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Management - 영국은 투쟁, 스웨덴은 협상으로 해결

도일 남건욱 2013. 11. 3. 13:46


Management - 영국은 투쟁, 스웨덴은 협상으로 해결
김세원의 비교문화경영
김세원 가톨릭대 교수
비교문화경영학자 호프스테드 53개국 분석 … 남성성 강할수록 자기중심·성취지향적


1998년 6월 동아일보 특파원으로 파리에 부임했을 때 일이다. 프랑스판 ‘언론인명부’에 실릴 인적사항을 보내달라는 연락을 받고 한국식으로 적으려 했더니 다른 회사의 선임자가 ‘OOO 특파원’이 아니라 ‘OOO 지사장 겸 특파원’으로 표기하라고 일러줬다. 1인 지사 운영체제라 특파원이 지사장 역할도 하는데다 프랑스에서는 자신을 소개할 때 실제보다 부풀리는 경향이 있으니 자신의 직무와 권한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후 영국 노포크의 이스트앵글리아대학에서 MBA 과정을 이수할 때 영국인은 프랑스인보다도 이력서를 과대포장 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차이가 남성성(masculinity) 순위의 격차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비교문화경영을 공부하고 나서였다.

네덜란드 출신의 비교문화경영학자 거트 호프스테드는 1968년과 1973년 두 차례에 걸쳐 세계 53개국의 IBM 지사에 근무하는 직원 11만6000명을 상대로 가치관을 조사·분석한 결과 권력거리의 크기, 집단주의 대 개인주의, 남성성 대 여성성, 불확실성 회피의 강도, 장기 지향 대 단기 지향 등 5가지 차원에서 국가 문화간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국은 여성성 지수 높은 나라

호프스테드는 자신의 저서 『문화와 조직:정신의 소프트웨어』에서 ‘남성성 대 여성성’ 차원을 설명하면서 자신이 젊었을 때 벨기에의 플란더스 지방에 갓 설립된 미국 기업의 공장에 취업하려다가 실패한 경험담을 사례로 들었다. 네덜란드인은 남의 눈에 허풍쟁이로 비치는 걸 두려워한다. 그래서 이력서를 쓸 때도 면접을 통해 실제 능력을 알아볼 수 있음을 고려해 대개 짧게 끝낸다. 반면 도전과 경쟁을 높이 평가하는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신을 과대 포장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인 입사지망생이 이력서에 각종 학위와 학점·포상·사회활동과 봉사활동 경력, 체육관 멤버십까지 총동원하는 건 당연지사다. 미국인의 면접방식에 익숙한 미국인 면접자에게 네덜란드 입사지망생은 지나치게 겸손하고 도전의식이 부족한 젊은이로 보였을 것이다. 호프스테드는 자기주장이 강한 행동과 겸손한 행동 중 어느 쪽을 바람직하게 생각하는지는 남성성-여성성의 정도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53개국의 IBM 매니저들에게 제시된 다양한 근무 목표 가운데 연봉 인상과 승진 항목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경쟁적인 사회 역할과 일치돼 남성성과 강하게 연관된다고 봤다. 상사 및 동료와의 화목은 관계지향적이고 조화로운 사회환경을 지향하는 여성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남성적 사회는 사회적으로 남녀의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문화, 즉 남자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물질적 성공을 추구하는 반면, 여자는 보다 겸손하고 부드러우며 삶의 질에 관심을 두는 문화이다. 이에 비해 여성적 사회는 가정에서나 사회적으로 남녀의 역할이 중첩되고 사회의 지배적 가치가 타인을 돌보는 것과 조화로운 인간관계에 있으며 남녀 공히 삶의 질에 관심을 두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호프스테드가 남성성 지수를 산출한 53개국 가운데 이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일본이었다. 다음으로 오스트리아·베네수엘라·이탈리아·스위스·멕시코·아일랜드·자메이카·영국·독일이 뒤를 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편에 섰던 오스트리아·이탈리아·일본 모두 남성성 지수가 높은 점이 눈길을 끈다. 

반면 남성성 지수가 가장 낮은, 가장 여성적인 국가는 스웨덴이며 다음으로 노르웨이·네덜란드·덴마크·코스타리카·유고슬라비아·핀란드 등의 순이다. 여성적 국가들은 주로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지역에 분포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들 국가에서는 남성적 문화에서 좋게 보는 자기주장적 행동이나 남을 능가하려는 노력은 놀림거리가 되기 쉽다.

남성적 문화에서는 아이들이 강자를 부러워하는 것을 배우지만 여성적 문화에서는 약자와 희생자를 배려하는 것을 배운다. 남성성 순위 15위인 미국에서 수퍼맨과 람보가 인기 있는 반면 여성적인 네덜란드에서는 매사에 서투르고 외모도 보잘것 없는 ‘올리비에 보멜’ 같은 반(反)영웅적 캐릭터가 인기다. 남성성이 강한 나라에서는 학생들이 진로를 선택할 때 그 직업의 전망이 결정적인 변수이나 여성적인 국가에서는 전공 분야에 대한 학생의 흥미 여부가 큰 영향을 미친다. 

남성적 문화권에서는 학교에서 낙제한다는 것은 아주 큰 비극이다. 일본이나 독일처럼 남성성이 강한 나라에서는 해마다 대입시험의 실패로 자살하는 학생에 대한 언론보도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성적인 문화에서는 학교에서 낙제하는 것은 별로 큰 사건이 아니다. 젊은이들의 자살 원인은 성취와 무관한 사회적 고립감 등 다른 데 있다.

갈등을 다루는 방식에서 남성적 문화와 여성적 문화는 서로 다르다. 미국·영국·아일랜드·호주·뉴질랜드 등 남성적 앵글로색슨 문화에서는 갈등은 열심히 싸워서 해결해야 한다는 정서가 있다. 반면 네덜란드·스웨덴·덴마크 같은 여성적 문화에서는 타협과 협상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길을 선호한다. 

1917년 핀란드가 러시아에서 독립하면서 올랜드 군도의 영유권을 놓고 스웨덴과 핀란드 간에 분쟁이 일어났으나 국제연맹의 중재로 이뤄진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했다. 이에 비해 1982년 아르헨티나와 영국 간에 발생한 포클랜드군도 분쟁은 결국 전쟁 발발로 확대됐다. 두 나라는 군사적 희생과 함께 엄청난 재정 손실을 입었다. 영국과 아르헨티나 모두 남성성 지수가 높은 국가다.

남성적 사회와 여성적 사회가 대조를 이루는 또 다른 측면은 개인의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남성성 지수가 가장 높은 일본의 경우 가장 중시되는 가치가 직장에 대한 소속감이다. 이른바 ‘회사인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본인에게 직장은 삶의 터전이다. 남성적 사회의 기업은 일의 결과를 강조하며 모든 사람을 업적에 따라 보상하는 경향이 있다.

남성성-여성성 차원은 강자에 대한 보상 대 약자와의 결속, 경제성장 대 환경보호, 군비 지출 대 후진국 원조 등의 우선순위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남성적 문화를 가진 국가는 성취지향 사회를 추구하는 반면, 여성적 문화를 가진 국가는 복지사회를 지향한다. 여성적 문화를 가진 스칸디나비아국가들은 국민 모두에게 최소한의 생활의 질을 보장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성적 문화를 가진 앵글로색슨계 국가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운명은 그들 스스로의 잘못 탓이라고 본다. 

남성성 지수 2위를 기록한 오스트리아는 1988년 자국 국민총생산(GNP)의 0.24%를 개도국 원조에 할당했다. 여성성이 높은 노르웨이는 5배 가까운 GNP의 1.12%를 원조했다. 남성적 문화를 가진 국가에서는 가난한 나라의 운명이 국민들의 손에 달려있으며 열심히 일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개발원조에 인색하다는 것이다.

호프스테드의 조사에서 한국은 예상과는 달리 53개국 중 41위로 15위의 미국이나 28위의 싱가포르는 물론 33위의 대만보다도 남성성 지수가 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