100년 세금 전쟁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


부자와 중산층의 격차는 새로운 현상인가? 미국의 역사적 경험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노동 전문 기자 샘 피지개티가 쓴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의 영어 원서 제목은 ‘부자는 늘 승리하지 않는다’이다. 작가의 집필 의도가 더 잘 나타나 있다. 작가는 20세기를 전후해 미국의 빈부 투쟁에서 부자들은 실패했으며 이런 실패가 또 다시 반복돼야 한다는의도로 이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은 미국의 역사에서 부자와 빈자의 갈등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오늘날과 같은 수퍼리치와 중산층 사이의 격차는 역사적인 사실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론 부분에서 필자는 작가와 견해가 다르지만, 소득격차 문제로 고심하는 나라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에 강력한 신념을 가진 사람도 읽어볼 만하다.

1900년대까지 미국은 금권정치가 지배하던 나라였다. 부자들은 무시할 만큼 낮은 소득세율과 활짝 열린 시장 덕분에 돈을 마음껏 벌 수 있는 기회를 누렸다. 또한 그들은 금력을 이용해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개혁을 좌절시킬 수 있는 힘도 있었다. 소득 불균형 문제를 고치기 위해 수 차례에 걸쳐 소득세 개정작업이 있었지만 번번히 불발로 끝났다. 

카네기와 록펠러와 같은 수퍼리치조차도 정부가 그들의 소득에 세금을 물릴 권리가 없다고 반발했다. 록펠러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번 돈을, 다시 말해 법적으로 정당하게 번 돈을 나누라고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는 다수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1910년에 진보파가 압승을 거둔 후 소득세 수정 조항을 승인하는 주가 하나씩 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두 가지다. 우선 자신의 것을 알아서 내놓으려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 기준으로 그가 얼마나 여유 있는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특정 시대의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절대 진리가 있는 게 아니라 그 시대 사람이 ‘이것이 올바르다’라고 판단하면 그 쪽으로 제도가 바뀌게 마련이다. 그런데 다수는 상당히 극단적으로 나갈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 나온 소득세 개편안에 따르면 수입이 100만 달러가 넘는 부자는 최고 세율 77%의 세금을 내야 했다. 1900년대 부자들은 수입이 얼마든 세금을 거의 내지 않았다. 그걸 감안하면 혁명적인 조치였다.

과중한 세금을 낮추려는 부자의 요구는 집요했다. 마침내 1926년 최고 소득세율을 25%로 낮추고 증여세는 폐지하고, 상속세율은 절반으로 줄이는 세금 개혁안이 통과됐다. 세금 전쟁에서 보수파가 승리한 것이다. 이런 조치를 통과시킨 사람은 후버 대통령 시절의 재무 장관이자 거부인 앤드루 멜론이었다.

민주당 출신인 루즈벨트 대통령는 세금 문제에 미적거리다 1935년 6월에 세금 전쟁을 시작했다. 100만 달러 이상의 소득에 63%를 적용한 연방소득세율을 79%로 올렸다. 최고 상속세율도 60%에서 70%로 올렸다.

부자 중과세는 상당히 오래 이어졌다. 1953년 공화당 출신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당선되자 부자들은 내심 세금 감면을 기대했다. 그의 내각에는 백만장자 9명과 노조 출신 배관공 1명이 장관을 맡았다. 그는 재임 8년 동안 세금 감면 문제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는 수퍼리치에 대한 세율을 1930년대 수준으로 유지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부자 계급을 과도하게 용인하는 사회는 화를 자초했다’는 신념에 따랐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내내 미국의 부자들은 지금 수준으로 생각하면 중과세라고 불러도 부족할 정도로 큰 세금 부담을 감내했다. 저자는 이런 중과세와 노조의 힘이 미국에서 중산층을 낳았다고 본다. 이런 중과세에 대해 미국 부의 연대기를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퍼디낸드 런드버그는 1968년에 “미국에서 큰 재산을 모을 수 있는 시절은 이제 끝났다”고 단언했다.

1970년대 말 로널드 레이건의 등장은 세금 전쟁에서 또 한번의 변곡점이 됐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은 최고 소득세율을 70%에서 50%로 낮췄다. 1986년에는 다시 28%로 낮췄다. 저자는 누진적 세제와 노조의 힘이 사라진 상황에서 미국의 중산층 기반이 균열되는 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논리적으로 다소 비약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세계의 모든 나라가 소득세율을 인하하는 마당에 미국만 높은 세율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산물임을 일깨우는 책이다. 모든 게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모든 건 정치가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