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기사모음

한 곳서 먹고 놀고 일하게 하라

도일 남건욱 2008. 6. 29. 11:01
한 곳서 먹고 놀고 일하게 하라
기업 부동산 개발 성공 전략
교보 강남타워 ‘오피스의 호텔화’로 성공 … 일본 모리그룹은 롯폰기힐스로 대박

▶일본 도쿄의 상징으로 떠오른 롯폰기힐스의 모리 빌딩과 맨션 전경. 모리그룹이 만든 롯폰기힐스는 일하고, 놀고, 공부하고, 쉴 수 있는 창조적 도심 공간으로 세계적 명소가 됐다.

아파트 분양에 주력해 왔던 건설사들이 울상이다. 건설사들은 아파트 원가 공개와 분양가 상한제로 더 이상 아파트로는 돈 벌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직접 부지 매입에 나서고 금융과 자산 관리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기업 부동산 전문 컨설팅 업체인 조나연 프로퍼티 솔루션 코리아 대표가 국내 기업 부동산의 새로운 트렌드와 수익 창출 방안을 소개했다.
“뭐좀 방법이 없을까요? 온갖 방법을 다 써봐도 분양이 안 되네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건설사 A사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한숨부터 쉬어댔다. 또 다른 건설사 B상무는 “우린 다른 건설사에 비해 미분양이 많지 않네요. 아예 수주가 없었거든요”라며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 1월은 유난히도 유명 건설사들의 상담 요청이 많았다. 아파트 분양에 주력해 왔던 국내 대부분의 건설사가 지난해 실시된 아파트 원가 공개와 분양가 상한제로 더 이상 아파트로는 돈 벌기가 힘들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은 그 대안을 절박하게 찾아야 했다. 많은 임직원이 오피스, 상가, 서비스 아파트, 호텔 등 다양한 부동산으로 눈길을 돌려 분주한 날을 보냈지만 상업 부동산 개발에 익숙지 않은 그들로서는 수익 모델을 찾아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국 건설시장은 지금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차별화된 컨셉트 개발만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지름길이라는 걸 건설업계 종사자들은 잘 안다.

새 수익 모델 창출을 위해 직접 부지 매입에 뛰어든 건설사들은 강북과 강남 요지의 땅값을 천정부지로 올리고 있다. 마치 10년 전 일본 업계에서 주택 분양시장의 성장 한계를 예견하고 상업 부동산으로 몰려가는 모습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과연 안정적, 지속적 수익 창출이 가능한 새로운 개발 모델은 무엇일까?

2002년 교보강남타워의 컨셉트 개발과 임대 전략을 주도하면서 느낀 점 몇 가지를 소개한다. 교보생명은 1980년 종로 교보생명 빌딩을 개발하면서 주목 받았다. 교보생명의 사옥 개발 전략은 중심 상업지로부터 한두 블록 떨어진 곳에 부지를 싸게 매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후 독창적인 컨셉트의 대규모 빌딩을 개발함으로써 중심 상업지와의 연결을 꾀해 빌딩 가치를 높였다. 교보는 또 독특한 외관의 랜드마크형 빌딩을 디자인하고 이를 전국 사옥에 동일하게 적용해 브랜드 이미지를 강하게 부각시켰다. 거기다 각 사옥에 통일된 오피스 임대 전략을 시도해 부동산 수익 가치를 높이는 데도 성공했다.

교보 강남타워의 위치는 오피스타운인 테헤란로에서 몇 블록 떨어져 있었고 오피스 개발이 많은 지역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어떻게 교보 강남타워가 테헤란로의 오피스들과 비슷한 임대료를 받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을까?

빌딩 외관 디자인을 맡은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아보타의 역할도 물론 중요했다. 하지만 오피스 실수요자들이 원하는 가치를 창출해 그만큼의 임대료 수익을 내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필자는 우선 강남 교보타워가 반포의 팰리스 호텔에서 삼성동의 인터컨티넨탈 호텔까지 크고 작은 많은 호텔 사이에 있는 점에 주목했다.

비즈니스 모임이 주로 호텔에서 많이 이뤄진다는 것에 착안해 그 수요를 강남타워 쪽으로 이끌면 어떨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었다. 호텔로 향하는 비즈니스 미팅의 수요를 교보 강남타워 쪽으로 이끌고자 필요한 시설을 적극적으로 입점시켰다.

각종 금융사는 물론이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서점과 편안한 대화가 가능한 커피숍 등을 유치하되 그 시설과 분위기는 최상급 호텔에 맞먹을 정도로 만들었다. 즉 ‘오피스의 호텔화’를 시도했고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 오피스 빌딩은 시설 미흡

원래 교보 강남타워에는 매우 독특한 명소들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예를 들어 세계적 명성의 랜드마크형 비즈니스 클럽과 부부가 편하게 유흥을 즐길 수 있는 업소의 입점이 아주 구체적으로 계획됐었다.

그에 따라 홍콩의 홍콩 클럽, 베이징의 베이징 클럽, 싱가포르의 타워 클럽 등 세계 유수의 비즈니스 클럽들을 방문해 협상한 일과 국내 최고의 커플 댄스 클럽을 수소문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막판에 그 계획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무산돼 아쉬울 따름이다.

언뜻 생각하면 오피스 빌딩에 그런 것들이 왜 필요한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핵심이 바로 거기 있다. 기존의 부동산 개발이 추구하던 안이한 방식으로는 더 이상 수익 창출은 기대하기 어렵다.

수요자들의 욕구 그 이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빌딩 안에서 그 욕구를 120% 이상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해 빌딩 가치를 훨씬 높이는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컨셉트 개발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한국의 오피스 시장은 세계적인 오피스 시설에 대한 욕구로 굶주려 있다. 대부분 중심 상업지 오피스들은 전문적인 임대 오피스 빌딩이 많지 않았던 시절에 사옥용으로 개발된 것이다. 외환 위기 시절 해외에 매각된 오피스들은 기존 시설의 리모델링에 그쳐 국제 기준에 부합된 시설이 미흡하다.

아쉽게도 대부분 유명 외국계 은행 한국 지점장들은 한국에서 가장 좋은 빌딩에 입점해 있으면서도, 본사 임직원들의 방문을 꺼린다. 한국의 오피스 시설들이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현저히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서울은 도심 재개발로 분주해질 듯하다. 하지만 전형적인 한국식 오피스를 벗어나 세계 수준의 품격 있는 오피스 개발이 절실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설만 세계적인 수준으로 갖춰서는 미흡하다는 것이다.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그 이상의 중요성을 갖는다. 수요자들의 욕구를 읽어내고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컨셉트 개발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본의 오랜 부동산 경기 침체에도 창의적이고 일관성 있는 개발에 성공해 세계적인 부동산 기업으로 우뚝 선 일본 모리그룹의 예를 보자.

도시재개발사업 전문 종합 디벨로퍼인 모리그룹(www. mori.co.jp)은 빌딩 임대사업(77.8%)과 시설운영사업(13.7%)이 매출액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주력 사업이다. 모리그룹이 개발한 도쿄 미나토구의 롯폰기힐스는 그 안에 거주하며 일하고, 놀고, 쉬고, 공부하고, 창조할 수 있는 복합 도시다.

11만5000㎡의 부지에 지상 54층의 모리타워를 중심으로 레지던스, 상업시설, 방송국, 미술관, 호텔 등을 입주시켜 다양성을 추구했다. 고층 빌딩을 조성하고 남은 공간은 녹지를 조성해 드넓은 시민 공원으로 꾸몄다. 완성에 17년이 소요된 롯폰기힐스는 지금 수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세계적 명소가 됐다.

▶‘오피스의 호텔화’를 시도해 성공한 교보 강남타워 전경.

모리그룹은 부동산을 분양하지 않고 소유하면서 임대료를 받는다. 임대료를 많이 받자면 임대 수요자들의 시대적인 욕구를 정확히 읽어야 했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원할까. 현대 도시의 구매 계층은 문화와 쇼핑을 원한다.

바쁜 그들은 시간을 절약하길 원한다. 와인 한잔하고 오페라를 감상하고 쇼핑하고 다시 업무를 보고 휴식을 취하는 일이 도심에서 시간 낭비 없이 이뤄진다면 좋을 것이다. 모리그룹은 바로 그 점에 착안했다. 이제는 건물 하나가 랜드마크가 아니라 거리 전체, 도시 전체가 랜드마크가 돼야 한다는 걸 보여줬다.

모리그룹의 성공 요인은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지역 및 상품의 선택과 집중이다. 도쿄의 중심 3개 구 중 하나인 미나토구에 사업을 집중해 자금 부담을 줄이면서 오피스 빌딩 사업에 회사 역량을 효율적으로 발휘했다.

둘째, 부동산 분양이 아닌 보유를 견지했다. 부동산 시장이 흔들려도 자신들이 제공하는 가치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철학 아래 높은 임대료를 유지할 수 있는 컨셉트를 개발해 안정적인 수익원을 창출했다. 보유 부동산에 대한 종합적, 체계적인 운영 관리가 필수였다.

모리그룹 방식 한국서도 통할까

셋째, 개발 관련 전 과정을 직접 수행했다. 모리그룹은 부동산 개발 기획, 인허가, 개발, 임대, 운영 관리, 자금 조달 등 부동산 개발에 필요한 모든 업무를 독자적으로 직접 수행했으며 홍보·마케팅 업무까지 포괄해 일관성 있는 추진력을 보였다. 결국 모리그룹은 수익 창출과 개발의 새로운 모델 제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큰 성공을 거둔다.

모리그룹 예에서 보듯 개발의 성공은 수요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수요자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차별화되고 통일된 개발과 사후 관리가 필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이 주인이 많은 빌딩은 통합해 개발하고 관리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국내 웬만한 규모의 상가빌딩이라면 각종 소유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개발 관련사들의 금융업 진출이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공적인 부동산 개발에 필요한 자금 조달과 사후 자산관리는 건설과 유통사들의 금융과 자산관리 시장 진출의 절대적 배경이 된다.

현재 우리 업계에서는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일관성 있는 부동산 개발 전략을 위해 유수 기업들이 금융과 자산 관리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주택 건설 경기 침체로 우리나라의 부동산 개발을 주도하던 시행사들이 도산하고 있고 아파트 분양에 주력했던 건설사들은 새로운 시장에 대한 준비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다. 이는 관련 노하우와 전문 인력이 크게 모자란 탓도 있다.

앞으로의 부동산 개발 시장에는 모리그룹과 같이 더욱 특화된 전문 개발 회사와 건설사의 역량이 필요하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기업의 역량을 효율적으로 발휘하지 않으면 변화하는 시장의 흐름에 대처하기 어렵다.

부동산 개발 시장의 새로운 수요를 읽고 여기에 창의적으로 신속하게 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의 새로운 변화에는 일반 투자자들도 한몫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부동산 개발에 관련된 간접 투자 상품들이 계속 시장에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안정적으로 고수익을 기대한다면 이러한 간접 투자 상품에 관심을 갖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간접 투자 상품이 활성화한다면 자금의 선순환이 이뤄져 선진화된 구조의 부동산 시장으로 발전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조나연 프로퍼티 솔루션 코리아 대표 (acho@psk.co.kr [937호] 2008.05.13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