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이야기

경기를 주무른 블라터 후광 효과

도일 남건욱 2006. 6. 25. 12:14
경기를 주무른 블라터 후광 효과

박순규 전문기자의 월드컵 관전기
G조 한국 - 스위스(하노버 관중  4만3000명)
 



♢기대만 부추긴 희망사항

장마전선이 남쪽으로 내려갔다. 후텁지근한 날씨는 계속됐지만 비가 내리지 않은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당초 비 때문에 지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던 거리 응원도 더욱 열기를 더하게 됐다. 더구나 이날은 4번째 토요일로 한국의 중고등학생에게는 ‘놀토일’. 그동안 월드컵과 시험공부 사이에서 고민하던 학생들에게는 축복의 날이었다.

여전히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는 ‘한다, 하지마라’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고, 전국에서 1700여명이 집단 식중독에 걸리는 사상 초유의 학교급식 ‘식중독 대란’이 일어났으며, 인플레이션 우려에 춤을 추는 미국 증시에 덩달아 ‘이중주’를 추는 한국 증시의 널뛰기 장세는 이어졌지만 월드컵은 한반도 정세와 상관없이 조별리그 마지막을 향해 힘차게 달려갔다.

아전인수격인지 몰라도 한국의 2006월드컵은 2002년과 너무 닮았다. 조별리그 3차전을 앞두고 치른 7경기 결과가 2002년과 2006년이 똑 같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승-무-승-무-패-승-무’로 같을 뿐만 아니라 당시 경기마다 입었던 유니폼 색깔까지 똑같아 스위스전 승리를 운명적으로 예고했다. 2002년 승리의 패턴대로라면 포르투갈과의 3차전에서 흰색 유니폼을 입고 1-0 승리를 거뒀듯이 스위스와의 3차전에서도 흰색 유니폼을 입고 승리를 거둔다면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게 된다.

가급적이면 그 때와 마찬가지로 박지성이 골을 넣는다면 태극전사들이 주연한 한편의 영화는 더욱 드라마틱하게 되지 않을까? 1954년 스위스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서독의 공격수 헬뮤트 란과 탄광 소년 마티아스의 우정을 그린 ‘베른의 기적’보다 더 극적인 영화가 나오게 되지 않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YMCA야구단’으로 데뷔한 영화감독 김현석씨는 ‘각본있는 드라마’를 만들어야 하는 창작자 입장에서는 ‘각본없는 드라마’인 스포츠를 접하며 좌절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어느 영화감독이 드라마의 극적 요소를 높이기 위해 2002년과 똑 같은 설정을 2006년에도 할 수 있겠는가. 드라마에서는 도저히 설정할 수 없는 극적 요소가 현실의 월드컵에서는 가능하며 감동까지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는 붉은 빛

축구를 외면하던 아내를 TV앞에 다시 앉게 만든 것도 월드컵이다. 경기 승패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여 집안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스포츠를 애써 외면했다는 아내가 며칠 전 할인점에서 맥주와 안주거리를 한 바구니 사들고 왔다. 동네가게에서 조금씩 사느니 아예 7월까지 먹을 것을 작정하고 샀다며 웃었다. 프랑스와의 2차전에선 유난히 피곤해 하길래 깨우질 않았더니 후반전 시작과 함께 일어나 아이들보다 더 열성적으로 한국을 응원했다. 요즘엔 동네 아주머니들 모임에서도 축구를 모르면 ‘왕따’신세라고 한다.

학원에서도 토요일 보충수업은 오후로 미뤘다. 서울시청과 광화문 인근은 오전부터 붉은 물결이 일렁거렸으며 프레스센터 앞 도로는 어느새 기발한 아이디어로 상품을 만든 젊은이들의 장터로 변했다. 2006월드컵 응원이 2002월드컵과 다른 점은 응원용품의 다양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 포켓용 월드컵 응원방석은 기본이요, 한국의 아름다운 여성들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도깨비뿔 모양의 소품, 붉은 상의를 리폼한 재기발랄한 여성들의 센스 등 월드컵 응원문화는 진화를 계속했다.

붉게 물든 서울광장과 광화문에는 30여만명이 모여들었고,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비롯한 전국에서는 100여만명이 길거리 응원을 할 것으로 예상됐다. 어디 한반도 뿐이겠는가. 한민족이 퍼져있는 전 세계 각지에서도 또다시 스위스전을 기다리며 축구로 하나되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아쉬움이 있다면 지난 2002년보다 다섯배가 늘어난 쓰레기다. 쓰레기만 좀 제대로 처리해주면 세계가 주목하는 응원문화로 자리를 잡을 텐데...

♢‘아드보 타임’의 시계침을 돌려라!

아드보카트 감독이 지난해 9월 처음 한국 땅을 밟으면서 한 말은 '자신감을 불어넣겠다'는 것이었다.2002한일월드컵 4강 이후 3년여 동안 극심한 혼란을 겪으면서 떨어진 선수들의 자신감 회복이 무엇보다 급선무라는 진단이었고, 이같은 분석은 '아드보 타임'으로 결실을 맺었다.

'아드보 타임'은 아드보카트 감독이 부임 후 치른 초반 경기에서 전반 10분 이내에 자주 골을 기록하면서 나타난 신조어로 태극전사들이 아드보카트 체제에서 자신감을 찾으며 2006독일월드컵 본선에 대한 새 희망을 갖는 계기가 됐다. 지난 해 10월 이란과의 첫 경기에서 조원희는 전반 1분만에 골을 기록했고, 그 다음달 치른 스웨덴과의 경기에선 안정환이 전반 7분만에, 나흘 뒤 열린 세르비아-몬테네그로전에선 최진철이 전반 4분만에 각각 골을 기록하면서 아드보카트 용병술의 결정체로 불리어졌다.

그러나 독일월드컵 본선에서는 '아드보 타임'이 후반으로 바뀐 모습이다.토고와의 1차전에선 전반 카데르에게 선제골을 내준 뒤 후반 9분 이천수의 동점골, 후반 27분 안정환의 역전골이 각각 나왔다. 프랑스와의 2차전에서도 전반 9분 앙리에게 선제골을 내준 뒤 후반 36분 박지성의 동점골이 터졌다.한국의 3골 모두 후반 9분에서 36분 사이에 기록됐다.

이같은 골은 후반 대 역전극과 감동의 무승부를 자아냈지만 아쉬움도 있다. 토고전 후반 좀 더 몰아붙이지 못하고 볼을 돌린 점, 프랑스전 전반 소극적 경기운영은 스위스와 똑 같은 1승1무를 기록하고도 골득실에서 1이 뒤져 스위스와 무승부만 기록해도 탈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더욱 불안감을 자극했다.

그러나 이같은 불안감은 한국의 강점인 투혼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도 갖게 했다. 한국이 만약 무승부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위치여서 어설프게 경기를 운영하다간 오히려 더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축구에선 무승부만 거둬도 된다는 자세보다는 반드시 이겨야한다는 절실함이 클 때 더 좋은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축구는 그렇다. 지난 96애틀랜타 올림픽에선 1승1무 후 이탈리아와의 3차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8강에 오를 수 있었으나 2-1로 지는 바람에 귀국행 보따리를 쌌던 아픈 기억도 있다.

한국에 다른 길은 없다. 16강진출뿐 아니라 8강진출을 위해서도 조 1위는 반드시 필요하다. G조 경기에서 앞서 벌어진 H조 경기에선 스페인이 주전들을 빼고도 사우디 아라비아를 1-0으로 제압, 3연승으로 1위를 확정했다. 우크라이나는 튀니지를 1-0으로 이겨 조 2위를 기록했다. 한국으로선 조 1위로 16강에 올라야 ‘무적함대’스페인을 피하고 우크라이나와 8강진출을 다투게 된다.

스위스와 비기면 프랑스-토고전 결과에 따라 진출여부가 가려지게 되지만 현실적으로 행운을 기대하긴 어렵고, 우리 힘으로 스위스를 누르는 길이 최선이라는 것을 선수들도 잘 알고 있다.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상대를 몰아붙여 전반 10분 이내에 골이 터지는 ‘아드보 타임’을 되돌려야 하는 이유다.

♢ 박주영 선발 출장, 결론은 4-3-3시스템 

경기 전 가장 관심을 모았던 부분은 역시 한국의 스타팅멤버. 선발 멤버를 어떻게 구성했는가를 보면 경기 한 시간 전에 스위스전에 임하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전략과 생각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격축구를 초반부터 펼치기 위해선 안정환 조재진의 투톱도 가능하다는 예상도 나온 터라 더욱 선발 멤버가 궁금했다. 또 박주영이 과연 선발로 나올 수 있는 가도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다.

드디어 선발 멤버. 박주영이 드디어 스타팅 멤버에 모습을 드러냈다. 선발 포메이션은 4-3-3시스템. 아드보카트 감독은 운명을 결정지을 스위스전을 앞두고 고심을 거듭하다가 결국 그동안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준비해온 4-3-3포메이션을 꺼내들었다. 골키퍼에는 이운재, 포백진 왼쪽부터 김동진 김진규 최진철 이영표, 수비형 미드필더에 이호 김남일, 미드필드진에는 김남일 이호 이천수,좌우 윙포워드에 박주영 박지성, 원톱에 조재진을 내세웠다. 이천수를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박지성을 오른쪽 포워드로 내세워 서로의 포지션을 바꾼 것이 눈에 띄었다.

박주영이 처음 선발 멤버에 들었다. 발 빠른 이천수와 함께 스위스 수비진의 뒷 공간과, 민첩성이 떨어지는 중앙 수비수 사이의 중앙 침투 공격을 펼치기 위한 포석으로 보였다. 모험을 좋아하는 히딩크 보다 다소 안정적 경기 운영이 특색인 아드보카트 감독으로서도 스위스전 승리를 위한 초반 승부수로 보였다. 몸 상태가 좋지않은 김영철이 빠졌고 본선에서 컨디션이 살아나지 않은 이을용이 제외됐다. 특이한 것은 지난 해 네덜란드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젊은 선수 박주영과 김진규가 공수에서 ‘복수 혈전’에 나섰다는 점이다.

박성화 감독이 이끈 한국 청소년대표팀은 당시 조 예선에서 스위스를 만나 신영록의 선제골로 앞서 나갔지만 이후 고란 안티크와 요한 폰란텐에게 연속골을 내줘 2-1로 역전패했다. 당시 한국 선수로 월드컵에 나선 선수는 박주영 김진규 백지훈 등 3명, 스위스는 필리페 센데로스, 트란퀼로 바르네타, 발론 베라미, 블레림 제마일리, 요한 주루 등 5명이 당시 청소년팀 멤버들이다.

스위스는 오버래핑이 뛰어난 왼발의 스페셜리스트 마냉을 벤치에 앉히고 수비력이 좋은 슈피허를 왼쪽 풀백으로 내세웠다. 4-4-2시스템의 투톱에도 장신 공격수 슈트렐러 대신 섀도 스트라이커형의 하칸 야킨을 내세웠다.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오르는 야콥 쾨비 쿤 감독의 안정적 경기 운영 전략이 엿보였다. 골키퍼 추베르뷜러, 포백수비진에 슈피허 센데로스 뮬러 데겐, 미드필드진에 비키 포겔 바르네타 카바나스, 투톱에 프라이 야킨이 선발로 나섰다. 



♢드디어 킥오프, 아! 그러나 23분만에 내준 선제골

한국선수들의 몸놀림은 유난히 가벼워 보였다. 지금까지 치른 3차례 경기 가운데 가장 컨디션이 좋아 보일 정도로 몸놀림이 활발했으며 전반 2분 김동진의 왼쪽 공간패스를 이천수가 스위스 수비벽에서 뛰쳐나가며 왼쪽 돌파 후 크로스, 스위스 문전을 위협하는 등 출발은 좋았다. 이천수의 크로스는 조재진의 머리와 박지성의 발을 스쳐 지나가며 슛으로 연결되지 않았으나 그동안 계속 강조된 스위스 수비진의 뒷 공간을 노리는 전략이 먹혀들어가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전반 14분 김남일의 역습 찬스에서 툭 친 볼이 주심의 몸에 맞고 방향이 바뀌면서 왠지 좋지않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주심의 몸에만 맞지 않았으며 좋은 역습 기회였는데 무산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심판의 판정이 공정하기만을 고대하며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고의성은 없었다하더라도 경기에 방해된 심판의 움직임은 썩 좋지 않은 내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선제골을 넣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선제골을 내주고 말았다. 전반 23분. 수비에 가담한 박주영이 돌파하던 스위스 선수의 몸을 붙잡아 경고를 받으며 프리킥을 내줬다. 한국의 미드필드 왼쪽 중앙 지점. 직접슈팅은 무리인 약 40여m의 거리에서 하칸 야킨이 왼발로 킥한 볼을 키 190cm의 장신 수비수 센데로스가 달려들면서 정확히 이마에 맞히는 헤딩슛으로 오른쪽 골문을 갈랐다. 187cm의 최진철이 경합을 벌이기 위해 몸을 띄웠으나 한 템포 늦었다. 늦게 뜨는 바람에 헤딩슛을 하고 난 센데로스와 이마가 부딪혀 오른쪽 눈두덩이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센데로스 역시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으나 선제골을 기록, ‘영광의 상처’가 됐다.

♢불발된 아드보 승부수(히든 포인트1)

안정 지향형의 아드보카트가 선발로 박주영 김진규 이호 등 21,22세의 어린 선수들을 한꺼번에 기용한 것은 사실 예상치 못한 카드였다. 그동안 아드보카트 감독이 보여준 용병술의 중심에는 항상 경험과 신중함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고전 막판의 경기운영이나 프랑스전 전반의 경기운영, 또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시절 치른 유로2004에서 체코에 2-0으로 앞서다 공격에 절대적 역할을 하던 아르연 로번을 빼고 수비수를 넣어 3-2로 뒤집힌 경기 운영 등을 고려할 때 개인적으로는 설기현 김영철 송종국의 출장을 예상했다.

경기 하루 전 인터뷰에서도 출전하지 못한 선수들에게 경험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도 경험 많은 선수의 출장을 예상케 한 대목이었으나 결국 결정은 감독이 했다.

어느 전략이든 좋은 결과를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결정은 감독이 한다. 전략과 전술이 잘 들어맞아 성공을 거두면 ‘명장’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감독이 모든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비정한 승부 세계의 룰이다.
아드보카트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다른 카드를 꺼내들었으나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스위스의 조직력을 깨기 위해 젊은 패기를 ‘창’으로 내세웠으나 그 창은 날카로움보다는 경험부족을 더 많이 드러내며 경기를 어렵게 만들었다.

젊은 선수들은 누구보다 투지에 불탔으나 경기는 투지만 갖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박주영은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한 지점에서 파울로 공격을 끊었으나 결국 선제골 실점의 빌미가 됐고, 이호 김진규의 플레이도 조재진 이천수 김남일의 집중력에 미치지 못했다. 



♢경기를 주무른 블라터 후광 효과(히든 포인트2)

스위스선수는 11명이 아니라 14명이 뛰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심판의 혜택을 많이 받은 것으로 눈총을 받던 스위스는 결국 한국과의 3차전에서 심판 3명의 묵시적 지원을 톡톡히 누리며 한국의 축구팬, 아니 축구를 사랑하는 지구촌 팬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한국이 가장 우려했던 상황이 결국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스위스는 FIFA 본부가 위치한 나라인 데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온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의 나라. 한국은 설마했으나 블라터 회장의 보이지 않는 입김은 심판배정에서부터 나타났다. 이날 주심은 아르헨티나의 오라시오 엘리손도. 독일월드컵 개막전 심판으로 공정한 판정을 기대했으나 철저하게 스위스 위주의 편파판정으로 경기를 주무르며 승부의 기울기를 바꿨다.

두 차례의 페널티킥 판정을 외면했으며 경합 상황에서의 볼은 한국의 파울을 선언하고,어드밴티지룰은 철저하게 스위스 선수들을 위해 적용됐다. 압권은 프라이가 후반 32분 추가골을 기록한 상황. 제2부심 오테로는 오프사이드 깃발을 들었으나 주심이 이를 인정하지 않자 슬그머니 내려 골을 인정하는 웃지못할 코미디를 전 세계팬들 앞에서 펼쳤다. 오프사이드 깃발을 보고 수비를 소홀히 한 한국선수들에게도 문제가 있었으나 부심이 깃발을 든 명백한 오프사이드를 인정하지 않은 주심의 판정은 이미 판관의 양심을 '출세'란 악마에게 판 것이었다.

독일월드컵 심판세미나에 두차례 참여했다가 막판에 주심 선정에서 제외된 권종철 심판원은 엘리손도 주심에 대해 "우리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심판"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엘리손도 심판은 개막전 심판으로 배정될 만큼 블라터 회장의 총애를 받고 있으며 결코 블라터 회장의 미움을 사는 판정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을 나타냈다.

블라터 회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스위스와 터키의 플레이오프 원정 2차전에서도 나타났다. 당시 주심을 본 프랑크 심판은 심판의 가장 기초적 체력테스트인 쿠퍼테스트에서도 탈락한 심판인데 결국 블라터 회장의 총애를 받아 주심으로 나서 스위스의 본선진출에 보이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심판계에서 의혹을 샀다. 한국의 패배는 그라운드 안에서가 아니라 그라운드 밖에서 조정된 것으로 보인다. 

 


♢눈물겨운 조재진의 분투

이번 대회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친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조재진이다. 워낙 기대치 자체가 다른 선수에 비해 높지 않았던 탓도 있었지만 스리톱의 최전방에서 홀로 상대 수비수들과 싸우면서도 기개를 잃지 않는 모습은 한국 축구의 상징인 투혼, 그 자체였다.

프랑스와의 2차전에선 설기현의 헤딩골을 떨궈 줘 박지성의 동점골에 기여하더니 스위스전에서도 전방에서의 활발한 움직임으로 공중볼을 따내며 한국의 공격 기회를 열었다. 아쉬운 것은 이 같은 조재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접근하며 쇄도하는 한국의 공격수들이 없어 득점으로 연결하지 못한 점이다. 조재진은 스위스전 직전에도 이같은 외로움을 이야기하며 선수들이 좀 더 받쳐줄 것을 주문했으며, 경기중에도 자주 제스처로 접근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의외로 토고는 프랑스와의 3차전 전반까지 0-0으로 버텼다. “우리 팀 보다는 토고를 응원하는게 더 낫겠다”라는 큰 아들녀석의 말대로 토고가 잘만 해주면 무승부만 기록해도 16강 진출의 희망을 가져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것 또한 후반 토고가 2골을 내주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비운의 팀’ 한국, 그래도 행복했다

한국 시인들을 모독한 아르헨티나 심판의 어처구니없는 판정으로 가장 기대를 모았던 한국-스위스전은 결국 한국의 2-0 패배로 막을 내렸다. 아르헨티나 시인으로도 활동한다는 엘리손도 심판의 머릿속에는 시인의 감성 대신 국제축구계의 역학관계를 저울질하는 정치성만 가득했다.

이같은 악조건속에서 역대 원정월드컵 사상 가장 좋은 1승1무1패의 성적을 거둔 한국은 조별리그 8개조 가운데 유일하게 승점 4점을 얻고도 16강 진출에 실패하는 비운의 팀이 되고 말았다.

당초 아르헨티나 네덜란드 코트디부아르 세르비아-몬테네그로가 몰린 C조와 이탈리아 가나 체코 미국이 몰린 E조가 죽음의 조로 꼽히며 물고물리는 접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의외로 싱겁게 조1,2위가 가려진 반면 한국이 속한 G조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 스위스 프랑스가 16강 티켓을 펼쳐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아시아 4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승리를 거두며 아시아의 자존심을 지킨 한국은 기대했던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원정월드컵에서의 첫 승과 세계적 강호 프랑스와의 무승부 등 2002월드컵에 이어 값진 성과를 거뒀다. 더욱이 6월 한달 동안 한민족을 감동의 드라마속으로 빠져들게 했던 태극전사들의 투혼은 앞으로도 길이 기억될 것이다.

♢결론은 프로축구 활성화, 유소년 축구 육성, 지도자 양성

한국축구는 콩나물과도 같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물은 금방 빠져나가버리지만 어느 순간에 시루를 들여다 보면 콩나물은 자라나 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듯이 한국축구도 2002월드컵과 2006월드컵을 거치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4년마다 월드컵이 열리고 나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되풀이 되는 이야기지만 프로축구를 활성화해야 한다. 하루아침에 선수들의 기량이 나아질 수는 없다. 프로에서 부지런히 쌓은 기량이 결국 월드컵 무대에서 꽃 피우는 것이다. 월드컵 무대에서 제 몫을 해준 선수는 역시 큰 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선수들이었다.

유럽무대에 20여명 정도가 선수가 뛸 때 우리는 실력으로 16강에 도전할 수 있으며 한국 프로축구인 K-리그가 뿌리를 내려 좋은 선수들이 발굴되는 시장으로 기능을 할 때 세계축구의 중심권에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회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한국의 개인기는 세계에 내놓을 만한 수준이 못된다. 이것은 어린시절부터 몸에 배인 잘못된 습관 때문이다. 프로축구 체제가 정착돼 클럽시스템으로 축구체계를 일원화시켜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도자 양성도 시급하다. 지도자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국축구도 바뀐다.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아시아 4개팀 가운데 자국 감독은 한 나라도 없다. 아시아축구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이 아시아권을 벗어나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기 위해선 히딩크나 아드보카트처럼 국제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수준의 지도자가 필요하다. 10년이나 20년 뒤를 내다보며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 우리도 우리의 지도자를 내세워 월드컵 2라운드 진출을 노리게 될 것이다.   


2006-06-24 오전 8:30:34 승인
2006-06-24 오전 8:00:31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