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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태평양 최고의 고부가 클러스터 뜬다동남권, 기간산업·물류 중심지 우뚝

도일 남건욱 2009. 12. 27. 20:11
환태평양 최고의 고부가 클러스터 뜬다
동남권, 기간산업·물류 중심지 우뚝
일본 규슈와 협력 모색 “초광역과 연계”… 도로망 확충 선결과제
부산·울산·창원=이윤찬 기자·chan4877@joongang.co.kr

동남권 선도과제 주관기관인 덕양산업 현장 직원이 아반떼 HD 운전석 모듈을 생산하고 있다.

#1. 행정구역 초월한 중소기업 발탁

삼성테크윈은 LNG선에 들어가는 가스압축기를 생산한다. 연 생산규모는 400대가량. 미국 아틀라스 콥코, 독일 지멘스 등 세계적 기업과 자웅을 겨룬다. 경남 창원시 성주동에 공장을 둔 이 회사는 동남권(부산+울산+경남) 선도과제 주관기관에 선정됐다.

과제는 부유식 원유생산저장 설비(유전과 육지를 오가며 기름을 나르는 선박)용 연료 가스 압축기 개발. 부산시 녹산동에 위치한 동화엔텍(선박용 열 냉각기 제조업체), 마운틴 한라 콘트롤 밸브(밸브 제조업체) 등 2곳과 손을 잡았다. 세 기업은 제품을 공동 개발한다. 3년 내 출시가 목표다.

연구개발비 79억원(국비)이 지원된다. 현재로선 제품화 가능성이 높다. 삼성테크윈 이상명 선임연구원의 말이다. “연료 가스 압축기는 혼자 만들 수 없다. 열을 냉각시키는 제품이 있어야 하고, 밸브도 부착해야 한다. 기존엔 몸통 따로 꼬리 따로 만드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공동 개발하기 때문에 ‘조선사가 만족할 만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중요한 것은 세 회사가 행정구역의 높은 벽을 넘어 협력한다는 점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광역경제권이 형성되지 않아 창원시가 이 사업을 관할했다면 부산 소재 중소기업은 발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광역경제권은 이처럼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수십 년 된 울타리를 흔든다.

#2. 지역 초월한 인재 발탁

자동차 내장부품 전문업체 덕양산업은 울산시에서 손꼽히는 강소기업이다. 2007년 5587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세계 불황이 몰아 닥친 2008년에도 전년 대비 2% 증가한 5722억원을 기록했다. 올해엔 매출액 6000억원 돌파도 가능할 전망이다. 이 회사는 아반떼 HD, i30, 베르나 등 현대차의 운전석 모듈을 제작한다.

덕양산업은 탁월한 기술력으로 명성이 높다. 특허는 74개, 이 회사의 연구과정이 실린 논문은 93건에 이른다. 하지만 이 회사는 늘 인재 수혈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기껏해야 울산에서 채용할 수 있을 뿐이었다. 울산을 벗어나면 인지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덕양산업은 올 10월 동남권 선도과제 주관기관에 올랐다. 과제는 그린 내장부품 개발. 파트너는 현대자동차, 현대EP(원소재 업체), 폴리사이언텍(첨가제 업체) 등 3곳이다.

동남권 가능성 무궁무진

덕양산업으로선 일거양득이다. 제품을 공동 개발하는 것도 득이고, 인재난 해소도 득이다. 선도과제 주관기관에 선정되면 지방 거점대학의 인재를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덕양산업 권순우 책임연구원은 “동남권의 우수한 인재를 유치해 회사의 ‘100년 대계’를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광역경제권은 산업은 물론 인재 발탁에도 영향을 미친다.

행정구역이 다른 부산시·울산시·경남도가 뭉쳤다. 이들을 하나로 묶은 끈은 경제다. 3개 시·도는 올 10월 통합경제체제를 추진하는 기구인 동남권 광역경제발전위원회를 출범했다. 동남권 메가 리전(mega region) 시대가 활짝 열린 셈이다. 비전은 환태평양 시대 제1의 기간산업 및 물류 교통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거다.

계획에 따르면 해양·내륙·낙동강 등 3개 광역 발전축을 중심으로 부산 대도시권·울산 대도시권·진해만 환상도시권·내륙성장도시권·서북부 성장촉진권 등 6개 지역경제권을 만든다. 부산 대도시권은 물류·글로벌 비즈니스금융의 허브로, 울산 대도시권엔 자동차·조선·에너지 등 기반산업이 육성된다.

진해만 환상도시권엔 기계·메카트로닉스(창원시), 로봇산업(마산시), 조선(진해)이 유치된다. 사천만 환상도시권엔 항공우주산업, 내륙성장도시권엔 나노산업이 조성되고, 거창·산청·함양 등 동남권 서북부 지역은 녹색생명산업의 거점으로 만들어진다. 고부가 클러스터를 만들어 융복합 기지화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동남권의 이런 6대 지역경제권은 한일해협 국제경제권, 지리산문화권 등 초광역 경제권과 연계, 발전한다. 동남권 광역경제발전위원회 최연림 서기관은 “일본 규슈와 ‘다시 찾고 싶은 양국 지역 만들기’를 추진하고 있다”며 “협력관계가 공식 체결되면 동남권은 한일해협 국제경제권으로 가는 관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역경제권의 핵심은 선도산업 육성이다. 목적은 광역경제권별로 1∼2개 대표산업을 키워, 권역 내 부가가치 창출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지역산업육성책 ‘전략산업’을 효율적으로 묶은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전략산업은 시·도별로 각각 선정한 탓에 중복예산 논란이 있었다. 동남광역경제권 선도산업 지원단 한윤성 박사는 “전략산업은 부산·울산·경남에 각각 육성했기 때문에 중복 사례가 없지 않았다”며 “하지만 선도산업은 중복된 것을 묶어 ‘효율화’를 꾀했다”고 말했다.

동남권의 선도산업은 수송기계, 융합부품소재다. 동남권이 기계·자동차·석유화학·조선 등 기간산업의 중심지이자 해상 물류의 허브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수송기계는 육·해·공 수송 산업이 모두 포함된다. 그린카 오토벨트·해양플랜트 글로벌 허브 구축 등 시범사업이 추진된다. 그린카 오토벨트 구축사업의 목표는 세계 4대 그린카 강국으로 도약하는 거다.

해양플랜트 글로벌 허브 구축사업은 선박해양 시스템 산업을 육성하는 것으로, 2300만 달러에 이르는 수입대체 효과를 노린다. 또 다른 선도산업 융합부품소재는 신재생 고효율 에너지·로봇산업이 중심이다. 선도산업에 대한 지역 반응은 뜨겁다. 올 9월 현재 동남권 선도과제에 선정된 주관기관 및 파트너는 57개 기업에 이른다.

울산과학대, 한국기계연구원, 자동차부품혁신센터 등 30개 기관도 참여를 결정했다. 10월 말엔 40곳에 달하는 기업이 선도과제를 신청했다. 이들이 선도과제 주관기관에 선정되려면 1.4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한윤성 박사는 “선도산업의 육성 목적은 지역 및 국가경쟁력을 모두 제고하자는 것”이라며 “지역 기업의 반응이 좋아 알찬 열매를 맺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동남권 광역경제발전위원회는 실제 선도산업이 반석에 오르는 3년 후 수출 10억 달러, 고용창출 5000명을 기대한다.

부산∼울산∼마산 잇는 광역 클러스터 구상

광역경제권에선 산업만 육성되는 게 아니다. 인재도 양성된다. 그것도 광역으로 말이다. 한국해양대(해양 플랜트), 창원대(해양 플랜트), 부산대(기계기반융합부품소재), 부경대(수송기계안전편의 융합부품소재) 등 4개 대학은 동남권 선도산업과 연계된다. 기업 밀착형 교육으로 연구와 취업을 하나로 잇고, 선도 관련 연구공간도 집적화한다.

미취업 재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지역의 광역화는 세계적 흐름이다. 영국은 43개 카운티를 9개 광역경제권으로 묶었고, 일본은 47개 도도부현을 8개 광역지방계획권으로 통합했다. 강하고 큰 지역이 강한 국가를 만든다는 판단으로 통합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동남권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곳의 상주인구는 770만 명에 이른다. 전국 인구의 16%다. 지역 총생산은 140조원으로 국내 총생산의 17%를 차지한다. 더구나 동남권엔 조선·기계부품·자동차·석유화학 등 국내 주력산업이 모여 있다. 유럽∼인도∼중국 남부∼미국을 연결하는 해양교통의 중심축이기도 하다.

특히 동남권의 떼 묻지 않은 자연환경은 녹색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광역경제권이 성공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교통망이 제대로 깔려야 한다. 요컨대 부산에서 울산으로 통하는 길이 없다면 광역경제권 구상은 공염불에 그친다. 길이 없는데 어떻게 사람과 산업이 이동하겠는가.

국토해양부와 지역 광역경제발전위원회가 교통망 확충을 우선과제로 삼고 있는 이유다. 동남권 광역경제발전위원회는 먼저 광역경제권 내 거점도시를 빈틈없이 연결하는 철도망을 구축할 예정이다.

부산∼마산∼진주∼광양으로 이어지는 경전선 복선전철은 2017년 준공된다. 경남 함양과 울산을 잇는 동서 8축 고속도로도 설계 중이다. 이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동남권을 횡단할 수 있다. 지금까진 함양에서 울산으로 가려면 대구를 경유해야 했다.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재편해야

마산∼거제 연륙교도 2017년 준공을 목표로 건설하고 있다. 막혀 있는 마산∼거제 길이 뚫리면 부산으로 이어지는 트라이앵글 벨트가 형성돼 해양관광이 활성화될 전망이다. 부산시 외곽, 경남 및 울산의 중소형 산업단지를 잇는 부산외곽순환도로도 기본 설계 중이다. 동남권 광역경제발전위원회가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광역교통 환승제도 주목된다.

이는 울산·양산·김해·진해 등 동남권 각 도시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환승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도로망 확충 외 사회간접자본(SOC) 건설도 추진된다. 부산·울산·경남에 발전 거점 산업단지를 조성해 산업·물류·관광 벨트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부산항 신항 배후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국제물류도시를 조성한다.

광역산업단지, 복합물류단지, 지식창조도시가 들어선다. 울산엔 자동차, 조선해양 부품소재 중심의 기간산업 테크노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경남 마산엔 로봇시티가 개발된다. 이 거점 도시들이 모두 만들어지면 부산∼울산∼경남으로 이어지는 광역 클러스터가 구축된다. 그야말로 광역경제권이 완벽하게 구현되는 셈이다.

광역화는 무조건 묶는 게 아니다.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제대로 재편해야 한다. 그래야 동남 광역경제권이 세계 제1의 고부가 클러스터로 부상할 수 있다. 동남권 시대는 이미 개막됐고, 뱃고동 소리는 벌써 환태평양을 출렁이게 한다.

“거버넌스로 동남권 반석 위에 세울 터”
인터뷰 옥우석 동남권 광역경제발전위원회 사무총장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동남권 광역경제발전위원회 옥우석(57) 초대 사무총장의 어깨는 그래서 무겁다. 해야 할 일도,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동남 광역경제권을 반석 위에 올려놔야 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의 힘겨루기도 조정해야 한다. 옥우석 사무총장은 “거버넌스 전략으로 아래로부터 협력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동남권 광역 발전은 부산·울산·경남을 하나로 묶어 시너지를 내겠다는 것이다. 이전엔 그런 노력이 없었나?

“행정구역이 나눠져 있는 탓에 광역 개발이 추진된 적은 없다. 오히려 시설 및 자원에 대한 중복 투자 등 문제점이 많았다.”

>> 동남권 광역경제발전위원회의 역할은 뭔가?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라 시·도와 합의해 5년 주기의 중장기 계획과 단기 계획을 수립한다. 광역경제권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연계 협력사업을 발굴하고, 재원도 분담한다. 선도산업, 인재양성사업 등 광역권 내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대한 평가도 한다.”

>> 동남권의 지역총생산은 140조원에 달한다. 수도권에 이은 최대 규모다. 장점이 많을 것 같다.

“동남권은 기계·자동차·조선·석유화학 등 산업적 기초가 탄탄하다. 유럽∼인도∼미국을 연결하는 해양교통의 중심축인 것도 강점이다. 더구나 동남권은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유명하다. 녹색성장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 동남권 광역경제발전위원회 위원장은 부산시장, 울산시장, 경남도지사 등 3명이다. 세 명이 공식적으로 만나 회의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광역경제발전위원회는 법적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강력한 합의체라고 할 수 있다.”

>> 세 명의 의견이 엇갈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

“갈등은 필연적일 것이다. 지역 표심과 연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 타협할 수 있는 장을 만들 계획이다.”

>> 그래도 갈등이 계속된다면?

“총 62명의 자문단을 구성했다. 자문단에서 공동 위원장들의 결정을 도와줄 거다. 기획조정위원회도 양보·타협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공동 위원장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에 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

>> 사실 광역경제발전위원회는 내재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힘이 세지면 ‘옥상옥’, 힘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고 비판 받을 것이다. 이를 풀 수 있는 해법은 뭔가?

“거버넌스다. 연계협력으로 아래로부터 의견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내 임무이자 책무다.”

>> 광역화는 세계적 흐름이다. 하지만 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 과제는 무엇인가?

“광역경제권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대로 조성하는 게 관건이다. 특히 교통망 확충이 중요하다. 도로사정이 원활하지 않으면 광역경제권은 허상이다.”

>> 초대 사무총장으로서 어려운 점이 많을 것 같다.

“시·도 문화가 생각보다 크게 다르다. 동남권만의 문제는 아닐 거다. 시·도를 심리적으로 통합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거버넌스로 이를 해소할 생각이다. 중앙부처와의 탄탄한 협력관계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광역경제권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수 있다.”

>> 목표를 말해 달라.

“동남권을 세계 제1의 고부가 클러스터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협력의 경험을 쌓아야 한다. 조급하면 안 된다. 동남권 광역경제권을 성공적으로 발전시켜 국내외적 역할 모델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