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정부의 신뢰에 달렸다
영국은 어떻게 광우병 위기 극복했나 처음엔 사람에 해가 없다는 입장 고수 … 뒤늦게 독립적 과학자문회 설치 |
약 1억5000만 마리로 추산되는 브라질과 중국이 그 뒤를 잇는다. 미국에는 약 1억 마리의 소가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유럽엔 얼추 1억3000만 마리가 있다. 아프리카에도 전통적인 방법으로 사육하는 약 2억 마리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소는 국제 경제적으로 중요하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쇠고기의 23%는 국경을 넘어 수출입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출을 위해 사육하는 소가 상당수라는 뜻이다. 이미 2000년 기준으로 30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됐으니, 지금은 더 될 것으로 보인다. 우유·치즈·버터·요구르트 등 유제품도 그만한 교역 시장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소가죽도 신발과 의류 생산에 이용된다. 광우병 97%가 영국서 발생 인간이 석기시대부터 사육하던 소. 그 친숙한 가축이 광우병 소란을 일으킨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다. 광우병으로 불리는 BSE(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우해면양뇌증)에 걸린 소의 숫자를 살펴보자. 여러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발생한 18만8000여 건 중 영국에서 18만3000건이 넘게 발생했다. BSE에 걸린 소의 97%가 영국에서 나왔다. 광우병 소가 처음 발견된 곳도 영국이다. 영국의 환경·식품·농촌문제부에 따르면 1986년 11월 처음 발견된 광우병은 이듬해 95마리로 늘더니 89년 말까지 1만 마리를 넘었다. 92년 절정에 올라 한 해 3만6680건이 발견됐다. 영국에선 대규모 소동이 벌어졌고 축산업이 무너지다시피 했다. 440만 마리에 이르는 소가 고위험군이라는 이유로 살처분됐다. 직접적인 경제적 손실이 수십억 달러에 이르며, 간접적인 것을 합치면 몇 배는 될 것이라는 추정이다. 그 밖의 광우병도 대부분 유럽에서 발견됐다. 전 세계 광우병 소의 99.9%가 유럽에서 나왔다. 눈에 띄는 것은 대부분 소에게 풀을 먹여 키우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선 BSE에 걸린 소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광우병의 원인은 동물성 사료로 거의 밝혀졌기 때문이다. 뇌신경 질환인 스크래피(scrapie)에 걸린 양의 내장과 뼈를 갈아 만든 사료를 먹은 소가 발병한 것이다. 그래서 영국은 물론 대부분 국가에서 동물성 사료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간단한 통계를 하나 보자. 영국 166명(166), 프랑스 23명(1), 아일랜드 4명(2), 이탈리아 1명(0), 미국 3명(2), 캐나다 1명(1), 사우디아라비아 1명(0), 일본 1명(0), 네덜란드 2명(0), 포르투갈 2명(0), 스페인 3명(0). 이른바 인간광우병, 즉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브병(vCJD)에 걸린 사람의 숫자다. 인간 광우병의 84%가 영국에서 발생했다. 게다가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사람도 일부는 영국에서 감염됐을 것으로 의심된다. 괄호 안은 이 가운데 영국에서 1980년부터 1996년 사이에 6개월 이상 거주한 사람이다. 이 기간은 영국에서 광우병 관련 소에 사람이 오염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되는 기간이다. 사람들이 모르고 먹은 광우병 감염 소가 46만 마리에서 48만2000마리로 추정된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에서 걸린 사람 3명 가운데 2명은 영국에서 6개월 이상 거주했다. 나머지 1명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뒤 2005년 후반부터 미국에서 영주했다. 미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환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살던 어린 시절에 이 병에 걸려 오랜 잠복기를 거쳐 미국에 거주하는 동안 발병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미국 소나 쇠고기로 인해 광우병에 걸린 사람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셈이다. 영국 영토인 잉글랜드와 북아일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와 인근 섬에서 1980년에서 96년 사이 1개월 이상 체류한 사람은 헌혈을 할 수 없다. 이른바 ‘인간광우병’으로 불리는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브병의 잠복기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97년 이후에도 영국에서 3개월 이상 체류한 사람은 헌혈이 금지된다. 복지부는 광우병 위험 관리를 위해 2002년부터 헌혈자 문진표에 인간광우병 관련 항목을 넣었다(하지만 영국에서 거주했던 사람이 그런 적 없다고 잡아떼면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어 헌혈을 받을 수밖에 없다). 광우병 발생 소가 나온 그리스, 덴마크, 체코, 슬로바키아, 핀란드, 폴란드, 독일, 벨기에,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스위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네덜란드, 아일랜드에 80년 이후 5년 이상 거주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영국에선 헌혈로 안전한 혈액과 혈액제제를 충당하기가 쉽지 않다. 혈액을 통해 광우병에 걸린 경우도 세 건이나 나왔다. 그래서 영국은 상당수 혈액제제를 외국에서 사다 쓴다. 국가경제적으로 상당한 손실이 아닐 수 없다.주목할 점은 영국은 주로 미국에서 혈액제제용 혈장을 들여온다는 점이다. 사실 미국은 전 세계 원료용 혈장의 50% 이상을 공급하는 세계 최대의 혈장 수출국이다. 그렇다면 광우병의 진앙지인 영국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을까. 영국의 위기극복은 처절한 반성이 바탕이었다. 광우병은 86년 처음 발견됐지만 초기 대응은 미흡했다. 영국 정부는 축산업 피해를 우려해 88년 6월에야 이를 신고 대상 질병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7월에는 감염된 소는 물론 의심이 가는 거의 모든 소를 살처분하기로 했다. 89년에는 소의 뇌와 척수, 비장, 편도선 등 감염 물질이 들어있을 수 있는 모든 내장의 식용을 금지했다. 초기 대응을 제대로 못해 사태를 키운 셈이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이를 반성하고 철저한 조치를 취했음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영국은 동물성 사료를 일절 금지하고 있다. 광우병에 감염된 소는 물론 광우병에 걸린 암소가 낳은 송아지, 그리고 광우병 소와 같은 농장에서 사육된 다른 소들까지 모두 살처분했다. 그뿐만 아니다. 인간광우병이 수혈은 물론 외과수술장비를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지적이 나오자 1999년 이후 수혈용 혈액에서 감염 경로가 될 가능성이 있는 백혈구를 모두 제거했다. 혈액제제는 미국에서 수입한 혈장으로 만들고 있다. 4000억원을 들여 외과수술장비를 소독했다. 97년 집권한 토니 블레어는 총리 취임 초기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96년 인간광우병 사례가 드러난 것이다. 그전까지 영국 정부는 광우병은 사람에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국민의 과학과 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블레어는 당시 상황과 관련해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지난해 퇴임 연설을 하면서 “과학의 신뢰 회복이 영국의 미래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말한 것이다. 광우병 초기 대응을 제대로 못한 잘못은 과학계가 아니라, 그 위험을 경고한 과학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고집을 피우거나 안일하게 대처한 전문가 집단과 정부에 있다는 것이다. 당시 영국의 왕립 학술원도 “모든 보건정책 결정 과정에서 순수 전문가로 인정받은 과학자에게 자문하라”고 블레어에게 권고했다. 그러자 블레어는 정부에 독립적인 과학자문관 자리와 자문평의회를 설치했다. 여기에다 정부기관이 확보한 모든 연구 결과를 넘겨 토론에 부치도록 했다. 그리고 그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과학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신뢰인 것이다. 현재 영국인은 자국 쇠고기를 즐기고 있고, 해외 수출에도 열성을 보이고 있다. 96년 시작된 유럽연합의 영국산 쇠고기 수출금지는 2006년 5월 2일 풀렸다. |
채인택 중앙일보 기자 (ciimccp@joongang.co.kr) | [938호] 2008.05.19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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