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기사모음

값 뚝뚝 떨어져도 반응 ‘시큰둥’찬바람 몰아치는 경매시장

도일 남건욱 2008. 10. 20. 09:32
값 뚝뚝 떨어져도 반응 ‘시큰둥’
찬바람 몰아치는 경매시장
낙찰가율 79%로 내려가 … 버블세븐 지역이 하락에 앞장
아파트 잔치 끝났다
강은 지지옥션 팀장·ekang@ggi.co.kr

경매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 이후 경매 물건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10월 9일 인천법원 주차장. 법원 경매가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만차 알림’이 일찌감치 정문 앞에 놓여 있을 텐데 주차장은 의외로 한산했다.

구석구석에 개발 바람이 불면서 인천 지역의 경매가 진행되는 법정은 늘 시세 차익을 보려는 투자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입찰법정의 좌석을 가득 메우고 복도까지 인파로 붐볐다.

그러나 이날은 듬성듬성 빈자리가 눈에 띄었고, 명함을 돌리는 대출 영업사원만이 손님들을 찾아다니며 서성거릴 뿐이었다. 경매 물건은 평소와 비슷함에도 경매를 하러 온 사람은 30%가량 줄었다.

특히 원정 입찰자로 보이는 아줌마 부대들이 줄어든 것이 두드러졌다. 자리를 채운 사람 중 일부는 경매학원에서 현장실습을 나온 수강생들이었다.

여느 때와 다른 모습도 보였다. 개찰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긴장된 모습으로 결과를 주목한다. 본인이 응찰한 물건이 아니라도 결과를 관심 있게 지켜보다가 낙찰가가 너무 높다 싶으면 “어머 나~” “미쳤다! 미쳤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리곤 했다. 당일 경매 물건 중에 ‘하이라이트’라고 불리는 응찰자 최다 물건의 낙찰자에게 박수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날은 엄숙하리만큼 차분한 분위기 속에 낙찰자도 크게 기뻐하거나 떨어진 사람도 많이 애석해 하지 않았다. 이날 아파트는 2~3명, 다세대에는 5~6명가량이 응찰했고, 14대 1을 기록한 부평구 청천동 다세대가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린 건이었다. 40~50 대 1의 경쟁률이 속출하던 여름과는 격세지감이었다.

경매는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다수가 부동산의 가치를 판단한다는 측면에서 시장 분위기가 바로 반영되는 곳이다. 그런 측면에서 경기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경매 시장에도 부동산 침체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들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경매 물건 8월에 32% 늘어


첫째로 경매 물건의 증가를 주목해야 한다. 전국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가 7월 3684건에서 8월 4877건으로 32% 증가했다. 9월에는 5977건으로 전달 대비 23% 늘었다. 경매 물건이 많아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대출을 받아 무리하게 집을 산 사람들이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는 오르면서 급매로라도 팔아보려 했으나 매수세가 없어 팔지 못해 경매로 내몰리는 경우가 그중 하나다.

담보대출을 받아 사업 자금으로 돌렸는데, 불황으로 인해 경영이 어려워져 대출금을 못 갚는 이유도 있다. 더욱이 부동산 가격 상승기에는 금융권에서도 채권 회수를 할 때 유예기간을 주지만, 가격이 내리면 부실을 우려한 나머지 유예 없이 곧바로 경매를 진행한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형 부동산도 속속 경매시장으로 넘어가고 있다.

지난 1월부터 9월 중 감정가 50억원이 넘는 경매 진행 물건은 총 925건이었다. 3월 89건에 그쳤던 대형 부동산 물건은 8월 117건, 9월 130건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경매 물건의 증가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지난해 10월 경매되는 물건이 실제로 경매 신청이 된 시점은 올해 봄 정도다.

따라서 부동산 침체의 긴 터널을 거치면서 경매 접수된 물건들이 도마에 오르게 되는 절정기는 내년 상반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기침체 때는 주거용, 생계형, 수익형 부동산 순으로 경매 물건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고, 지금 같은 부동산 불황기에는 여러 번 유찰을 거듭하기 때문에 물건 수는 꾸준히 늘어난다.

또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가 10%를 넘고, 세계 금융위기로 실물 경기와 심리가 동시에 얼어붙은 상황을 고려하면 경매 물건 증가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낙찰가율도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강남 고가 주택을 중심으로 하락하던 집값이 서울 전체로 번지면서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이 79%로 내려갔다.

5월부터 7월까지 90%대를 웃돌다 8월 83%로 떨어지더니 9월에는 이마저 무너진 것이다. MB정부의 뉴타운·재개발 의지로 인기를 지켜오던 연립·다세대 낙찰가율도 줄곧 넘겨오던 100%를 버티지 못하고 9월 평균 96%로 낮아졌다. 버블세븐 지역이 하락을 견인했다. 분당구 수내동 푸른마을 아파트 전용면적 176.8㎡는 감정가 13억원이었으나 3회 연속 응찰자가 없어 유찰되다가 4회차 경매(9월 8일) 때 7억8156만원에 낙찰됐다.

감정가 대비 60% 선에 새 주인을 찾은 셈이다.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전용 165㎡는 감정가 28억원에서 9억가량 떨어진 19억3600만원에 9월 11일 낙찰됐다. 지지옥션의 조사 결과 9월 평균 강남 3구의 아파트는 감정가의 74%에 낙찰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경매 사상 최저치인 것으로 나타났다. 감정가 2억원 이하 소형 아파트 인기도 시들하다.

경매시장에 나오는 소형 아파트는 가격이 싼 편이라 실수요자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어왔다. 낙찰가율이 120% 이상일 정도였다. 하지만 현재 서울 및 수도권 지역 소형 아파트 시장도 싸늘하다. 지지옥션 조사에 따르면 서울 지역의 2억원 이하 아파트 낙찰가율은 지난 5월 124.7%에서 지난달에는 10.2%포인트 떨어졌다. 평균 응찰자도 14.2명에서 5.3명으로 줄었다. 수도권 5월 낙찰가율이 110.5%에서 지난달에는 105%로 빠졌다. 평균 응찰자도 11.3명에서 6.4명으로 줄었다.

지금은 환금성 제일 중요하다

정부가 연이어 감세·전매제한 등 완화 정책과 도심 재개발, 뉴타운 추가 지정, 그린벨트 해제 등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될 만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미분양 물량 적체에 메가톤급 국제 금융위기로 환율이 오르고, 금리도 상승하면서 경매시장에서조차 선뜻 부동산을 구입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부동산 투자는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무리한 투자는 금물이다. 실수요자도 대출 비율을 자기자본비율과 비교해 최소화해야 하며, 향후 금리 상승에 따른 상환 가능성을 미리 따져보고 구입하는 보수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또한 가급적 급할 때 환금이 잘 될 만한 지역과 종류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