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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선으로 초기 암 진단, 꿈 아니다”

도일 남건욱 2006. 12. 26. 18:52
“X선으로 초기 암 진단, 꿈 아니다”
“X선 현미경은 암을 초기에 진단하거나 기계 내부의 결함을 발견하는 데 큰 공헌을 할 겁니다. 물체를 부수지 않고도 내부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이전의 현미경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과학기술부가 창의적연구진흥사업의 일환으로 운영 중인 ‘엑스선영상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제정호 교수는 X선 현미경이 열어 줄 ‘신세계’를 상기된 표정으로 설명했다. 그가 거듭 강조한 X선 현미경의 열쇠말은 강한 투과력. 제 교수를 지난 6일 포스텍에서 만나 X선 현미경의 개발과정과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엑스선영상연구단원들. 맨 아래 오른쪽이 단장인 제정호 교수다.

제 교수가 연구 중인 X선 현미경은 현미경의 개념을 통째로 바꾼 것이다. 물체 표면이 아니라 내부를 보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시료를 부수지 않고 속을 관찰하겠다는 얘기다. 실제로 각 현미경의 면면을 살펴보면 X선 현미경의 개발 배경을 가늠할 수 있다.

가장 널리 쓰이는 광학 현미경은 가시광선을 한 곳에 모아 물체를 식별한다. 가시광선의 파장은 아무리 짧아도 100나노미터 이상이고, 보통 500나노미터에 이른다. 따라서 빛의 파장보다 짧은 물체는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없다. 광학에만 의존하는 현미경으론 작은 물체를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작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가시광선을 이용하는 광학현미경으론 투과 영상을 볼 수 없다. 시료를 자르거나 파괴하는 방법 외엔 내부를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전자현미경이 등장하면서 배율을 높일 수 있는 길은 활짝 열렸지만 여전히 ‘투과 영상’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차원이 다른 얘기였기 때문이다. 의료와 공학 분야에서 ‘투과 영상’에 대한 요구가 빗발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제 교수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달렸다. 그는 투과율이 좋은 X선에 착안, 이를 이용해 현미경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했다.

현미경 개발 과정에서 제 교수가 특히 주목한 건 X선의 ‘위상차’다. ‘위상차’는 굴절된 X선과 곧게 들어간 X선이 간섭하는 현상이다. 이를 이용하면서 이전 X선 기술로 불가능했던 1밀리미터 이하의 작은 물체를 훤히 투과해서 볼 수 있었다.

기존 X선 장비는 인체 조직의 밀도에 따라 X선을 흡수하는 정도가 달라지는 원리를 이용한다. ‘흡수차’다. 폐를 찍은 X선 사진이 흡수차를 이용한 영상이다. 흡수차를 이용하면 본질적으로 고해상도 영상을 얻을 수 없다. 제 교수가 ‘위상차’를 이용했던 이유다.

제 교수의 연구 성과는 눈부시다.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붙어 다닌다. 지난 2002년 구리에 아연이 전기 도금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량의 원인이 수소 방울 위에 아연이 달라붙기 때문이라는 점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이 연구결과는 같은 해 네이처에 실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4년엔 세계 최초로 미세혈관을 조영제 없이 촬영했다. 지난 8월엔 투과와 회절 영상을 동시에 촬영할 수 있는 기술을 역시 세계 최초로 내놨다.

제 교수는 앞으로 기능영상 실현에 전력투구한다는 계획이다. 기능영상은 관찰 대상 내부의 특정부분을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기술이다. 실용화되면 인체 내 암 부위가 특징적으로 보이는 영상을 만들 수 있다. 방사선 치료를 암 부위에만 집중해 효과를 높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의료뿐만 아니라 내부 관찰에 관한 수요가 많은 재료공학에서도 기능영상은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며 “이 같은 기술이 제대로만 실용화되면 일반인들도 싼 가격에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이정호 동아사이언스 기자 sunrise@donga.com (2006년 12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