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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반려견 산업 - 지금은 견우(犬友)시대, 반려견 산업이 달린다우수 견종 뽑는 도그쇼

도일 남건욱 2012. 3. 6. 16:19

 

커지는 반려견 산업 - 지금은 견우(犬友)시대, 반려견 산업이 달린다
우수 견종 뽑는 도그쇼 한해 100차례…반려견 유치원에서 납골당까지 매출 쑥쑥

한국애견협회가 주관하는 올해 첫 도그쇼가 2월 19일 서울 올림픽경기장 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체육관 내부는 쇼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개로 ‘견산견해(犬山犬海)’를 이뤘다. 크기도 종도 다른 100여 마리의 개가 한데 모였지만 행사장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였다. 간간히 들리는 개 짓는 소리가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행사장은 긴장이 흘렀다.

도그쇼는 애견의 외모·체력·균형감·성격 등을 평가하는 대회다. 우수한 견종을 보존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박애경 한국애견협회 사무총장은 “1988년 협회 설립과 동시에 영국의 도그쇼를 도입했다”면서 “한 달에 한번 꼴로 여는 대회마다 평균 200~250마리의 개가 참가한다”고 말했다. 이 협회를 비롯해 한국애견연맹, 세계애견연맹(FCI) 등에서 주관하는 크고 작은 국내 대회는 한해 100여건에 이른다. 행사 수와 함께 도그쇼에 참가하는 견공 수도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 열린 FCI 아시아 퍼시픽 섹션쇼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2000여 마리의 견공이 참가했다. 한국애견협회 관계자는 “세계 최대의 도그쇼인 영국 크러프츠쇼에는 해마다 3만여 마리의 반려견이 참가해 16만 명이 넘는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면서 “국내에서도 도그쇼가 하나의 대중 스포츠로 자리 잡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도그쇼 우승하면 몸값 5배 뛰어
개 덕분에 새로운 직업도 생겨났다. 대표적인 것이 ‘도그쇼의 꽃’이라 불리는 프로 핸들러다. 애견계의 ‘모델’이 되기 위해 참가견들은 대부분 짧게는 2~3달, 길게는 몇 년 이상 철저한 교육을 받는다. 주인이 직접 교육을 담당하기도 하지만 10% 가량은 프로 핸들러의 도움을 받는다. 프로 핸들러는 도그쇼에 출전하는 반려견의 미용부터 조종(핸들링)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전문가다. 프로 핸들러는 도그쇼에서 애견의 자질과 능력을 최대로 끌어낸다. 애견미용은 물론 수의학·번식학·견체학 등 다양한 지식을 갖춰야 해 애견 선진국에선 전문직으로 각광 받는다.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핸들러는 개 주인을 포함해 2000여 명이다. 이 중 프로 핸들러는 100여 명 남짓이다.


프로 핸들러로 인정 받으면 좋은 개를 갖고 있는 주인이 찾아온다. 이때 교육비용은 개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월 30만~100만원 선이다. 프로 핸들러 안선호(38)씨는 10년 넘게 이 일을 해왔다. 2월 19일 열린 대회에서 안씨가 위탁 교육한 생후 7개월의 시베리안허스키는 강아지 부문 1등을 차지했다. 그는 “대회 전 최소 1~2개월은 개와 함께 숙식하며 호흡을 맞춘다”면서 “일반적으로 시베리안허스키 새끼의 몸값은 대략 150만원 선인데 비해 각종 쇼에서 우승하면 1000만원 이상으로 값이 뛴다”고 말했다. 그는 3월에 국제 도그쇼에 참가하기 위해 캐나다로 떠난다.

도그쇼만 커지는 건 아니다. 국내 반려견 시장은 연평균 11%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규모는 2조원에 이른다. 한국갤럽의 2010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약 400만 가구가 반려견을 기르고 있고, 이들이 기르는 반려견 수는 500만 마리에 달한다. ‘반려견’이라는 용어 자리 잡은 2005년부터 숫자가 늘었다. 지상윤 농촌진흥청 연구사는 “개를 장난감이라는 의미가 포함된 ‘애완견’에서 인생을 함께 하는 ‘반려견’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생겼다”면서 “반려견을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관련 시장이 급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주인 출장가면 애견은 호텔 투숙
전체 반려견 시장의 60% 이상은 의료·미용 분야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관련 사업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이리온’은 반려동물 복합문화센터를 지향한다.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이곳의 방문객 수는 하루 평균 100여명으로 한 달에 3000~3500명이 이용한다. 이리온 관계자는 “지난해 2월에 개원 이후 매달 20~25%씩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문객이 이곳을 찾는 목적은 다양하다. 2300㎡(약 700평) 규모로 지은 이곳에는 동물병원은 물론 미용실·용품점·호텔·유치원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서 있다. 배연진 이리온 경영지원팀 부장은 “선진국에 비해 낙후된 반려동물 환경을 개선할 목적으로 개원했다”면서 “해외에서는 이미 반려동물 전문점과 동물병원이 함께하는 형태가 일반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내과·신경외과·영상의학과는 물론 치과·재활통증의학과·비만클리닉 등 10개 진료과를 갖춘 이리온 동물의료원은 대학병원을 제외하곤 전국 3500여 개 동물병원 가운데 최대 규모다. 호텔 객실 수도 40여 개로 많은 편이다. 이용가격은 방 크기에 따라 1박에 4만~20만원 선이다. 온돌방으로 된 객실 내부는 식기·쿠션·장난감으로 꾸며져 있다. VIP룸엔 주인이 언제든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웹캠도 설치돼 있다. 배연진 부장은 “주인의 출장·여행 등의 이유로 대개 객실의 3분의 1 정도는 늘 차 있다”면서 “휴가철이나 명절에는 늘 100% 만실이다”고 설명했다.

이리온에선 주인의 출근시간에 맞춰 등교하는 ‘유치원생’도 쉽게 만날 수 있다. 15~20마리의 원생들이 매일 유치원에서 배변 훈련, 예절 교육, 지능계발 등의 수업을 받는다. 애완견의 등원을 위해 출근길마다 이리온을 찾는다는 유정아(34)씨는 “가족이 집에 없는 시간에 혼자 남겨두기가 늘 미안했는데 이런 시설이 있어 마음이 놓인다”면서 “유치원에 오면 친구들도 사귀고, 선생님들이 때에 맞춰 공원 산책도 시켜줘 ‘우리 아이(강아지)’가 더 건강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유치원비는 견종에 따라 5만~7만원 수준으로 주2일, 주3일반을 한달 단위로 등록하는 사례가 많다.

이처럼 개를 가족의 일원으로 인식하면서 이들에 대한 대우 또한 가족에 준하는 추세다. 2200만 마리의 반려동물이 있는 일본의 시장 규모는 이미 14조원에 이른다. 최근에는 반려동물의 몸에 칩을 삽입하는 호적제도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을 정도다. 일본에 이런 문화가 자리잡은 데는 독신가구와 노령인구 증가가 한 몫을 했다. 국내 상황도 점차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15년 추산되는 독신가구 비율은 26%, 노령인구는 13%로 반려견을 찾는 사람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20년 전부터 애완견을 기르고 있는 조경희(67)씨는 “외로운 노인에게 반려견은 자식보다 더 의지하게 되는 존재”라면서 “부모가 자식에게 좋은 걸 다 해주고 싶듯 강아지에게도 같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에서 반려견 납골당, ‘아롱이천국’을 운영하는 장효현 크린코리아 대표는 일찍이 그런 애견인의 마음을 읽었다. 장 대표는 10여 년간 영국·미국·일본 등 애견 선진국을 두루 돌아다녔다. 이미 동물 장례가 보편화된 일본을 벤치마킹 해서 1999년에 국내 최초로 동물장묘업을 도입했다. 이 시설을 찾는 사람은 해마다 5~10%씩 증가하고 있다. 이곳에서 하루 평균 10~15마리의 개가 장례를 치른다. 그 과정 역시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인이 직접 사체를 가지고 오기도 하지만 업체에서 마련한 운구 리무진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염을 하고, 입관 후 화장한다. 장 대표는 “모든 과정이 1시간 남짓이면 끝나지만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하는 가족이 많다”고 했다.

“장례 내내 오열하는 건 물론이고 울다 쓰러지는 사람도 많이 봤습니다. 사람 못지 않게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해요.”
1650㎡(약 500평) 규모의 건물은 장례식장과 납골당으로 이뤄져 있다. 2층에 위치한 분향소를 지나면 8000여개의 납골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빽빽이 들어찬 유골함 곁에는 주인과 함께 찍은 사진과 더불어 개가 평소 좋아하던 장난감·간식 등도 있다. 장례를 치르는데 20만~40만원이 들고 납골당에 안치하면 1년에 10만~100만원의 유지비를 더 내야 한다. 적지 않은 비용이다. 그러나 12년 넘게 기른 강아지의 화장을 기다리는 김지은·지혜(가명)씨 자매는 “돈이 얼마나 들지 생각해본 적은 없다”면서 “가족이 죽었는데 비싸다고 장례를 치르지 않는 법은 없지 않느냐”며 되물었다. 장 대표는 “경기가 좋으면 고급 장례용품을 선택하는 손님이 늘어나긴 하지만 대개 경기에 구애 받지 않는다”면서 “반려견 장례를 치르는 이들을 두고 돈이 많거나 별난 사람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는데 여유가 없어도 가족처럼 생각하는 마음에 이곳을 찾는 손님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8000여개 납골당 빽빽이 들어차
전국에 반려견을 위한 화장시설은 이곳을 포함해 강화도·부산 등 모두 5곳. 아직까지 규제가 심해 수요에 비해 시설이 많지 않다. 때문에 수도권은 물론 강원도·전라도·제주도 등지에서도 이곳을 알고 오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 납골당에 와서 그리움을 달래는 사람들로 이곳은 휴일이 따로 없다. 볕이 잘 드는 남향 창가의 경우 ‘예약석’을 써 붙인 곳도 적지 않았다. 장효현 대표는 “필요한 사업이고,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도 성장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박애경 한국애견협회 사무총장은 반려견 시장의 성장으로 새로운 사업이 각광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려견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바뀌면서 사람처럼 옷을 입히고, 유기농 음식을 먹이고, 장례를 치르게 됐다는 것이다.

박 사무총장은 “반려견 시장이 2000년대 초반까지 주로 외형적인 성장을 이뤘다면 이젠 내실을 다지는 시기가 됐다”면서 “의식이 성장하는 만큼 관련된 요구도 늘어나 시장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정연 이코노미스트 기자 jypow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