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세계 원전의 미래 - 독일 신재생에너지, 프랑스 원전에 초점‘원전 제로’ 일본은 에너지 절약과 분산전원 독려하지만 전력 부족 전망

도일 남건욱 2012. 5. 17. 13:39

 

세계 원전의 미래 - 독일 신재생에너지, 프랑스 원전에 초점
‘원전 제로’ 일본은 에너지 절약과 분산전원 독려하지만 전력 부족 전망
박미소 이코노미스트 기자 smile83@joongang.co.kr

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전을 덮친 지 1년이 지났다. 이 사고는 체르노빌 이후 원자력 사고에 대해 둔감했던 전 세계 사람의 위기 의식을 일깨웠다. 탈원전을 목표로 한 독일, 원전 제로 상태에 돌입한 일본, 전력 76%를 원전에 의존하는 프랑스의 사례를 통해 세계 각국의 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짚어봤다. 기로에 선 국내 원자력 발전의 향방, 현실적인 대안에 대해서도 전문가 의견을 들었다.

정책을 살펴볼 때 탈원전을 가장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 정부는 2011년 5월 30일 원전 17기를 2022년까지 모두 폐쇄할 것을 결정했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일본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다. 이후 독일의 여론이 반원전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정부의 움직임도 빨랐다. 1980년 이전에 건설된 원전 7기를 긴급 정지했고 특별 안전점검을 수행했다. 독일 원전의 수명연장 계획은 2010년 의회의 승인을 받고 2022년 이후에도 8~14년씩 더 가동할 수 있게 됐는데,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정부가 취한 조치에 따라 수명연장 작업도 잠정 중단됐다.

이들 노후원전 7기와 크루에멜 발전소 등 8기는 가동중단에 들어갔고 나머지 9기 가운데 6기는 2021년 말까지, 최신 원자로 3기는 2022년 말까지만 가동할 계획이다. 독일 정부는 17%인 재생에너지 비중을 10년 안에 두 배 수준인 35%까지 올려 에너지 생산 수급을 맞춘다는 목표를 세웠다. 원전 없는 세상으로 착실히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독일의 전체 에너지 생산 중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9년 기준으로 26%에 달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원전 폐쇄를 선언한 것에는 여러 가지 배경이 있다. 1998년 당시 집권당이던 독일사민당과 녹색당은 운영중인 원전의 수명을 32년으로 확정하고 기간이 다 되는 원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하도록 원자력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의적인 여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원전 폐지 정책을 고수할 경우 전기요금 상승과 러시아 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에너지 수급이 취약해질 것이라는 지적이 재계를 중심으로 나온 것이다. 2008년 실시한 원전 계속운전 여론조사에서는 찬반 투표율이 모두 46%로 나와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독일은 전력 예비율 높아
2009년 집권한 메르켈 총리의 정부는 초반에는 원전 폐지정책을 보류하는 입장을 보였다. 후쿠시마 사건을 계기로 원전을 폐쇄하는 방향으로 급선회 한 것은 메르켈 총리가 물리학 박사 출신이라는 점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안전한 에너지를 추구할 뿐 아니라 독일이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분야를 키우고 선도국가로 앞서나가게 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은 재생에너지 분야 전환에 성공한 첫 번째 산업국가가 될 것이며 이를 통해 그린기술의 선두자가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독일이 후쿠시마 사고 이후 빠르게 원전을 닫을 수 있었던 것은 현실적으로 전력 공급 인프라가 원전 없이도 큰 이상이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독일은 원자력의 설치비중(11%)과 발전량 비중(22%)이 우리나라와 일본에 비해 각각 10%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원자력에 의존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다. 전력예비율 측면에서도 독일은 우리나라와 사정이 크게 다르다. 전력 예비율은 전기 공급능력에서 최대 전력수요를 뺀 값을 다시 최대 전력수요로 나눈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15% 수준을 유지하는데 2010년 독일의 설비예비율은 96.4%였고 재생에너지를 제외하고도 설비예비율 34.8%를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원전을 제외하고서도 수급에 큰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

 

원전 사고로 세계에 충격을 던진 일본은 쓰나미 이후 에너지 공급 전략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며 시설 중단에 돌입했다. 54기 원전 중 마지막까지 홀로 가동 중이던 도마리 원전이 5월 5일 전력 생산을 멈추고 정기점검에 들어감에 따라 일본은 42년 만에 ‘원전 제로’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일본의 발전 가능 설비용량은 2010년 약 210GW에서 후쿠시마 사고 이후 170GW로 대폭 감소했다. 지속적인 전력부족 현상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일본 전력의 30%를 담당하던 원전이 모두 멈추면서 대체 시설로 화력발전소를 투입했다. 전력 소비를 절감하기 위한 전국적인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단순히 절약하는 것 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다양한 규제를 완화하며 일반 개인들도 분산전원을 사용하도록 독려하는 중이다. 분산전원은 소용량의 전력저장시스템, 발전시스템을 일컫는 말로 수력, 태양열, 풍력 등 작은 규모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이 여기에 포함된다.

원전사고 이후 일본 정부는 2012년 중반까지 신에너지 정책 개발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전의 에너지기본계획은 청정에너지로 분류한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비중의 확대를 추구하고 있었는데 사고로 이후 국내외 여론이 원전 가동 재개를 거세게 반대하고 있어 향후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결국 앞으로 일본이 에너지정책에 있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지는 2012년 중반에 결정된다.

독일과 일본의 사례와 반대 경우로 프랑스를 들 수 있다. 프랑스는 전력의 76%를 원전에 의존하고 있다. 2011년 1월 기준으로 프랑스에서 가동중인 원전은 58기다.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프랑스는 원전 위주의 에너지 정책에 변화를 주지 않고 있다. 원전을 모두 가동하는 와중에도 지난 겨울에는 심각한 한파 때문에 전력 소비가 급증해 곤란을 겪었다. 난방이 전체 전력 소비의 3분의 1이나 차지하는 프랑스는 부랴부랴 옆 나라 독일로부터 전력을 수입해 위기를 모면했다. 당장 원전을 축소하기는 현실적으로도 어려워 보이는 상황이다.

프랑스 사회당 원전 의존도 낮출까?
대신 프랑스는 원전 안전에 더 신중을 기하는 방법을 택했다. 프랑스 원자력안전청은 원전 운영회사인 프랑스전기에 대규모 재난과 재해에도 안전하게 가동될 수 있도록 원전 시스템의 강화를 주문했다. 이를 두고 과학잡지 ‘네이쳐(Nature)’는 솔직하고 전향적인 시도”라고 평가했다. 프랑스 원자력안전청은 100억달러 이상을 안전 보완에 들여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원전 위주의 에너지 정책 기조를 유지하던 프랑스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최근 치러진 프랑스 대선 때문이다. 선거에서 승리한 프랑수와 올랑드 사회당 후보는 프랑스의 원전 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2024년까지 원전 의존도를 50%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은 전기요금이 원전 위주의 전력 공급 덕분이라는 점, 에너지 정책에 변화를 줄 정도로 프랑스의 재정 상황이 풍족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사회당의 공약이 현실화 될 가능성은 미지수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