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기본 구조는 원자다. 이 원자가 모여 분자를 이룬다. 이 중에서도 단백질 분자는 생명 현상에 관여한다. 그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정작 구조와 기능은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다. 관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단백질 분자는 가시광선 파장의 1000분의 1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크기가 작다. 게다가 수십 나노초~피코초(10억분의 1초~1조분의 1초)에 이르는 짧은 순간에 끊임없이 모습을 바꾼다. 때문에 X선 회절법이나 핵자기공명법 (NMR) 등이 최근까지 동원됐지만 변하는 구조를 확실히 분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제안된 것이 ‘다차원분광학’이다.
20061215.jpg) |
다차원분광학 연구단. 뒷줄 가운데가 단장인 조민행 교수다.
| 과학기술부 창의적연구진흥사업의 일환인 다차원분광학연구단을 이끄는 고려대 화학과 조민행 교수는 “다차원분광학은 분자 세계의 고속 촬영”이라고 말한다.
조 교수에 따르면 모든 분자는 자신만의 고유한 진동수를 갖는다. 따라서 특정 분자와 공명을 일으키는 주파수의 적외선을 분자에 쪼이면 분자에 관한 정보를 담은 스펙트럼을 얻을 수 있다. 1차원 분광학이다.
 |
키랄구조의 진동원편광이색성스펙트럼 측정 기기 (VCD spectrometer) | 그런데 서로 다른 주파수를 가진 적외선 여러 개를 분자에 동시에 쪼이면 1차원에서 얻을 수 없었던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나노초 단위로 변하는 분자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다. 단백질 분자 관찰의 최대 난관이 해소되는 셈이다.
다차원분광학은 ‘젊은’ 연구 분야다. 이론이 제안된 게 1994년, 실험 연구가 시작된 것이 1998년이다. 조 교수는 “연조가 길지 않은 분야인 탓에 창의적인 연구를 시도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경쟁력 확보에 나설 수 있는 여건도 그만큼 좋다는 얘기다.”고 말한다.
 |
이론적 계산을 통해 구현한 베타-머리핀 구조의 이차원분광스펙트럼 | 실제로 연구단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여럿 내놓고 있다. 지난해 3월 광합성 초기에 일어나는 빛 에너지의 이동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밝혀내 이를 네이처에 발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최근에는 네이처 의뢰로 스위스 연구팀이 발표한 2차원 적외선 분광학 논문을 분석, 네이처 11월호 ‘뉴스와 전망’(News and Views) 코너에 발표했다.
현재 연구단은 이론과 실험을 병행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론적 계산은 연구단, 실험적 검증은 미국 연구소가 맡던 구조를 넘어 이론적 계산과 실험적 검증을 연구단이 한꺼번에 해결하겠다는 계획이다. 연구단은 이렇게 되면 강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새로운 성과를 자신하고 있다.
조 교수는 앞으로의 연구 계획에 대해 “연구주제는 장기적 계획의 연장선에 있다. 광합성 단백질 연구를 계속하는 동시에 DNA와 단백질의 상호 작용도 미시적인 관점에서 탐구할 것이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실험을 시작하면서 좀더 넓고 깊어질 분자 세계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