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읽은 책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미국 선교사들이 이 땅에 남긴 것

도일 남건욱 2018. 12. 25. 21:47

서명  :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미국 선교사들이 이 땅에 남긴 것




저자 : 공병호




출판사 : 공병호연구소




서평 : 크리스티즘의 한반도 전래는 조선시대의 무당의 기복적 미신에서 벗어나고 사농공상의 신분제도인 유교라는 동아시아 문명의 교체라는 의미와 근대 시민 국가의 가치를 확산시키고 서양의학이라는 과학에 기초한 인재를 육성하고 문맹률을 낮추고 냉전시대 공산화를 막는 시대정신이었다는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책 말미에 언급되는 '북한 핵 위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우리 사회가 과거로부터 더 깊은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대목에서 구한말의 조선 상황을 정확히 이해해야 현재의 동북아 핵문제 해결을 풀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에는 조선말 지배계층인 유림들의 세계정세에 대한 무지가 백성들을 가슴 아픈 장면들을 만들어 냈듯이 현재의 정치인들이 국제정치에 대한 몰이해는 대한민국을 암흑으로 되돌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도출됩니다.


유교라는 시대정신의 대체라는 다른 관점에서 근현대사를 한번쯤 정리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용약간 : 


역사의 큰 흐름은 보편적 가치를 확장하는 역사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범 앞의 평등, 기회의 평등, 시심으로서의 기본권이 점점 확장되어가는 역사로 구성된다.


모든 문명은 다른 문명과의 끊이없는 접촉과 상호 관계를 통해서 발전해간다.

역사 발전은 교환의 역사이자, 교류의 역사이자, 서로 간에도 도움을 주고받는 역사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일본은 당시의 지배 세력들이 내린 메이지유신 선택으로 아시아 국가에서도 제국주의자들의 지배를 피할 수 있었고 오늘날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으로서의 위상을 차지할 수 있었다.


1848년 미국이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캘리포니아를 획득해 태평양과 중국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높인 점, 포경업 발달로 인해 캄차가반도와 일본 열도의 동쪽 바다로 진출할 수 있었던 점, 북태평양 등지에서 일본에 접촉할 수 있었던 점 등이 미국이 일본에 눈길을 두었다.


1850년대는 서양으로 유학가는 일본인들이 늘었고, 1853년 미국 폐리 제독이 일본에 상륙했고 이듬해 통상 조약이 체결되었다.


1860년대와 1870년대에는 서양문헌의 번역을 통해 서양엥 관한 사회, 법, 제도, 철학, 의학, 항해술, 천문학 등에 관한 지식들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었다.


메이지유신은 세계사를 빛낸 위로부터의 개혁의 대표 사례라고할 수 있다.


1880년대가 되면 일본은 독일이나 영국에 비해 뒤지지 않을 정도로 군사력, 경제력, 제도를 정비하는데 성공하고 20세기 초가 되면 일본은 서구열강의 대열에 당당히 속하게 된다.




"한국으니 일제의 식민지로 병합되기 이전에 이미 자주적 근대화가 이뤄져 가고 있었다" 의 내재적 발전론의 허구성!



1952년 임진왜란은 일본의 입장에서 조선 남쪽 4도를 내놓으라는 조선할지 전쟁이었고 명나라는 왜의 침략을 한강 이남에서 막아 북쪽 4도를 지킴으로써 요동방어의 울타리를 삼으려는 조선 울타리 방어 전쟁이었다.


1800년 바깥세상이 제국주의로 치닫고 있을때 조선은 왕실과 연결된 외척들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세도 정치가 지배했다.


1854년 일보 개항보다 무려 22년 전인 1832년 3월22일 영국 동인도회사 로드 에머스트호가 충남 보령시 도대도에 기착해 통상교역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전달은 조선이 맞았던 절호의 첫번째 기회였다.



1800년 중반의 조선은 매관매직과 과거의 부정시험이 만연했고, 돈으로 관직을 산 관리들이 본전을 뽑기 위해 농민들을 수탈하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18~19세기 이양선 출현 횟수는 영국 선박 12번, 프랑스 12번, 미국 5번, 러시아3번을 포함하면 총 32번 출현했다.


"이양선이 한 번이라도 지나가면 섬 몇 곳은 온통 망해버린다."는  조사 명분으로 섬을 방문한 조사관들이 섬 주민들에게 상당한 부담은 물론이고 민폐를 끼쳤음을 예상하게 하는 기록이다.



1832년 6월 20일 충남 몽금포 해안에 영국상선이, 6월25일 충남 고대도 안항에 영국 상선이 통상요구했고, 1846년 프랑스 함정이 충청도 해안에 출현했다.



1864년 1월 27일 승정원일기에는 온 팔도에서 소요가 일어나니 흰 수건을 둘러쓰고 몽둘이를 든 자가 걸핏하면 1만이 넘고, 관가를 약탈하고 관원을 살해하며 여러 변고가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


1863년 흥선대원군은 1차 2차 아편전쟁으로 인해 영국, 프랑스, 러시아군에 의해 베이징이 함락되고 황궁 약탈 소식을 접한 조선 상황은 외세로부터의 침략이 가져올 불안감과 두려움이 조선 조정은 물론이고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



프랑스와 영국이 중국 사태에 관해 중국 황제에게 강요한 조약문이 조선에 전해지자 부자나 넉넉한 집안들은 산골로 도망쳤고 어떤 관리들은 선주교상 십자가등을 장만하였고 공공연히 천주교 표지들을 허리에 차고 다녔다.



1866년 프랑스 군대가 침입한 병인양요가 일어났을 때 한성에서 관리 생활을 하든 시골 사람들은 모두 도망했다.


공익을 우선하지 않고 사익에 눈이 가려져서 사리분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 국민들은 비참한 상황으로내몰게 되며 당시 대원군을 비롯한 조선의 지배 계급이 그런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부산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서양의 화포를 수입하고 외세와 타협하는 자세를 보이면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낮아질 수 있는 대원군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견고하게 하려고 외국의 함포 외교를 이용했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빅터차는 한미일 관계에 대한 전문가로서, "한국의 집권 세력들이 반일 감정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중일 삼국의 지배 세력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세계관의 격차에 따라 세 나라의 운명이 달라진다.


기무라칸 교수는 중국의 아편전쟁 패배를 바라보는, 당시 국제 정세에 대한 정보량의 차이가 일본과 조선의 운명을 갈라 놓았습니다" 라고 지적한다.


당시 일본의 지배층은 일본이 개국으로 근대화를 서둘지 않으면 중국이 아편전쟁을 당한 것처럼 외세의 침략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위기 상황으로 해석한 반면 조선은 아편정쟁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서구 열강으로부터 든든한 방파제 역할을 해 줄 것으로 해석했다.



결국 19세기 말 국제 정세애 대한 두 나라의 각기 다른 판단으로, 조선은 일본에 비해 문명개화가 30년 정도 늦어지게 되고, 이것이 훗날 경술국치를 낳고 말았다.



19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조선은 '개화 문명'과 '위정척사'의 대결구도가 형성된다. '세계 대 민족' '개항 대 쇄국' '교역 대 자주'의 충돌이 이 시점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개신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교육이나 의료 부분의 근대화만을 뜻하지 않고 사람의 세계관을 바꾸어놓는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까지 있다.


1. 선교사들은 귀신이나 악령의 불안감과 두려움으로부터 한국인들이 벗어나도록 도왔다.

2. 선교사들은 숙명 같은 절대 가난이란 임혹한 현실로부터 자유롭도록 도왔다.

3. 선교사들은 자존하는 개인, 자립하는 개인, 협동하는개인을 깨우치게 했다.

4. 선교사들은 신분에 다른 계급 제도를 해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5. 선교사들은 일제에 의한 부당한 지배를 극복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6. 선교사들은 신앙의 자유는 다른 자유들처럼 자유체제에만 가능함을 가르쳐주었다.

7. 선교사들은 건국 초기에 큰 역할을 하는 인재들을 육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8. 선교사들은 교육, 인재, 교역 등 모든 면에서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도록 도왔다.

9. 선교사들은 성경 교육을 통해서 근대시민 사회의 핵심 가치가 퍼져나가도록 도왔다.

10 선교사들은 굴지으 고등 교육기관과 사립 중고교를 설립해 한국에 남겼다.

11. 선교사들은 서양 의학에 기초한 굴지의 의료기관을 설립해 이 땅에 남겼다.

12. 선교사들은 버려진 자들에 대한 박애 정신을 발휘해 인권을 배우도록 도왔다.

13. 선교사들은 한글 성경을 제작하고 배포해 성인해독율을 끌어올렸다.

14. 선교사들은 한국이 냉전하에서 공산주의의 재물이 되지 않도록 도왔다.

15. 선교사들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또 하나의 큰 우군을 만들어 냈다.



살아오면서 3가지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첫째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라름의 방법이 있어야 한다.

둘째 뭐든 조금 잘나간다는 생각이 들 때 늘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세째 모든 것이 변하므로 변화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으로인해 어려움을 경험하지 않도록 대비책을 마련해야한다.



이책의 시작은 필자의'불안한평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한미동맹과 한미관계의 건설적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의 인연을 다뤘다.


근래에 우리 사회에서는 '우리가 잘해서, 우리가 잘나서 이만큼 되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사실을 탐구하다 보면 주변으로 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서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미국 선교사들의 내한과 그 후의 전개 과정을 정리하면서 내한 선교사들의 활동에서 깨우치는 것은 우리사회가 고비마다 정말 특별한 선물을 듬뿍 방았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