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 영화 <인 타임>의 ‘팃포탯 전략’ … 배신은 단호하게 응징해야 협력 강화

도일 남건욱 2015. 1. 28. 13:53

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 

영화 <인 타임>의 ‘팃포탯 전략’ … 배신은 단호하게 응징해야 협력 강화 

박용삼 KAIST 경영공학 박사

▎함무라비 왕의 법전이 새겨져 있는 비석. 팃포탯 전략은 함무라비 법전에 새겨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 법칙과 매우 흡사하다.
2011년 개봉한 영화 <인 타임(In Time)>. 가까운 미래, 인류는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무섭도록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해 낸다. 유전자 변형을 통해 누구나 25세가 되면 노화가 멈추게 한 것까지는 오케이. 그런데 팔뚝에 심어진 ‘카운트바디 시계’에 남겨진 시간만큼만 살 수 있게 된 것이 치명적이다. 일단 1년치의 시간은 무상으로 주어지는데 1년을 다 소진하고 시계가 영(0)이 되는 순간 심장마비로 죽게 된다. 수명을 연장하려면 일을 하든, 빌리든, 훔치든 간에 추가 시간을 보충해야 한다.

한 번 보고 말 사이가 아닌데도 반목 일삼아

사람들은 음식을 사고, 버스를 타고, 집세를 내는 등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시간으로 계산한다. 커피 한 잔에 4분, 버스 요금은 2시간, 스포츠카 한 대는 59년어치의 시간을 지불해야 한다. 그야말로 시간이 곧 돈인 세상이다. 부자들은 몇 세대에 걸쳐 영생을 누릴 수 있지만, 가난한 자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야 한다. 시간 빈민층에 속하는 윌(저스틴 팀버레이크)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자신의 빈약한 시간 잔고를 확인해야 하는 처지이다. 그러던 어느 날, 윌은 영원한 삶에 염증을 느껴 자살하려는 어느 부자에게서 100년의 시간을 공짜로 받는다. 이제 궁핍한 삶은 끝났다고 기뻐한 것도 잠시, 일을 나간 어머니가 갑자기 올라버린 버스요금 단 2시간이 모자라 윌의 눈 앞에서 사망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는 빈익빈 부익부가 당연시되는 불공평한 사회 시스템에 진저리를 치며 어머니의 복수를 결심하는데???.

게임이론에서 다루는 게임은 크게 일회성(One-shot) 게임과 반복(Repeated) 게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일회성 게임은 한 번 하고 말기 때문에 게임 참가자 누구나 체면이고 후환이고 따질 것 없이 노골적으로 본색을 드러낸다.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에서처럼 이기심에 눈이 멀어 제 발로 함정에 빠지는 행동도 불사한다. 하지만 똑같은 게임이 여러 번 반복되는 반복 게임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이번 회(回)에서의 나의 행동이 다음 회에서 상대방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고차원적인 행동 조율이 가능해진다. 특히 한 몫 크게 챙기고 관계를 끝장내기보다는 욕심을 조금 줄이며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이득이 되는 경우라면, 자발적인 협력이 싹을 튼다(사실 우리 모두 성질 죽이며 살고 있지 않은가).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던가? 영화 속 빈민가 사람들은 누구나 생명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에 극도로 편협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 모두가 일회성 게임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유층들은 시간이 넉넉하기 때문에 우아하게 예의를 갖추고 협조적 행동을 한다. 반복 게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 앞에 놓인 실제 현실 상황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 일회성일까 반복일까? 아쉽게도 적정 선에서 타협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상황임에도 사람들은 눈 앞의 작은 이득에 너무도 쉽게 무너져 내린다. 여당과 야당, 노와 사, 대기업과 중소기업, 아래층과 위층, 입주민과 경비원은 한번 보고 말 사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매번 일회성 게임의 행태만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방법은 있다. 게임의 규칙(Rule)을 잘 설정하면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 개인들 간에도 협력이 발생할 수 있음이 밝혀져 있다. 1980년 미국 미시간 대학의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 교수는 서로 다른 개인 또는 단체들 간에 어떻게 하면 협력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 그는 여러 게임이론가와 컴퓨터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협력전략 토너먼트를 개최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가장 우수한 전략(프로그램)으로 팃포탯(TFT, Tit for tat)이 선정되었다(Tit과 Tat은 모두 ‘가볍게 때린다’는 의미이며, 이를 합친 Tit for tat은 ‘맞대응’을 의미).

러시아 태생의 미국 수학심리학자 아나톨 래퍼포트가 제안한 TFT 전략은 엄청나게 길고 복잡한 지시명령들로 이뤄진 다른 전략들과는 달리 극도로 단순한 것이 특징이다. 그 내용은 ①첫 회 게임은 경쟁자들 간에 협력으로 시작한다②다음 회에는 바로 전번 회에서의 상대방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한다 (상대가 협력했으면 나도 협력, 상대가 배신했으면 나도 똑같이 배신). 이러한 TFT 전략 하에서는 놀랍게도 이기적인 개인들 간에 매우 튼튼한 상호협력을 유도할 수 있었다.

TFT 전략은 기원전 1700년경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법전에 새겨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 법칙(lex talionis)과 매우 흡사하다. 고대인들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그런데 TFT 전략이 작동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전제가 있다. 상대방의 배신행위는 단호하게 응징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게 좋다고 상대방의 배신에 대해 어정쩡하게 대응하면 더 이상의 협력은 불가능하다. 예로부터 일벌백계(一罰百戒)나 읍참마속(泣斬馬謖)이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코레일 무임승차 문제가 국회에서 논의된 적이 있는데, 지난 5년(2009~2014년) 간 무임승차로 적발된 건수가 129만 건이나 된다고 한다. 신뢰사회라고 말들은 많이 하는데 여전히 무임승차가 만연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응징의 강도가 약했기 때문일 수 있다. 실제로도 원래는 운임의 최고 10배까지 벌금을 매길 수 있지만, 0.5배에 그친 것이 87.3%, 1배 징수가 10.9%, 2~10배 징수는 1.8%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와 달리 미국 국세청(IRS)은 화끈(?)하다. 최근 IRS는 부유층의 역외 탈세 감시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는데, 실상 2009년 이후 지금까지 적발된 사람은 70여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무려 4만3000여명이 탈세를 자진신고 했고, 벌금과 세금을 합쳐 약 60억 달러를 냈다고 한다! 적발된 건에 대해서는 예금액의 1.5배 에 달하는 혹독한 벌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신뢰는 말하기 좋고 듣기 좋지만 거저 오지는 않는다. 무심한 듯 단호한 룰만이 신뢰를 떠받치는 주춧돌이다.

무심한 듯 단호한 룰이 신뢰 떠받쳐

자, 이제 마무리. 부자들만이 모여 사는 지역으로 잠입한 윌은 금융 재벌의 딸인 실비아(아만다 사이프리드)와 의기투합해서 시간 도둑의 길을 걷는다. 시간 은행을 털어 훔쳐낸 시간을 빈민들에게 거저 나눠주는 것으로 사회에 대한 항거와 어머니의 복수를 대신한다. 홍길동 형님의 SF 버전이라고나 할까? 한편 <인 타임> 속 빈부 격차는 현대 자본주의 세상의 극단적인 묘사로도 읽힌다. 빈민가는 항상 시간에 목마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촉박하고 분주하게 돌아간다. 반면 부촌에는 영생을 누릴 만큼 시간이 넘쳐 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느긋하고 여유가 넘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2015년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박용삼 - KAIST 경영공학 박사로 포스코경영연구소 산업전략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정보통신 기술정책 수립 업무를 맡았다. 포스코에서 10년 넘게 신사업·신기술 투자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