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미 헌재 재판관
지난번 ‘함량미달의 헌법재판관들’을 작성할 당시만 해도 반신반의했던 헌법재판관들의 자질 부족이 이번 탄핵결정문을 통해 더욱 더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 결정문에서 피청구인(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인용(파면)한 사유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이다. 첫째는 피청구인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남용하여 최서원(순실)의 사익(私益)추구를 도와주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피청구인의 이러한 행위가 헌법이나 법률에 대한 중대한 위반행위로서 탄핵사유가 되기 위해서는 법이론상 지극히 당연하게도 피청구인의 고의(故意)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결정문 어디를 찾아보아도 피청구인의 고의에 대한 언급이 없다(따라서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설시도 당연히 결여되어 있다). 백보 양보하여 피청구인에게 최서원의 사익(私益)추구행위를 방지하지 못한 점에 대해 중과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중과실과 고의는 엄연히 다르다. 사인(私人)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사법(私法)의 영역에서는 경우에 따라 중과실과 고의가 대등한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공법(公法)의 영역에서, 나아가 한 국가의 대통령을 파면하는 중대한 결정을 함에 있어 고의와 중과실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초보 법률가조차 다 알고 있는 법학의 기초이론이다.
둘째로 탄핵결정문이 탄핵소추를 인용한 사유는 피청구인이 공무상 비밀이 포함된 국정에 관한 문건을 최서원에게 전달하고 또 공직자가 아닌 최서원의 의견을 비밀리에 국정운영에 반영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문건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기밀을 담고 있는지, 그리고 그 문건이 최서원에 전달됨으로써 대한민국에 어떤 중대한 불이익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나아가 ‘공직자가 아닌 최서원의 의견을 비밀리에 국정운영에 반영했다’고 하는데, 대통령은 공직자가 아닌 사인(私人)의 의견을 청취해서는 안된다는 법이 어디에 있는지, 또 ‘비밀리’에 국정운영에 반영했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사인(私人)의 의견을 듣고 이를 국정에 반영하는 데 어떤 공적인 절차가 필요한 지를 헌법재판관들에게 되묻고 싶다.
한마디로 말해 이번 탄핵결정문은 단순 폭행, 절도 사건에 대한 제1심 형사단독판사의 판결문보다 낮은 수준의 판결문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렇다면 탄핵인용이라는 결론의 타당성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왜 이런 수준 낮은 결정문이 작성되었을까라는 의문이 우선 제기된다.
짐작컨대 이는 탄핵인용이라는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그 결론에 맞추기 위해 법리를 구성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교과서에서는 법관의 ‘예단금지(豫斷禁止)’를 강조하지만 실제 재판에서는, 특히 하급심 판결에서는 법관의 예단(豫斷)이 자주 발견된다. 하지만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결정짓는 단심재판인 탄핵심판에서 예단(豫斷)이 있었다면, 이는 더 이상 헌법재판관의 자질 문제를 논하기 이전에 탄핵인용결정의 효력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아무리 수준 낮은 탄핵결정문이라도 확정적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모든 국민이 승복해야만 한다는 논리는 나치로 대표되는 이른바 형식적 법치국가에서 자주 사용되던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이 시점에서 다시금 인식할 필요가 있다.
himmel(아이디) – 법조인으로 추정되는 네티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