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일부일처제는 왜 생겼을까

도일 남건욱 2013. 8. 21. 16:50


Science - 수컷이 남의 젖먹이 살해 막은 묘책?
일부일처제는 왜 생겼을까
조현욱 중앙일보 객원 과학전문기자·코메디닷컴 편집주간
영장류 4분의 1이 일부일처제 … 인간에게 적용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짝을 지을 상대는 많고도 많은 데 왜 하필 한 명의 상대에게만 매달리는가? 사랑과 세금 우대를 이유로 꼽는 사람이 많겠지만 우리의 영장류 선조에게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젖먹이가 혈연관계 아닌 수컷에 의해 살해되는 걸 방지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사실 ‘사회적 일부일처제’는 포유동물 일반에서 흔치 않은 현상이다(일부일처제에 사회적이란 수식어가 붙은 것은 하나의 암컷과 수컷이 오랜 기간 붙어 지내지만 가끔 바람도 피운다는 뜻이다). 하지만 영장류의 4분의 1 이상은 이렇게 산다. 인간·긴팔원숭이·티티원숭이 등이 그런 예다.

영장류 230종 짝짓기 연구해 봤더니

애초 인간에게서 남녀 한 쌍 관계가 성립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분야에는 암컷의 짝짓기를 감시한다거나, 아이를 혼자가 아니라 부모가 함께 보살피면 유리하다거나, 유아를 살해하는 수컷으로부터 아기를 지켜낸다거나 하는 여러 가설이 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과 맨체스터대 연구팀이 어느 가설이 설명력 있는지 검증해 봤다. 

7월 28일자 ‘미 국립과학원 회보(PNAS)’ 온라인 판에 실린 연구결과를 보자. 이들은 영장류 230종의 짝짓기 행태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위의 가설과 관련된 행동 특성을 선별했다. 이어 종 사이의 유전적 관계 자료를 이용해 수백만 건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했다. 이런 특성 중 어느 쪽이 먼저 진화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모두 세 가지 특성이 일부일처제의 진화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 오직 유아 살해와 관련된 행동만이 실제로 일부일처제보다 시기적으로 앞서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것이 일부일처제 진화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젖먹이 아기는 혈연관계가 아닌 수컷에 의해 살해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젖먹이기를 중단하면 엄마가 다시 배란이 되고 임신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암수 한 쌍 관계가 형성되면 엄마는 수컷의 습격에서 새끼를 지킬 수 있다. 게다가 수컷은 추가 자원을 제공해 새끼 돌보기를 돕는다. 이는 새끼가 일찍 젖을 뗄 수 있게 만들며 이 또한 살해 위험을 낮추는 요인이다. 연구팀은 “화석 기록에는 행태의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행태의 진화를 재구성하는 것은 최근까지도 매우 힘든 일이었다. 우리가 사용한 통계적 접근법은 화석에 생명을 불어넣고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의 일부일처제가 진화한 요인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스위스 취리히대의 영장류학자인 카렐 반 쇄익은 “연구 결과가 탄탄하다”면서도 “이것이 인간에게까지 확대 적용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고 평했다. 인간은 진정으로 일부일처제였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증거가 많으며, 오늘날 많은 문화군에서 일부일처제는 사회적으로 강요된 제도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인간의 직계 조상인 호미닌 속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일부일처제였다는 화석 증거가 존재한다고 반박한다. 

또한 “유아 살해가 인간에게서 일부일처제가 진화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우리의 주장이지만 그게 유일한 요인이라거나 일부일처제가 보편적 제도라고 주장하는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조상이 살던 때처럼 유아 살해 위협이 큰 상황에서는 보호하고 보살필 아버지를 갖는 건 현대 인류의 ‘긴 어린이 시기’가 원활히 진화하게 만들어주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일처 사회의 짝짓기 행태는 어떤 것일까. 과연 “미녀는 부자와 결혼한다”가 사실일까. 이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미국 과학논문 사이트인 유레칼러트 등에 올 2월에 발표된 내용을 보자. 미국 노터데임대 사회학과의 엘리자베스 매클린톡 교수의 연구다. 그에 따르면 사업가 도널드 트럼프와 모델 멜라니아 나우스의 결혼 사례는 일반화할 수 없다. 물론 일반인의 경우에도 여성이 아름다울수록 파트너 남자의 교육 수준과 수입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연구에는 중요한 요인 두 가지가 빠져 있다. 첫째, 지위가 높은 사람은 육체적으로 좀 더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과체중일 가능성이 작으며 비싼 돈이 드는 치아 교정을 하거나 피부과·성형외과에 드나들 여유가 있다. 더욱 멋진 패션을 갖출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둘째, 파트너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자신과의 유사성이다.

여성은 남성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 중시

이 같은 요인을 고려한 뒤 다시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여성이 자신의 미모를 남성의 돈이나 사회적 지위와 교환하는 일반적 경향은 발견되지 않는다. 절대다수의 남녀는 자신과 사회적 지위나 신체적 매력 정도가 비슷한 사람을 파트너로 고르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유유상종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고 할까.

물론, 전통적으로 여성이 선호하는 남편감의 중요 조건은 돈과 사회적 지위다. 1984~89년 세계 37개 문화권의 남녀 1만여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자. 이에 따르면 여성은 배우자의 경제적 전망을 남성보다 100% 중요하게 여겼다. 일본 여성은 150%, 네덜란드 여성은 36%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또한 절대다수의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배우자 후보의 사회적 지위를 더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만 여성은 63%, 잠비아는 30%, 독일은 38%, 브라질은 40% 더 높은 비중을 뒀다. 이는 미국 텍사스오스틴대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가 1989년 발표한 논문의 내용이다.

이에 비해 남성이 선호하는 배우자의 조건은 매력적인 몸매와 얼굴이다. 미국에서 1930~80년대 10여년의 간격을 두고 남녀의 배우자 선호를 조사한 연구결과 5건을 보자. 모든 경우에서 남성은 배우자의 몸매와 얼굴이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이에 비해 여성은 남편감의 좋은 몸매와 얼굴을 “바람직하지만 그리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여겼다.

이 같은 남녀의 선호를 종합하면? “매력적인 여성은 돈이 많고 지위가 높은 남성과 커플을 맺는다.” 하지만 맨 앞에 소개한 연구를 보면 일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커플은 사회적 지위나 신체적 매력 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맺어지는 것이 보통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