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수동에 사는 박형수(59)씨는 5월에 집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20년 넘게 살아온 집을 새로 단장하는 건 게스트 하우스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그는 225㎡형 방 4개짜리 2층 단독주택을 개조해 방 8개짜리 게스트 하우스로 꾸밀 계획이다.
자녀가 모두 결혼한 뒤 남는 방 2개를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던 그는 지난해부터 게스트 하우스 창업에 관심을 가졌다. 박씨는 “퇴직금으로 덜컥 사업을 하기도 겁나고, 마땅한 기술이 없어 할 수 있는 일도 요식업에 불과했다”며 “원래 살던 집에 방을 늘려 게스트 하우스로 개조하면 수익이 나겠다 싶어 최근 인테리어 공사를 계약했다”고 말했다.
그가 인테리어와 침대·화장대 등 가구 구입에 쓸 비용은 약 7000만원. 그는 “한 명 당 숙박료가 2~3만원 선인데 방 8개에 30여명의 손님을 받는다고 할 때 만실이 되면 하룻밤에 60만~90만원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웃주민들 중에도 지난해부터 집 구조를 바꿔 게스트 하우스를 시작한 사람이 꽤 많다”고 말했다.
게스트 하우스 1번지 마포구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1000만명을 넘어서면서 이들을 겨냥한 게스트 하우스가 속속 생겨났다. 게스트 하우스는 현지 가이드나 단체 관광상품을 이용하지 않고 자유롭게 여행하는 외국인 배낭여행객을 위한 숙소다. 주머니가 가벼운 배낭여행객에게 값비싼 호텔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미국·유럽 등 관광으로 잘 알려진 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숙박시설이지만 국내에서는 2000년대 이후 알려지기 시작했다. 외국 자유여행을 경험한 젊은 층이 늘면서 국내에도 게스트 하우스의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국내 게스트 하우스 창업 열풍이 처음 분 곳은 제주도다. 이 일대에서만 약 400개의 게스트 하우스가 성업 중이다. 서울 시내에는 올해 3월 기준으로 215개 업소가 게스트 하우스로 등록돼 약 700여개의 객실을 제공한다. 부동산 관계자들에 따르면 실질적인 수는 더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서울 마포구의 한 부동산 업자는 “고시원 방을 외국인 관광객에 빌려주거나 원룸·오피스텔을 임대업으로 신고한 채 간판만 게스트 하우스로 바꾼 곳도 적지않다”며 “신촌역 근처에만 20곳이 넘는 걸로 알고 있고 현재 영업을 준비하는 곳도 10군데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게스트 하우스가 급증한 주된 이유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이들을 위한 숙박시설이 부족해져서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약 1100만명으로, 2006년(615만명)의 2배 수준이다. 그러나 이들을 위한 숙박시설은 아직 부족하다.
서울시 관광과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는 1만6000여 실의 숙박시설이 부족하다.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의 평균 숙박률은 95%가 넘는다. 결국 시내에서 숙소를 찾지 못한 이들이 경기 수원·인천·의정부 등으로 ‘원정 숙박’을 가자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외국인 관광 도시민박업 지정제도(이하 도시민박업)’를 만들었다.
도시민박업이 생기기 전까지 일반주거지역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숙박시설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민박업이 도입되면서 도심에 게스트 하우스를 짓기 편해졌다. 일반주거지역이라도 건축물의 연면적이 230㎡ 미만이면 도시민박업으로 신고하고 영업할 수 있다.
본인의 건물이 아니라도 임차해서 게스트 하우스를 열 수 있다. 관할 구청에 평면도와 신고서를 제출하면 2주 안에 허가를 받고 운영할 수 있다. 그러나 연면적이 230㎡ 이상이면 정식 숙박업으로 등록해야 하고 종합소득세·부가가치세 등 세금을 내야 한다. 숙박시설이기 때문에 공중위생관리법의 규제를 받고, 소방법 등 관련 법규 적용도 더 엄격해진다.
서울에서는 외국인이 많이 찾는 신촌이나 인사동·명동·동대문이 있는 마포구·종로구·중구 등에 게스트 하우스가 많다. 최근 성형수술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강남구 논현·신사동 일대에도 게스트 하우스가 늘었다.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는 공항을 이용해야 하는 사람들이 부담 없는 가격에 잠시 머물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를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 시내에서 게스트 하우스 1번지로 통하는 곳은 신촌~홍대 입구를 잇는 마포구 일대다. 서울 마포구청 관계자는 “지난해까진 200곳이 채 안됐는데 올 들어선 거의 1주일에 1개 꼴로 게스트하우스가 문을 연다”며 “지난 연말에 외국인 관광 도시민박업이 도입되며 법규 관련 문의를 하는 사람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서울 합정역 근처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영국인 에밀리 웰치(23)씨는 “두 달 간 동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는 중에 한국에 들렀다”며 “다른 나라에 비해 저렴하면서도 최신 시설인 게스트하우스가 많아 여행이 즐겁다”고 말했다. 그는 “홍대, 합정역 근처는 공항철도를 이용하기 편하고, 유흥이나 먹거리를 즐기기 좋아 여행객 대부분이 이 근처 숙소를 선호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