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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비과세 조치가 화근

도일 남건욱 2008. 3. 30. 04:26
참여정부 비과세 조치가 화근
외환시장 어지럽힌 해외펀드
환율 방어 위해 도입했으나 거꾸로 시장만 어지럽혀

▶해외펀드의 선물환 거래가 환율 폭등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다.


#장면1 = 2007년 1월 15일 시중은행 한 외환딜링룸. TV를 통해 권오규 재정경제부 장관의 해외펀드 비과세 발표를 지켜보던 외환딜러 K차장은 눈앞이 아득했다.

해외펀드 비과세로 환율을 방어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이 외환시장을 또 한 번 폭풍 속으로 밀어 넣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야 괜한 걱정일거야….” K차장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TV 전원을 껐다.

#장면2 = 2008년 3월 17일 같은 장소. 단말기 앞에 앉은 K차장은 숨이 막히는 듯했다. 외환시장 개장 3분 만에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을 훌쩍 넘자 딜링룸은 한순간 진공상태가 돼 버렸다.

K차장이 힘겹게 숨을 들이쉬는 순간 환율은 또다시 1010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다니….” 단말기의 환율 차트를 바라보던 K차장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지난 2주간 환율 폭등 사태의 주범은 외국인도 수출업체도 아닌 참여정부의 환율정책 실패 탓이다.”

2월 말부터 시작된 환율 폭등 사태와 관련, 최근 금융권에서는 참여정부의 책임론이 강하게 일고 있다. 지난해 참여정부가 환율 방어를 목적으로 해외펀드에 비과세 혜택을 준 것이 화를 불렀다는 것이다.

신한은행 한 외환딜러는 “미국발 경기침체 우려로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대거 팔면서 환율 상승(달러 값이 오르고 원화 가치가 떨어지는 것) 분위기가 만들어졌지만 이것이 최근 환율 폭등의 주된 원인은 아니다”며 “환율 상승 기조에서 기폭제 역할을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비과세 해외펀드였다”고 지적했다.

사실 외국인들의 국내 주식 투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외국인들은 지난해 6월부터 본격적인 주식 순매도에 나섰고, 지난해 하반기에만 무려 36조원이 넘는 주식을 내다 팔았다. 따라서 외국인 주식 투매가 환율 폭등의 원인이었다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환율이 크게 올랐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이 기간 환율은 오히려 900원대까지 하락했고, 정부의 시장개입으로 930원대를 간신히 유지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외환딜러도 “외국인 주식 투매는 지난해 중순부터 이어진 것이었던 만큼 최근 환율 폭등의 원인으로 보기 힘들다”며 “오히려 달러 수요를 폭증시켰던 해외펀드가 문제였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재경부(현 기획재정부)는 환율이 급락하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해외펀드 비과세안을 통과시켰다. 해외펀드를 통해 국내에 넘치는 달러를 해외로 내보내면 환율이 오를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당시 재경부의 판단은 최적의 환율 방어책이었다.

해외펀드가 해외자산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펀드의 원화 자금을 달러로 바꿔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과세 조치로 해외펀드에 시중자금이 몰리면 그만큼 외환시장에 달러 수요가 발생해 환율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당시 권오규 재경부 장관도 “해외투자 활성화로 연간 100억∼150억 달러 정도의 국내 자본(달러) 유출이 기대된다”며 “해외펀드 비과세 조치가 환율 방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재경부의 판단에 금융전문가들은 고개를 저었다. 특히 외환전문가들은 해외펀드 비과세 조치가 환율 방어에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외환시장 교란, 단기외채 급증 등 후유증을 야기할 수 있다며 크게 우려했다.

당시 금융전문가들이 가장 큰 문제로 지목했던 것은 해외펀드의 선물환(미래의 환율을 미리 사고파는 행위) 거래였다.

A선물회사 한 관계자는 “해외펀드는 환율 변동위험에 노출되는 만큼 수익률 관리가 생명인 자산운용사는 선물환 거래로 환헤지를 할 수밖에 없다”며 “해외펀드가 환헤지를 하게 되면 선물환 거래 구조상 실제 외환시장 달러 수급에는 큰 변동이 없어 환율 방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자산운용사가 100억 달러 규모의 해외펀드를 설정, 해외투자에 나섰다고 치자. 자산운용사는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투자 당시 환율을 기준으로 은행에 100억 달러어치 선물환을 팔아야 한다. 자산운용사로부터 선물환을 사들인 은행은 거꾸로 환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

이때 은행은 위험 회피를 위해 선물환 계약 물량만큼 해외에서 단기로 달러를 빌려와 현물시장에 내다 팔게 된다. 즉 해외펀드를 통해 100억 달러가 해외로 유출됐다고 해도 선물환 거래로 다시 100억 달러가 유입되는 것이다. 사실상 해외펀드가 활성화돼도 외환시장의 달러 수급에는 큰 변동이 없는 셈이다.


해외펀드발 환율 불안 여전

해외펀드 선물환 거래의 더 큰 문제는 펀드 수익률이 하락했을 때다. 100억 달러 규모의 해외펀드가 글로벌 증시 하락으로 20% 손실을 볼 경우 자산운용사는 손실액만큼 은행으로부터 선물환을 다시 매수해야 한다. 즉 매도했던 100억 달러 상당의 선물환 중 20억 달러를 사들여야 하는 것이다.

또 자산운용사에 선물환을 팔아 또다시 환 위험에 노출된 은행은 위험 회피를 위해 현물시장에서 20억 달러를 사들일 수밖에 없다. 달러 수요가 늘어나 환율을 올리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대형증권사 한 파생상품 담당자는 “해외펀드 비과세 시행 당시 금융권에서는 선물환 거래로 환헤지를 하는 해외펀드에 대해서는 비과세 혜택을 주면 안 된다는 주장이 많았다”며 “시장의 우려가 묵살됐던 것은 재경부 내에서 선물환 거래에 따른 부작용을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만일 정부 당국이 해외펀드 선물환 거래의 부작용을 알고 있었다면 환율 폭등을 방치한 것으로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경부의 해외펀드 비과세 조치로 2007년 한 해 동안 해외펀드에는 무려 42조원(수탁액 기준, 450억 달러 규모)이 넘는 시중자금이 몰렸다. 하지만 재경부의 예상과 달리 환율은 큰 변동이 없었다. 자산운용사 대부분이 해외펀드의 환율 변동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선물환 거래에 나섰기 때문이다.

반면 금융전문가들의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파국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확산되면서 시작됐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가 글로벌 경제 및 증시 침체로 이어지면서 해외펀드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졌고, 이는 곧 외환시장의 교란 요인으로 작용했다.

베어스턴스 부도 등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해 지난해 말 기준 65조원이 넘었던 해외펀드 순자산은 올 들어 54조원(3월 18일)으로 급감했다. 글로벌 증시 침체로 11조원가량이 증발한 것이다.

막대한 손실로 다급해진 자산운용사들은 선물환 매수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결국 외환시장에는 달러 수요가 일시적으로 급증했고, 환율 폭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선물회사 한 대표이사는 “3월 들어 베어스턴스 부도 등 미국발 금융 위기가 고조되면서 해외펀드의 헤지성 선물환 매수가 집중되기 시작했다”며 “전체 선물환 매수 물량 중 절반 가까이가 해외펀드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2월 29일부터 3월 17일까지 해외펀드(자산운용사)의 선물환 매수는 총 25만1911계약(전체 매수 계약 중 42.6%)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선물환 1 계약당 기준금액이 5만 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해외펀드는 2주 동안 무려 126억 달러(약 12조원) 를 사들인 셈이다. 같은 기간 외국인 주식 매도 금액(약 4조2000억원)보다 3배가량 많은 규모다.

시중은행 한 외환운용 팀장은 “해외펀드들이 원금은 물론 평가손익에 대해서도 환헤지를 하는 바람에 손실이 커지자 일시적으로 선물환 매수가 폭증했고 그만큼 달러 수요도 급증한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재경부의 예상대로 환율이 오르긴 했지만 단기간에 폭등하면서 나라 전체를 위기로 몰고 갈 뻔했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해외펀드의 비과세 조치로 야기된 환율 폭등 사태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가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면서 2주간의 환율 폭등 사태는 다소 진정됐지만 여전히 재앙의 불씨가 남아 있다는 것이 금융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환율 전망과 관련, 한 외환전문가는 “외국인 주식 매도가 계속되는 상태인 데다 환율 폭등의 계기가 된 해외펀드도 50조원이 넘는 규모라 방심하긴 이르다”며 “미국발 글로벌 경기침체가 심화할 경우 해외펀드의 손실이 커져 다시 환율 급등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