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차원 방정식 같은 세제 … 선진국은 국가적으로 단순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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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가 급속하게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국내 경기도 빠르게 냉각되고 있다. 정부는 내수경기를 진작하기 위해 전반적인 감세정책을 추진하면서 각종 세율을 이미 인하 또는 조만간 내릴 예정이다.
일정소득 이하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연간 최대 24만원까지 유가를 환급해주며, 그 예산으로 약 3조2000억원이 든다.
정부는 약 2000억원의 예산을 배정해 1t 이하 화물차 약 190만 대에 대해 연간 10만원 한도 내에서 유류세를 환급해줄 계획이다. 이 외에도 정부는 근로빈곤층을 위해 근로장려세제를 도입해 2008년도 소득분부터 적용하고 이에 대해 2009년 9월까지 환급해줄 예정이다.
하루하루 경기침체를 피부로 느끼는 서민들은 정부가 연일 쏟아내는 각종 감세 및 환급정책의 혜택을 과연 나도 적용 받을 수 있는지, 받으면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등 궁금하기 짝이 없다.
반면 최근에 종합부동산세제도 일부 위헌 판결이 나면서 강남의 세무서는 고가 부동산을 소유한 종부세 납세대상인 납세자들의 전화와 방문 문의로 큰 혼잡을 이루고 있다. 세금으로 인한 혼란이 비단 서민의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세금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인식은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는 것이다. 세금의 종류가 국세 14개, 지방세 16개로 전부 30개나 된다. 소득세의 경우 세법에서 정의하는 소득의 종류가 근로소득, 사업소득, 이자소득, 배당소득 등 9종류나 된다. 정부가 1996년부터 자진신고로 전환함에 따라 납세자들은 필요한 증빙서류를 구비해 세금신고를 해야 하는데, 봉급생활자의 근로소득세만 하더라도 총 급여액에서 비과세소득을 차감한 후 급여액을 구하고, 여기다 다시 근로소득공제를 적용해 근로소득금액을 산출한다.
복잡한 세금은 사회적 낭비
여기에 다시 기본공제·추가공제·다자녀추가공제·출산입양공제 등 네 가지의 인적공제가 있고, 보험료공제·교육비공제·의료비공제·주택자금공제·기부금공제·결혼이사비용공제·표준공제 등 7개의 특별공제가 있다. 이 외에도 조세특례제한법상 신용카드 사용금액에 대한 소득공제, 연금저축소득공제 등 다양한 공제제도가 있다.
이를 모두 적용한 후 과세표준을 구해 세율을 곱하면 산출세액이 나온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산출세액에 다시 근로소득세액공제를 적용해야 비로소 납세자가 최종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결정세액을 구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 바쁜 서민에게는 내가 내야 할 세금을 계산하는 것이 마치 고차원의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어렵기만 하다.
납세자들은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 필요한 증빙서류를 갖춰야 한다. 자기에게 해당하는 세법규정을 적용 받으려면 해마다 개정되는 세법과 조세행정 절차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일상생활에 바쁜 서민들이 이처럼 복잡다기한 세제를 다 이해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세법 규정을 찾아 적용 받을 수 있을까?
또 이해했다고 해도 이를 적용 받기 위해서는 증빙서류를 갖추어야 하는 등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부분 자영업자는 세금 문제로 골치를 앓느니 차라리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세무사, 공인회계사 등 세무 대리인에게 위탁하고 만다. 조세의 단순성(Simplicity)은 효율성·형평성·유연성과 더불어 이상적인 조세가 갖춰야 할 중요한 요건 중 하나다.
조세의 단순성은 법적 단순성(Legal Simplicity), 경제적 단순성(Economic Simplicity)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세법이 납세자가 얼마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술되어 있느냐의 문제다. 후자는 납세자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납세순응비용(Compliance Cost)보다 광의의 개념으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총비용으로 세제 운용비용(Operating Cost)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세금의 효율성·형평성과 관련한 논쟁에만 집착하고 납세자를 위해 조세를 보다 단순화하려는 노력은 최근까지 등한시한 것이 사실이다.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세제와 세무행정을 가능한 한 단순화해 개별 납세자들의 납세순응비용 최소화를 위해 여야를 떠나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이유는 개별 납세자의 납세순응비용을 모두 합하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되며, 정부가 세제를 단순화해 세금을 납부하는 데 소모하는 시간과 스트레스를 절감해주기 위함이다. 이런 비용을 보다 생산적인 활동에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며 무엇보다 세금을 내는 주인인 납세자의 복리후생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납세자가 세금을 납부하는 데 드는 비용을 추정한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그 비용이 천문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샌퍼드(Sanford)라는 학자가 영국의 소득세, 자본이득세, 국민보험을 운영하기 위한 행정비용 및 납세순응비용을 추정한 결과 세수의 약 4.9%가 조세 운영비용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가가치세의 경우는 행정비용이 세수의 약 1.03%, 납세순응비용이 약 3.69%인 것으로 나타났다. 벨랑쿠르(Vaillancourt)라는 학자가 캐나다의 소득세 운용비용을 추정한 결과 납세자들은 평균 약 122.5달러를 소득세 납세순응비용으로 지출한다. 이를 전체 납세자로 환산한 결과 약 19억500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세와 사회보장기여금의 운영비용은 세수의 7.1%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학자가 미국의 조세 운영비용을 추정한 결과, 미국 납세자들은 1인당 연평균 약 27시간을 연방 및 주 개인소득세를 납부하기 위해 쓰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국민 전체로 환산할 경우 시간의 가치는 약 420억 달러, 세무대리인에게 지불하는 비용은 80억 달러 등 전체적으로 약 500억 달러(환율을 1달러당 1000원으로 가정하더라도 한화로 약 50조원)가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제 개혁의 핵심은 ‘단순화’
연구 결과에서 보듯이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세제를 단순화해 납세자들의 납세순응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국은 총리의 제안으로 1996년부터 TLRP(Tax Law Rewrite Project)를 추진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영국의 중요한 직접세인 소득세, 법인세, 자본이득세, 상속세 등을 납세자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개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매년 40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팀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연간 약 500만 파운드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호주의 경우 1994년부터 TLIP(Tax Law Improvement Project)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납세자들의 세법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 보다 읽기 쉬운 표현으로 개편하는 것을 목적으로 출발했다.
1999년까지 6년간 약 40명의 전문가와 매년 1000만 호주달러를 투입해 진행했다. 미국은 1986년 레이건 행정부 때 근본적인 세제개혁을 단행했는데, 그 핵심 이념은 납세자를 위해 세제를 단순화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도 국민이 세금을 납부하는 데 더 이상 골치 아파하지 않도록 세제를 쉽고 단순화하는 작업을 국가적 과업으로 시작할 때다. 대한민국 국민인 납세자가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세제를 만드는 것은 세금의 주인인 국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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