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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의 국제 통화 헤게모니 다툼

도일 남건욱 2015. 4. 6. 13:32

점입가경의 국제 통화 헤게모니 다툼 - 위안화 부상에 엔화 반격 주목 

IMF 보유 통화 문제 10월에 결정... 엔화 약세 땐 위안화 타격 가능성 

이공순 글로벌모니터 에디터

▎저우 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총재. / 사진:중앙포토
저우 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총재는 3월 22일 국제통화지금(IMF)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가 참석한 중국 개발 포럼에서 ‘위안화의 국제 보유 통화화’를 역설했다. 이날 회의의 의제는 위안화 국제화와는 관계가 없는 ‘뉴노멀 시대의 건전한 통화정책’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저우 총재의 발언은 ‘작심하고 의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위안화의 국제적 지위가 보유 통화로 상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IMF에서 그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IMF는 지난해 말에 2015년에는 중국의 위안화를 IMF 특별인출권(SDR)에 포함시키는 문제를 결정할 것이며, 올해 5월부터 비공식 논의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올 10월에 최종 결정). 현재 SDR은 IMF의 기초 자산으로 달러·유로·엔·파운드화의 4개국 통화만을 보유 통화로 인정하고 있다. 보유 통화 변경은 5년마다 심사가 이루어지며, 지난 2010년에는 중국 위안화가 ‘덜 자유롭게 교환된다’는 이유로 보유 통화 편입을 거부한 바 있다. 라가르드 총재는 저우 총재의 발언에 대해 “위안화는 SDR 바스켓에 분명히 포함되어 있으며, IMF는 이를 위해 중국과 협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세계 외환보유액 총액 중 위안화 비율은 1.5%

IMF SDR에 위안화를 보유 통화로 편입시키는 것은 IMF 체제뿐만이 아니라, 국제 통화 체제 전반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도 IMF 보유 통화가 되면, 각국은 자국의 외환보유액 가운데 일정 비율을 중국 위안화로 교체할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의 통계에 따르면 세계 외환보유액 총액 가운데 지난해 말 현재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1.5%에 불과하다. 그러나 IMF 보유 통화가 되면 이 비율은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말 현재 국제 결제 수단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1.81%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도 지난해 12월의 2.17%에서 감소한 것이다. 중국의 금융 위기론이 부상하면서 위안화 가치가 하락하고 중국에서 자금이 유출된 때문으로 보인다.

문제는 기존 외환보유액에서 어느 통화의 비중을 줄이고, 그것을 위안화로 대체하느냐는 것이다. 이미 유로화의 비중은 2000년대 들어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로화 약세에도 더 이상 외환보유액에서 유로화 비중을 줄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가장 유력한 매각 대상은 달러화와 엔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 환율 결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역수지가 아니라,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에 의존한 포트폴리오 효과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경상흑자국의 외환보유액 상의 비중 변동이다(BIS 보고서).

경상흑자국들이 외환보유액에서 달러화 비중을 줄이면, 민간 투자자들은 이를 추종하며, 따라서 만일 달러화가 약세로 전환되는 조짐이 보인다면 달러화 매도 공세는 더욱 심해지는 ‘눈덩이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보유 달러 매각은 미국으로서는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럴 경우 미국은 불가피하게 금리를 인상해야 할 압력을 받는다. 만일 달러화 매도 현상이 발생하면 미 자산시장, 특히 미국채 시장과 증시에 투자된 외국계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오게 되기 때문에 미국의 국채 수익률(금리)이 상승하고 미 증시 하락을 야기할 것이다. 만일 미국이 이런 압력 탓에 금리를 인상한다면, 국채 수익률은 더 빠른 속도로 상승할 것이며 연준은 국채 수익률 상승을 저지하기 위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그리고 높은 폭으로’ 금리를 인상해야 할 것이다.

IMF의 중국 위안화 보유 통화화 논의가 5월부터 본격화되기 때문에, 이제까지의 ‘사건’들은 표면적으로는 격렬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초전’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위안화의 지위를 최대한 낮추기 위해서, 또는 아예 실격시키기 위해서 움직일 것이며, 중국은 새로운 국제통화 기구의 창설을 통해 기존 통화들의 기득권을 파괴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 시도하고 있는 또 다른 노력은 최근 이슈가 된 중국 주도의 국제 금융기구 설립이다. 아시아인 프라투자은행(AIIB)은 이미 지난 3월 말로 창립 멤버 모집을 끝냈고, 내년 초에는 자본금 1000억 달러 규모의 브릭스개발은행(BRICS Develoment Bank, 중국·러시아·브라질·인도·남아공 참여)이 출범할 예정이다. 중국 주도의 국제 은행의 설립은 해당 지역 국가들에게 금융 지원을 명분으로 위안화 사용 확대를 권유할 수 있기 때문에 위안화 국제화에 반드시 필요한 정책 네트워크가 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달러화 헤게모니에 대항할 수 있는 금융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 미국이 AIIB 설립을 꺼린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과 미국의 힘겨루기 1라운드는 중국의 판정승이었다고 할 수 있다. AIIB 창설멤버 참가국 숫자는 영국을 신호탄으로 해서 모두 49개국에 달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과 아시아 국가들이 참여했다. 또한 그동안 미국의 ‘동맹’으로 간주된 호주와 한국도 참여했다. IMF의 라가르드 총재는 “IMF는 AIIB와 협력하게 되면 기쁠 것”이라고 밝히면서, 인프라 투자에 협력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중국 위안화의 진출로 가장 곤경에 처한 것은 일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의 경제적 헤게모니를 상실할 뿐만 아니라, 자칫하다가는 아예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지역 경제 공동체(한중일+아세안)에 흡수될 위험에 놓여 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지난 3월 27일 보아오 포럼에서 “아시아지역 경제 공동체 설립을 완수하겠다”고 선언했다.

국제 외환보유액 가운데 엔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5% 정도이며, 만일 위안화 비중이 엔화를 넘어선다면 엔화는 3류 통화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 중앙은행 총재는 일본 중앙은행 총재로 취임하기 직전에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로 있었다. ADB는 중국이 주도하는 AIIB와 경쟁적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에 구로다 총재로서는 최근의 사태 전개가 매우 불편했을 것으로 보인다. 구로다 총재는 지난해 11월 자산 매입 규모 확대 조치를 통해 중국 위안화에 대한 ‘공격’을 감행한 바 있다. 엔화 약세가 심화되면, 유로존은 이를 빌미로 유로화 약세를 유도할 것이다. 이는 중국의 무역 경쟁력을 심각하게 훼손시킨다. 또한 중국 위안화는 미국 달러화에 사실상 연동돼 있기 때문에 달러화 강세는 달러화 이외의 통화에 대한 위안화 강세로 나타난다.

달러화 강세 땐 中 국영기업 부채 부담 급증

더욱 중요한 것은 달러화가 강세가 되면, 중국 국영기업들의 역외 달러화 부채 부담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점이다. 중국 국영기업들은 지난 금융위기 이후 약 1조2000억 달러에 달하는 역외 달러화 부채를 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달러화 가치가 상승하면, 중국 기업들의 부채 상환 부담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엔과 유로화의 동시적 약세는 중국의 위안화 관리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일본으로서도 엔화 약세가 내수에는 부담이 되지만, 아베 정권은 금융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내수 중소기업이나 농업 부문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엔 절하 추구는 미국에게는 부담이 되겠지만, 단지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라 전략적 요인도 함께 고려될 때는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IMF의 보유 통화 확정 시기인 오는 10월까지는 위안화의 지위를 둘러싼 국제적 암투가 더욱 치열할 것이다. 더구나 BRICS 개발 은행이 문을 여는 내년부터는 달러화와 대등한 지위를 확보하려는 중국과 탈(脫)달러화를 추구하는 러시아, 그리고 기존의 달러 통화 체제를 유지하려는 미국·일본 사이에 본격적인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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