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규의 인생: 충분히 자족적인 삶을 찾아서
한국학 분야에 큰 족적을 남긴 전 서강대의 김열규
교수님의 인터뷰가 실린 책을 만났습니다.
고인의 마지막 인터뷰인데 그 내용 중에
인상적인 대목을 골라 보았습니다.
1932년 생이었던 이 분은 지난 해 10월
돌아가셨습니다.
1. 기자: 환갑을 앞둔 쉰아홉에 낙향하였습니다.
고향이 고성이니까 여길 선택하셨는데, 아무리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살겠다고 해도 막상
외롭진 않으셨나요?
독일어에 외로움이나 고독을 표현하는 어휘로
‘아인잠(einsame)'과 ’알아인(allein)' 두 가지가 있는데,
이 중 ‘알아인’은 영어로 치면 ‘all'과 'one'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즉, 절대적으로 혼자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홀로 있어도 충분히 자족적인 나를 뜻하죠.
제가 꼭 그래요. 저는 혼자 있다고 해도 외롭다는 말을
결코 쓰지 않습니다.
2. 기자: 약주는 전혀 안 드시나요?
홍차에 타 먹는 위스키 몇 방울, 커피에 타는 코냑 몇 방울이
제가 평소 마시는 술의 거의 전부입니다.
동료나 친구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가진 기억이 아주 까마득하네요.
‘내가 술집 따위에 갈까 보냐? 그런 걸로 거짓 위안 혹은
즐거움 따위를 구할까 보냐? 턱도 없다.’
그런 오연(傲然)한 태도, 혹은 유아독존 같은 게 저에겐 좀
강했던 셈입니다.
3. 기자: 거의 종교적 경지입니다.
그런가요? 그 대신 음악 듣고 차 마시는 데에서 사치를 합니다.
커피, 홍차, 녹차 이 셋은 제 삶의 기둥인데,
아침엔 일찍 녹차를 마십니다. 일본 녹차는 찐 차라서 초록빛인데,
탈콤하죠. 우리 녹차는 덕은 차라서 노리끼리한 색에 고소합니다.
저는 하루는 일본 차, 하루는 우리 차를 마시지요.
점심에는 커피를 마시는데, 블루 마운틴이나 하와이언 코나 등
원두커피를 즐기죠.
저녁에는 원산지가 아삼 지역인 홍차에 위스키를 타서 마시는데,
마시는 이들이 모두 별미라고들 합니다.
4. 기자: 지금까지 펴낸 책이 70권이고, 한국학의 거장이라는
칭송도 받으십니다.
그런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옵니까?
그게 묘해요.
글쓰기는 큰 노동인데, 저의 경우 오전에 커피 한잔 마시며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하면 없던 에너지가 솟아납니다.
저에게 글쓰기는 영영제 주사인 셈이죠.
5. 기자: 놀랍게도 아직 문장이 팽팽하거든요.
또 미문(美文)이고요. 열중 아홉, 환갑이 좀 지나면 대충 풀어지고
마는 게 문장인데요.
얼마 전 한여름 땡볕에 쪼그리고 앉아 밭의 김매기를 하는
할머니를 봤어요. 너무 안타까워서 제가 물어봤어요.
“할머니 왜 이 날씨에 이런 험한 일을 하십니까?”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할머니가 해준 말,
“이게 다 낙 아인교?”
‘이게 다 낙(樂) 아닙니까?’라는 뜻인데,
충격에 제가 덜컥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와, 이런 인생철학의 교사를 만나다니,
릴케도 말하지 않았던가요.
“오로지 노동하라!”라고요.
지식인에게 노동이란 곧 글쓰기입니다.
6. 기자: 선생님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를
관심있게 읽었는데, 거기에 한국인에게는 삶과 죽음에 관한
정교한 성찰 내지 철학이 없다는 혹독한 비판이 나옵니다.
개똥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식의 현실주의
사고방식이 한국인에겐 강력하게 남아 있죠.
그래서 동전의 양면처럼 짝을 이루는 ‘조야하고 날뛰는 삶,
위엄을 잃은 죽음‘이라는 이상(異常) 구조를 만들어냈다는
게 저의 지적이었습니다.
7. 기자: 한국인에겐 본래 ‘경박함, 깊이 없음’이라는
특징이 있나요?
쉽게 답하긴 어렵습니다.
단 조선조 500년 유교 문화의 영향이 큽니다.
즉 예학을 너무 발달시키면서 삶의 본질에 관한 성찰 대신
의례화되고 공식화된 절차에 너무 매달렸습니다.
껍데기에만 머문 것이죠. 삶의 연장이자 완성인 죽음에 대해서도
그래요. 조선조 경학, 즉 ‘유교 철학 중에 죽음이 본질을
꿰뚫는 것은 드물거나, 아니면 없습니다.
그저 죽음을 절차화한 예학에 충실해 그것 가지고 정치 싸움까지
치열하게 벌였으니까요.
그래서 지금도 죽음을 불행이자 불운으로 보고 있는 겁니다. ...
-출처: 조우석 인터뷰, (인생부자들), 중앙M&B, pp.326-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