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기사모음

AI와 인류의 전쟁 ‘구원의 약’ 어디에…

도일 남건욱 2006. 12. 18. 20:50
AI와 인류의 전쟁 ‘구원의 약’ 어디에…
2006년 12월 15일 | 글 | 임소형 기자ㆍsohyung@donga.com |
 
인간과 조류인플루엔자(AI) 사이에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한창이다. AI는 사람을 감염시키기 위해 진화를 거듭하고 있고, 과학자들은 이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인플루엔자(influenza)’란 이름은 1300년대 중반 ‘영향을 받는다’는 뜻의 라틴어 ‘인플루엔티아(influentia)’에서 유래됐다. 당시엔 이 병이 별의 움직임에 따라 발생한다고 믿었다. 1800년대에는 세균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1931년 인플루엔자에 걸린 돼지를 조사하다 바이러스가 원인이란 게 밝혀졌다. 2년 뒤 사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분리됐다.

조류-인간, 수용체 분포 달라 ‘사람간 감염’ 아직 적어
바이러스 증식시키는 ‘단백질 연결고리’ 끊는 게 숙제

진화하는 바이러스

바이러스는 변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빠른 속도로 돌연변이를 만들어 낸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전정보는 RNA가 전달하는데, RNA는 DNA보다 불안정해 다양한 유형의 돌연변이가 쉽게 만들어진다.

어떤 바이러스는 영리하게도 돼지를 이용했다. 돼지는 특이하게도 조류와 사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모두 감염된다. 두 바이러스의 RNA가 돼지의 몸에서 섞여 새로운 조합의 RNA를 가진 바이러스가 생긴 것이다.

이런 변종 바이러스 중 일부는 20세기 들어 11∼39년에 한 번씩 대유행기(팬데믹)를 거치면서 인체를 공격할 수 있을 정도로 ‘업그레이드’됐다. 올해 한국의 전북 익산과 김제시를 비롯해 이집트 인도네시아 이스라엘 프랑스 러시아 등에서 발생한 H5N1형도 변종의 하나. 이는 돼지를 거치지 않고 닭에서 바로 사람을 감염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6∼1997년, 2003∼2004년, 2005∼2006년에 추출된 H5N1은 유전자에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이 바이러스가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혹시 인간을 감염시키기 위해 진화를 거듭하는 것은 아닐까.

대유행기가 늦어지는 이유

H5N1이 인체를 감염시킨다는 사실이 확인된 지 약 10년이 됐다. 하지만 다행히도 사람 간 무작위로 전염되는 팬데믹 사태는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다. 최근 그 이유가 조류와 사람의 호흡기 세포에 있는 수용체의 분포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H5N1에 감염되려면 이 바이러스가 수용체를 통해 호흡기 세포로 들어가 RNA를 복제한 다음 자신과 같은 바이러스를 많이 만들어 내야 한다. 사람의 경우 H5N1이 인식할 수 있는 수용체는 기도 맨 아래의 허파꽈리 세포에 있다.

숨을 쉴 때 H5N1이 코로 들어왔다고 해도 이곳까지 침투하기가 쉽지 않거나 침투해도 극히 소량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일단 감염되면 치명적인 폐렴 증세가 나타나는 것도 바이러스가 폐 근처까지 깊숙이 침투했기 때문이다.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H5N1 RNA의 특정 부위 두 곳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사람 세포의 다른 수용체도 인식하게 된다는 실험 결과가 최근 나왔다”며 “바이러스가 진화하다 이런 돌연변이가 나타나면 대유행기가 올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AI에 대항할 무기 개발 가속도

상황이 다급해졌다. 팬데믹이 오기 전에 바이러스에 대항할 무기를 갖춰야 하니 말이다.

AI 바이러스는 공처럼 생긴 껍질 안에 8가닥의 RNA가 들어 있는 모양이다. RNA는 생존에 필요한 12가지 단백질을 만들어 낸다. 그중 하나인 뉴라미다아제는 증식한 바이러스를 세포 밖으로 방출하는데 AI 치료제 ‘타미플루’는 바로 이 작용을 억제한다. 그러나 48시간 안에 먹어야 한다. 그 후면 이미 바이러스가 방출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미국 라이스대 타오 이지 교수팀은 뉴클레오캡시드 단백질의 구조를 밝혔다. 이 단백질은 두 덩어리로 이뤄져 있는데 바이러스가 증식하려면 두 덩어리가 고리로 연결돼야 한다. 고리 형성을 방해하면 증식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텍사스주립대 로버트 크루그 교수팀은 보통 때는 없다가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 안에 들어가면 만들어지는 비구조(NS) 단백질에 주목하고 있다. 연구팀의 민지영 박사는 “NS 단백질의 특정 부위를 변형시킨 결과 바이러스가 정상보다 약 1000배 늦게 증식했다”며 “이 부위를 억제하는 약물을 개발하면 치료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