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의 상법 개정안이 윤곽을 드러냈다. 1960년 상법 중 회사편이 재정된 이래 가장 큰 폭의 개정으로
꼽힌다. 기업 활동을 규율하는 법적 환경에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정안에 대한 재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이 예사롭지 않다.
전경련은 소유와 경영을 강제로 분리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며 이번 개정안을 ‘기업판 사학법’으로 규정한다. 반면, 참여연대는 IMF 이후 진행된
기업 지배구조 개혁의 성과를 거꾸로 후퇴시키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 |||||||||
회사법 46년만의 ‘대수술’... 집행임원제 도입 등 핵심쟁점 논란 가열 이번 상법 개정안 가운데 재계에서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집행임원제도의 도입이다. 전경련은 이 제도가 재벌 오너의 경영권을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한다. 업무집행은 집행임원이 전담하도록 하고, 이사회의 역할은 감독과 집행임원의 임명에만 한정함으로써 사실상 오너가 경영에서 손을 떼도록 강제한다는 것이다. 기업 내부의 권력 구조에 엄청난 변화가 벌어지는 셈이다. 바로 소유와 경영의 분리 모델이다. 재벌 오너, 경영에서 손떼라? 집행임원제도는 실제로 기업을 이끌고 있지만 신분이 불안정한 미등기 임원의 양성화와 이사회 기능의 정상화를 위해 도입됐다. 현재 국내 대기업들의 경우 등기이사의 수가 의외로 많지 않다. 삼성전자도 사내 등기이사 수는 이건희 회장을 포함해 6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매출 60조원의 거대기업을 이끌어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삼성전자의 경우 실제로는 600명에 달하는 미등기 임원들이 기업을 움직인다. 황창규 사장이나 이기태 사장 등이 여기에 속한다. 기업들이 등기이사를 늘리지 않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내 등기이사를 늘리면 사외이사도 함께 늘려야 하는 부담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증권거래법 상 자산 2조원이상 상장사는 사외이사를 3인 이상, 이사 총수의 과반수까지 두어야 한다. 문제는 미등기 임원들이 법적 영역의 밖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들이 과연 고용관계에 있는 직원인지, 아니면 위임관계인 이사에 해당하는지 논란도 끝이지 않는다. 또한 이들에게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을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집행임원제도는 미등기 임원들에게 등기이사와 거의 유사한 법적 지위를 부여해 권한과 책임, 의무를 규정한다. 큰 틀에서 보면 집행임원이 업무집행을 전담하고, 이사회는 이들을 감독하는 구조다. 이는 IMF 이후 도입된 사외이사 중심 이사회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효과도 발휘한다. 현재는 이사회에 업무 집행과 감독 기능이 모두 집중돼 있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사회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사외이사들의 경우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아무래도 낮기 때문이다. 전경련이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집행임원제도가 도입될 경우 소유와 경영에서 전권을 행사해온 재벌 오너의 영향력이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이사회와 집행임원 간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재계에서 이번 상법 개정안을 ‘기업판 사학법’으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정 규모 이상 기업에 집행임원제도 도입이 의무화될 경우, 현행 대기업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실제 개정안에는 집행임원제도가 애초 제안보다 훨씬 완화된 형태로 반영됐다. 우선 이사회 의장과 대표집행임원의 겸직이 허용됐다. 재벌 오너들이 현행대로 이사회 의장과 대표집행임원을 함께 맡을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이다. 또한 집행임원제도 도입 여부를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했다. 필요 없다고 느끼면 굳이 도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경련은 경계의 눈초리를 쉽게 거두지 않고 있다. 우선은 집행임원제 도입이 선택사항으로 들어가지만, 조만간 강행 규정으로 바뀔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애초 증권거래법과 공정거래법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은 집행임원제를 의무적으로 도입하게 하는 조항이 들어갔다 일부 상법개정위원들의 강한 반발로 막판에 빠졌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해준다고 보고 있다. 전경련은 집행임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모두 삭제하고, 도입 여부뿐만 아니라 도입 형태까지 기업이 선택할 수 있게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집행임원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면 엄청난 제한들이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현재의 형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전경련은 집행임원제도에 불순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보고, 초기에 아예 쐐기를 박겠다는 태세다. 이중대표소송제 도입도 이에 못지않은 첨예한 논란거리다. 이중대표소송은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주주대표 소송의 범위를 개별기업 차원을 뛰어넘어 자회사에까지 확장하는 형태다. 이를테면, 비상장 계열사인 SK해운이 경영진의 불법행위로 큰 피해를 입고, 이로 인해 모회사인 SK의 기업가치가 크게 훼손된 사건에서, SK의 소액주주들이 SK해운의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현실적으로 SK 지배주주의 영향력 하에 있는 SK해운이나 SK해운의 주주들은 손해를 끼친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러한 이중대표소송제는 수많은 계열사들이 복잡하게 얽혀 기업집단을 이루고 있는 국내 재벌체제에서 특히 효과적인 견제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중대표소송의 활성화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법무법인 한누리 김주영 변호사는 “이미 도입된 주주대표소송도 거의 활용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중대표소송이 얼마나 활성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소송의 남발 가능성을 우려하는 전경련과는 정반대의 분석인 셈이다. 이중대표소송과 주주대표소송은 기본적으로 승소를 해도 승소금이 소송을 제기한 주주 개인이 아니라 회사에 주어진다. 그만큼 적극적으로 소송에 나설 인센티브가 적은 것이다. 거기에다 투자회사의 자회사의 문제라면 관심은 더욱 낮을 수밖에 없다. 이중대표소송이 거의 공익적 성격을 띠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에서처럼 회사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증거개시(디스커버리) 제도가 없다는 것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참여연대, 회사 기회의 편취금지 추진 이번 개정안에서는 이사의 자기거래 범위도 대폭 확대했다. 이사 본인뿐 아니라 이사의 직계존비속과 배우자, 또는 이들이 지분을 50%이상 소유한 기업과의 모든 거래는 이사회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에 대해 전경련은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기업이 이 범주에 해당해 이를 일일이 승인 받으려면 매주 이사회를 열어야 하는 형편이라고 분통을 터뜨린다. 반면, 참여연대는 대상 범위를 더 넓혀 직간접적으로 이사들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배주주 등 업무집행지시자도 포함시킬 것을 요구한다. 김건식 서울대 교수는 “빌 게이츠도 아들이나 동생에게 회사를 하나 만들게 하고 MS와 거래하게 하면 큰 돈을 벌 텐데, 실제 그런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일이 끊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참여연대는 회사기회의 편취 금지조항이 반드시 신설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글로비스의 경우처럼, 자회사 설립을 통해 회사 자체에 귀속되어야 하는 이익이나 사업 기회를 빼돌리는 관행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법적 장치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회사 기회의 편취는 오너 일가의 편법적인 상속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상법 개정 최종안은 8월 입법예고를 거쳐 9월 정기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그러나 전경련은 공청회 추가 개최 등 충분한 논의를 요구하며 연내 처리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설사 국회로 넘어가더라도 여야간 논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전경련과 참여연대의 의견이 엇갈리는 핵심쟁점의 최종 향방이 아직은 유동적인 것이다. 장승규 기자 skjang@economy21.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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