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박사님이 읽은 책

공병호씨가 정리한 집단주의와 결정론

도일 남건욱 2008. 3. 3. 20:06
반듯한 생각을 갖는데는 올바른 역사관을 갖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던 좌파적 역사관 혹은 진보적 역사관의 원인을 어디에서부터 찾을 수
있을까라는 궁금함이 있었습니다. 폴 존슨의 책을 읽다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지적 풍토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런 지적 풍토로부터 우리의 지식인들이나 학생운동가들이 영향을 많이 받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용이 조금 어렵긴 합니다만,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1. 1960년대 말, 나아가 1970년대 초중반에 지배적인 정신은 강력한 집단주의와
결정론의 성격을 띠었다. 집단주의와 결정론의 시대정신은 파리의 지적풍토에서 비롯
되었다.
프랑스가 다시 찾은 경제적인 활력은 파리의 지적 성과물이 세계무대에
등장하는데 일조했다. 1940년대와 1950년대 사르트르는 적어도 자유의지를 믿었다.
자유 의지는 그의 철학의 본질이었다. 이 때문에 사르트르의 철학은 근본적으로
마르크수주의와 병존할 수 없었다. 그가 순수하게 정치적인 수준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동맹을 맺었다도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르트르는 1980년까지 살았다.

2. 하지만 1968년 학생 운동 당시 그는 이미 지적 퇴물이 되어 있었다.
그의 자리를 대신한 인물은 모두 어느 정도는 마르크스주의 결정론에 영향을 받았다.
알다시피 마르크스주의 결정론은 세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 개인의 의지나 자유 의지
혹은 도덕적 양심의 중요성을 부정한다. 하지만 그들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계급을 통해 작동하는 경제적 힘을 인간 역사의 유일한 동력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이를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다른 설명을 들고 나왔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숨겨진 사회의 구조가 사건을
결정한다는 마르크스 출발점을 인정했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마르크수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던 가정이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기술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경제 관계의 최종 양태는 ... 내적이지만 감추어진 본질적
양태 혹은 이에 해당하는 개념과 매우 다르거나 실로 정반대다."

3. 인간은 구조 안에 갇혀 있다. 20세기의 인간은 부르주아의 구조 안에 갇혀 있다.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1958년에 출간된 <구조 인류학>에서 사회구조가 눈에
보이지 않고 경험적 관찰로도 탐지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에게 그랬듯이, 레비 스트로스에게도 역사는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발견 가능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식별 가능한 패턴일 뿐이었다.

이로부터 파생된 주장을 프랑스의 아날학파의 역사가들에게서 들을 수 있다.
그중에는 페르낭 브로델이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책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1949)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출간된 책 중에 가장 영향력 있는 역사서다. 아날 학파는 이야기(사건 서술)를
피상적인 것으로, 개인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무시했고, 역사에 있어 지리적
경제적 결정론의 원리를 설교했다. 오로지 이런 구조가 역사의 장기적인 과정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4. 심리학에서는 자크 라캉이 프로이트를 재해석했다.
라캉은 인간 선택의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는 신호, 증상, 암호, 약속 등을
분석의 도구로 하여 인간 행동에 관한 새로운 결정론을 제시했다.
문학에서는 롤랑 바르트가 소설가는 상상력을 통한 의지의 행위로 창조한다기보다는
사회구조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어학에서는 미국의 학자 에이브럼 노암
촘스키가 말과 언어의 물리적 성격을 피상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그것이 이른바
언어 규칙의 심층 구조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5. 의견: 좌파적 세계관의 뿌리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무시하고 모든 것은 구조에 따라
결정될 수 밖에 없다는 일종의 숙명론이군요. 지식인들의 거창한 이론을 배우지 않더라도
저의 상식에 미루어 보면 전혀 올바르지 않은데... 이런 견해가 지식인들과
학생운동가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면
진실과 거리가 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데 말입니다.
-출처: 폴 존슨, <모던 타임스 II>중에서 '집단주의와 결정론', pp. 614-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