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기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으로 내정된 제닛 옐런(가운데)이 양적완화와 경기 부양 기조를 계속 이어갈 지 관심거리다. |
어지간해서는 안 되겠다. 미국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50%, 그러니까 한 8조 달러는 넘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사실상 영영) 보유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그렇다. 그리고 이것이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양적완화를 축소, 결국은 중단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 연방준비제도의 양적완화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벌써 5년 동안 제로금리에 세 차례(사실상은 3.5회)에 걸쳐 3조7000억 달러 규모의 자산(미국 국채와 모기지 담보부 증권; MBS)을 연준이 매입했는데도 미국 경제는 기껏해야 ‘완만한(modest)’ 성장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마저도 양적완화를 치워버린다면 유지될 수 있는지 자신할 수 없다. 5월 벤 버냉키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tapering)을 시사한 이후 미국 국채시장 수익률이 급등(국채 가격 하락)해, 결국 한 달도 채 못 돼 축소 방침을 사실상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고려해 미국 경제는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의 인공호흡기에 매달려 유지되고 있다고 평하는 이코노미스트들도 있다.
양적완화가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크게 두 가지로 구별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금리(국채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이며, 다른 하나는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다. 8월 공개된 연방준비제도의 리포트에 따르면, 2010~2011년의 2차 양적완화(6000억 달러 규모)가 경제에 미친 영향은 ‘실질 GDP 0.13% 증가, 인플레이션률 0.03% 상승’에 그쳤다. 그마저도 그 효과는 2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져버렸다. 이는 고작해야 금리를 0.12% 정도 낮췄을 때 나타나는 효과에 불과하다. 효과가 이런 정도일 바에야 자산버블 위험만 키우는 양적완화는 아예 치워버리는 게 낫다.
그렇다면 양적완화가 정말로 원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규모가 돼야 할까? 이 질문이야말로 2002년 버냉키가 밀튼 프리드만을 칭송하면서 “일본의 양적완화는 규모가 너무 작아서 실패했다. 우리는 그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 역사적 ‘노작’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0월 초 공개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제도의 보고서 ‘비전통적 통화 정책의 평가-왜 더 효과적이지 못했나?’는 ‘대규모 자산 매입(양적완화)이 얼마나 돼야 실질 총생산을 늘리고 실업률을 줄일 수 있는 지를 검토해 보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일반 균형 재정 모델’을 사용해 다음의 두 가지 결론을 얻는다.
첫째, 양적완화(이 논문에서는 신용팽창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회사채 금리를 약 2~3% 낮추었다(그러나 이것이 금융 충격으로 인한 내생적 반응인지 양적완화 때문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인정한다). 둘째,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장기 추세에서 여전히 약 10% 정도 하락한 상태에 있는 총 생산 갭을 메우는 데는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2017년까지 유지해도 미미한 효과
저자들은 이제까지의 양적완화는 실질금리를 낮추고 자산가격을 크게 상승시켜 대출 제약을 완화시킬 수는 있었지만(여기서 제시된 양적완화의 긍정적 효과는 인플레이션이 억제된 경우였다), 총소비와 고용을 증가시키지는 못했다고 분석한다. 만일 양적완화가 총소비•총생산을 장기 추세선까지 다시 끌어올리고 고용을 증가시키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그 규모가 극단적으로 커야 하며 둘째, 극도로 오랫동안 지속돼야 하며 셋째, 상대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을 겨냥한 조건에서 운용돼야 한다.
사실 이 논문의 결론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양적완화 규모가 어느 정도로 극단적으로 커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서 GDP의 50% 규모(누적적으로 연준 자산 매입이 8조 달러까지 늘어나는 경우)로 늘어나면, 정상 상태 산출(steady state output; 성장 장기 추세선) 수준은 0.04% 증가한다. 즉, 양적완화가 비로소 실물 경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규모는 GDP의 50%선까지 누적적으로 늘어났을 때이다. 그래 봤자 고작 0.04%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경우, 두 가지 전제가 뒤따른다는 것이다. 하나는 연방준비제도가 매입 자산을 아주 오랫동안 보유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연방준비제도의 목표인플레이션률이 무려 12%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건 하에서 10% 가량 뒤쳐진 성장을 장기 추세선까지 끌어올리려면 연방준비제도의 자산 매입 규모가 무려 GDP의 137%(20조 달러)가 돼야 한다.
만일 지금과 같이 연방준비제도가 목표 인플레이션률을 2%로 잡고 있으며, 연방준비제도 재무제표가 20조 달러가 돼도 장기 추세선 증가폭은 6.7%에 그친다. 말하자면 양적완화 누적 액수가 20조 달러에 달해도, 그리고 이 매입 자산을 만기까지 보유한다고 해도, 현재 기록중인 10%의 산출 갭을 메우지 못한다.
인플레이션률 12%는 감당하기 어려운 가정(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부채가 극단적으로 치달으면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선택 옵션 중의 하나다)이다. 때문에 현재의 2% 목표 인플레이션률을 전제로 할 때 연방준비제도가 지금과 같이 매달 850억 달러의 자산 매입을 한다면 누적 액수가 8조 달러에 이르기까지는 50.8개월, 즉 4년 3개월이 소요된다. 오는 2017년 말까지 현재 수준의 양적완화를 계속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수준에서도 장기 성장 추세선을 끌어올리는 효과는 여전히 0.04%에 불과하다.
만일 현재의 2% 인플레이션 목표 하에서 GDP의 100%까지 자산 매입액이 늘어나면, 장기 성장 추세는 2.3% 상승한다. 보다 온건하게 이 수준을 목표로 한다면, 연방준비제도는 앞으로 200개월을 더 현 수준의 양적완화를 해야 한다. 16년7개월이 걸리며, 오는 2030년 말까지다.
양적완화를 이토록 오래 지속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선택이다. 연방준비제도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모델에 따르면, 자산 매입 누적 규모가 8조 달러에 이르기 전에는 사실상 양적완화는 실물 경제에 효과가 없다. 물론 실질금리를 2~3% 낮추는 효과는 있지만, 유동성 함정 문제 때문에 낮은 실질금리 효과는 실물로 전이되지 않는다.
반면 양적완화로 인한 자산 버블 위험은 갈수록 커진다. 2009년 이후 연준의 재무제표와 S&P500 지수 사이의 상관관계는 0.897에 달한다(상관관계가 1에 접근할수록 일치도가 높다). 연방준비제도가 찍어낸 돈은 금융시장에서만 돌기 때문에, 자산가격은 양적완화에 동조해 누적적으로 상승한다. 따라서 연방준비제도는 ‘불가피하게’ 양적완화를 축소 또는 중단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정말 오는 2030년까지 양적완화를 지속하든지.
일본의 양적완화 효과도 의문
이 논문은 8월 이후 왜 버냉키 총재가 발언을 삼가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의 이론이 오류인 것으로 확인된 때문이다. 더불어 이 논문의 결론은 일본 중앙은행의 양적완화에 대해서도 그 결말을 시사하고 있다.
일본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규모는 미국의 GDP 대비 양적완화 규모와 비교했을때, 약 2배의 수준이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 중앙은행도 2% 인플레이션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과연 현 수준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물론 일본은 경제•금융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수정된 모델이 필요할 것이다). 그나마 일본은 2%의 인플레이션조차도 ‘위협적’인 것으로 버거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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