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기사모음

경기 침체 직격탄 잠실벌 강타

도일 남건욱 2008. 8. 29. 19:02

경기 침체 직격탄 잠실벌 강타
르포 실종된 재건축 입주 특수
백화점·금융·인테리어 업계 울상 … 학원가는 임차료 걱정할 판

▶각종 금융회사가 입점한 트리지움 상가.

지난 8월 5~7일. 잠실 주공 2단지를 재건축한 ‘리센츠 아파트’ 단지 안은 드릴과 타카(자동으로 못을 박는 장비) 소리로 요란했다. 단지 안은 내외부 인테리어·조경 공사 인부로 가득했다. 흑인 노동자도 보였다.

아파트 동마다 ‘인테리어 모델하우스’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입주 초반이라 드문드문 다니는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신문 구독, 우유 대리점, 전자제품 직판점 영업 사원들이 판촉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2단지에만 앞으로 5563가구가 이사오게 된다.

단지는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흉물 취급 받던 낡고 허름한 주공아파트는 최고 33층짜리 동을 비롯한 18개 동으로 둘러싸인 매머드 고층 단지가 됐다. 주공아파트 주민들이 20년 넘게 요구해온 재건축의 산물이었다.

입지는 최고 수준이다. 신천역이 코앞이었고, 걸어서 5~10분이면 롯데백화점, 롯데월드, 석촌호수, 한강시민공원에 닿는다. 단지 안에는 초·중·고가 하나씩 들어섰다. 출근길 교통 대란만 아니라면 모든 면에서 최고의 입지라는 데 손색이 없었다.

도로 하나 사이로 잠실 1단지(아파트명:엘스) 재건축 단지가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이곳 역시 5678가구가 오는 9월부터 입주할 예정이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잠실 시영 재건축 단지(아파트명:파크리오)까지 합하면 총 1만8105가구가 올가을이 가기 전에 입주를 마치게 된다.

인구 6만~7만 명이 모여 살 미니 신도시는 올 상반기보다 가격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109㎡형 한 채 가격(8월 7일 현재 8억3000만~10억원)으로 강북 노원구의 같은 규모 두 채는 살 수 있다.

잠실 재건축 단지는 인근 상권은 물론 금융·유통·학원 업계에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다. 당연한 기대다. ‘리센츠 아파트’만 해도 전체 가구 중 109㎡(33평형) 이상이 4500가구가 넘는다.

물론 전세 입주자가 절반 정도 될 것이라는 게 부동산 업계 관측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황금 상권이 열리는 것은 기정 사실이었다.

금융 경쟁 치열한데 실속은 없어

금융권부터 보자. ‘새 손님’ 유치 경쟁은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잠실 재건축 각 단지를 구분하는 거리인 ‘신천역 사거리’ 인접 상가에는 지난해 8월 이후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회사들이 앞다퉈 지점을 신설했다.

‘금융권 잠실 대전’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총 2만여 가구가 넘는 거대한 신흥 부촌이 형성되면 예적금, 대출, 보험, 펀드, 주식거래 등 금융 수요가 넘쳐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정대중 외환은행 잠실역지점 팀장은 “잠실 재건축 단지는 지역 특성상 자산가들이 많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며 “8월 입주가 시작되는 잠실리센츠(2단지)의 대출(중도금 및 잔금대출) 수요만 2조원이 예상될 정도로 은행들의 기대가 컸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 금융회사는 인근 지역 지점을 단지와 가까운 곳으로 확대, 이전하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단지 주변 어디에서나 금융회사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는 상태다.

실례로 잠실트리지움(기존 잠실 주공 3단지) 상가와 인근에는 우리투자증권 등 무려 7개의 증권회사가 모여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 3월 송파역 인근 지점을 트리지움 아파트 상가로 이전하고 지점명도 잠실 신천지점으로 변경했다.

이 상가에는 우리투자증권뿐만 아니라 대우증권과 한화증권도 입점해 있다. 이 외에도 굿모닝신한증권, 교보증권, 하나대투증권, 한국투자증권 등도 잇따라 지점을 신설하거나 이전한 상태다.

최근에도 금융회사 간 입점 경쟁은 치열하다. 이달부터 입주가 시작된 잠실리센츠(2단지)에는 단지 안에 입점을 노리고 있는 금융회사 직원들이 거의 매일 가두 마케팅을 벌이며 입주자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있다.

이처럼 금융회사 간 영업 경쟁은 치열하지만 실제 금융 수요는 그리 많지 않다. 금리 상승으로 대출을 꺼리는 입주자가 늘고 있는 데다 주식시장 침체로 투자 분위기도 한풀 꺾였기 때문이다.

또 부동산 경기 침체로 입주 시기를 늦추는 가구가 늘고 있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실제 잠실트리지움은 입주가 시작된 지 1년 가까이 지났지만 입주율이 80% 정도에 그치고 있는 상태다.

잠실트리지움 인근 한 증권회사 지점장은 “증시 침체 탓인지 지점을 찾는 고객이 많지 않고, 신규 계좌개설도 2~3개 정도로 성과가 미흡하다”며 “더욱이 부동산 침체로 입주를 늦추는 가구도 많아 당분간 지점 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하범수 우리은행 잠실역지점 팀장도 “마케팅을 벌이고 있지만 고객 호응이 많지는 않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경기 침체로 기대했던 것과 달리 금융 수요가 많지 않자 금융권에서는 ‘풍요 속의 빈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산가들이 많은 부촌에 위치해 있지만 정작 실적은 올리지 못하는 ‘속 빈 강정’이 될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강병인 우리투자증권 신천지점장은 “입주 초기인 데다 경기도 안 좋아 단지가 활성화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며 “영업성과가 기대치에 못 미쳐도 지역 특성상 고객 확보를 위한 마케팅 활동은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이 운영하는 잠실 입주민을 위한 갤러리.


백화점 “경기 침체 실감한다”

금융업계가 잠실 재건축 단지에 들어와 기대만큼 재미를 못 보고 있지만 어차피 지점 하나 정도는 낼 만한 곳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 특수 실종’이 실망스럽겠지만 어차피 길게 보고 들어온 지역이다. 증권·보험사도 마찬가지다. 정작 실망이 큰 곳은 따로 있다. 유통업계다.

대단지 코앞에 위치한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중반부터 잠실 재건축 단지를 타깃으로 한 마케팅을 벌여왔다. 현재 두 백화점은 잠실 단지 입주자를 대상으로 가전·가구 용품 구매 금액의 5%를 상품권으로 증정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무역센터점 안에 잠실 입주민을 위한 갤러리인 ‘JS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잠실 재건축 아파트 입주민만 가입할 수 있는 ‘프리미엄 라이프 멤버스’ 제도를 연말까지 운영할 계획이다.

가입만 해도 5만원대 와인과 3개월 무료 주차권을 준다. 두 백화점은 입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8월 중순부터는 단지 안에 2~4곳의 모델하우스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분위기는 안 좋아도 너무 안 좋다. 한 고객상담 직원의 말을 들어보자.

“일반적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 가전 쪽에서는 TV, 세탁기,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등이 많이 나가고 가구 품목에서는 소파, 침대, 식탁이 많이 나가요. 그런데 TV를 상담하러 오시는 고객이 거의 없어요. 다른 품목도 상담은 많은데 구매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가구 부문을 보면, 침대는 거의 안 나가고 있습니다. 소파가 좀 판매되는데 300만~400만원대 중저가를 선호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1000만원대 제품을 구입하겠다는 고객은 거의 없습니다. 또 하나, 특이한 분위기 중 하나는 홈 인테리어인데요. 보통 대형 평형 입주민은 내부 전체를 리노베이션(Renovation)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아예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는 이런 원인에 대해 “전체적으로 아파트 가격 대비 소득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아주 못 사는 지역도 아닌데 경기를 반영한 소비 위축 심리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의 한 매니저도 같은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8월 말 정도 가봐야 알겠지만 현재로서는 입주 특수가 기대만큼 살아나지 않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잠실 입주민만 가입할 수 있도록 롯데백화점이 운영 중인 ‘프리미엄 라이프 멤버스’ 이벤트에는 현재 약 300가구 정도만 가입된 상태라고 한다.

이 매니저는 “가전·가구 상담은 많은 편인데, 고민을 많이들 하시고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중저가 선호 현상이 뚜렷한데다 경기 침체 영향이 큰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한 백화점 팀장급 관계자는 “예상했던 매출 목표 달성은 힘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 매장 분위기는 어떨까? 8월 6일 찾아간 현대백화점 무역센터 ‘JS클럽’에는 잠실 입주민을 대상으로 가전제품, 침구세트 등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새로운 시장을 보고 지난 5월 오픈했다고 한다.

하지만 클럽 분위기는 한가했다. 방문했던 30분 동안 손님은 두 명이었고, 깊은 관심보다는 눈길만 주는 정도였다. 현장 직원은 “정말 손님이 없다”며 “하루 평균 20~30명 정도가 방문하는데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고객은 10%가 채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썰렁한 분위기는 내외부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인 재건축 단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입주가 시작된 ‘리센츠’ 단지 안에는 인테리어 관련 모델하우스가 동마다 3~4곳씩 설치돼 있다. “입주가 시작된 8월 1일 전부터 방문객은 꾸준한 편”이었다는 게 업체들의 얘기였다.

“넓은 집 입주자들도 구경만 하거나 싼 것만 찾는다”는 것도 공통된 의견이다. 109㎡형에 인테리어 모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L사 직원은 “오늘(8월 7일) 10팀 정도가 왔는데, 다들 카탈로그와 전화번호만 받아가시더라”고 푸념했다.

▶상가 분양 중인 잠실 재건축 단지.


학원 적자 보는 곳 수두룩

대치동 학원 파워를 능가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던 잠실 학원가도 상황은 좋지 않다. 사교육 시장은 상대적으로 경기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외다. 지난해 잠실 3단지 인근에 문을 연 J학원 원장은 “새로운 학원가요? 아직 여기 상황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에 따르면 현재 학원생은 150명가량이다. 학원 업계에서는 강남·송파 지역에서 살아남으려면 평균 200명은 등록해야 ‘장사가 된다’는 수준이고, 300명이 넘으면 ‘훌륭한 편’이라고 본다.

이 기준으로 봤을 때 J학원은 이익은커녕 본전도 못 뽑을 가능성이 높다. J학원 원장은 직접 적자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인근 지역 대부분 학원이 우리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지난해부터 잠실 재건축 단지 입주가 본격화하면서 국내 유명 학원들이 속속 이 지역에 집결했다. 2006년 ‘대성N학원’을 시작으로 단과 전문인 마이맥 송파 대성학원, 입시 전문 장학학원, 영어 전문 아발론 등이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뛰어들었다. 열기에 힘입어 송파구 일대 학원 수는 급증하기 시작했다.

2006년 7월 922개였던 보습학원은 올 7월 현재 1257개로 늘어났다. 어학 학원도 56개에서 93개로 두 배가량 증가했다.

한때는 학원가 ‘빅3(강남구 대치동, 노원구 중계동, 양천구 목동)’를 앞지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을 정도다. 인근 L부동산 사장은 “한때 학원이 들어설 만한 공간을 찾는 문의가 쇄도했고, 마땅한 매물이 나오면 1~2초 만에 거래가 완료됐을 정도”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하지만 잠실 재건축 일대 일부 학원은 다음 달 임차료를 걱정해야 할 처지라는 게 현지의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학원 입점이 주춤한 상황이다.

국내 대형 학원업체인 A사도 개점을 추진하다 검토로 입장을 바꿨다. A사 관계자는 “1, 2단지 입주가 완료된 이후 상황을 보고 다시 개점을 추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특수(特需)는 말 그대로 특별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수요다. 약 3개월 동안 1만8000여 가구가 이사를 온다는 것은 분명 특수를 기대할 만한 상황이다. 호황기였다면 잠실벌에서 상인들의 즐거운 비명이 들려왔을 터지만 너무 조용하다.

대박을 치는 곳은 있었다. 2단지 앞 편의점이다. 섭씨 30도를 넘는 폭염이 계속되면서 공사장 인부들이 음료수를 싹쓸이해 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8월 7일 찾은 편의점 냉장고는 3분의 2가 텅 비어 있었다. “사장님만 특수 봤겠다”고 하자 우울한 답이 돌아왔다.

“말도 마요, 다른 건 안 팔리고 물하고 음료수만 나가요.”

잠실 재건축 단지는 어떤 곳
뽕나무밭에 건설된 ‘부의 상징’

매머드급 단지로 변신한 잠실 주공아파트 단지는 1970년대 강남 개발 붐을 타고 지어졌다. 잠실 뽕나무밭과 모래밭을 밀고 1975년 2월 기공식을 한 잠실 주공이 아파트 촌으로 변신하는 데 걸린 기간은 불과 3년 7개월이었다.

잠실 주공은 112만㎡ 부지에 965억원이 투입됐고, 총 364동에 1만9180호가 건설됐다. 당시 잠실 주공아파트는 부의 상징이었다.

대단지 아파트 시대를 연 잠실 주공아파트지만 재건축이 결정돼 2005년 허물기 직전에는 서울 중심부의 가장 흉물스러운 곳이라는 눈총도 받았다.

하지만 재테크 면에서 보면 황금알을 낳은 곳이다. 1976년 말 입주가 시작된 잠실 주공 1단지 49.5㎡형 분양가는 432만원이었다. 하지만 88올림픽이 열리던 해까지 딱 열 배(4300만원)가 뛰었고, 재건축 개발 붐이 뜨거웠던 2004년에는 최고 8억2000만원에 거래됐다. 27여 년 동안 190배 정도가 오른 것이다.

30년 전 지어졌던 잠실 주공 중 옛모습 그대로인 곳은 주공 5단지뿐이다. 이곳은 1978년 완공됐다. 3930가구인 5단지는 최근 뉴스의 초점이 됐다. 재건축 시장 불황으로 월 1억원씩 가격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공 1~4단지와 달리 고밀도 아파트(15층 이상)라 재건축 추진도 차질을 빚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최소 5~6년은 지나야 재건축이 시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