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기사모음

친구를 보면 그 단백질이 보인다

도일 남건욱 2009. 2. 10. 13:08

친구를 보면 그 단백질이 보인다
세포막수용체연구단 이지오 교수

이지오 세포막수용체연구단장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60조 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 세포는 세포막으로 둘러싸여 안전하게 보호된다. 세포막에는 세포와 세포, 세포와 외부를 연결하는 다양한 수용체 단백질이 존재한다. 인슐린과 같은 호르몬도 인슐린 수용체와 결합해 세포 속으로 신호를 전달한다.

우리 몸의 생명현상을 조절하는데 중요한 세포막 수용체는 신약 개발자의 주된 연구대상이다. 이상이 생긴 세포에 필요한 물질을 전달하거나 적절한 신호를 보내기 위해 수용체의 기능을 조절하려는 것이다. 최근 출시된 의약품의 절반 이상이 수용체를 이용한다. 수용체의 구조를 정확히 알고 의약 물질과 반응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면 신약 개발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KAIST 화학과 이지오 교수가 이끄는 세포막수용체연구단은 수용체의 구조를 규명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 이 분야의 세계적인 연구그룹으로 인정받고 있다.


불가능에 도전하다

단백질 결정에 강한 X선을 쬐여 3차원 구조를 볼 수 있는 장치.
단백질의 구조를 보려면 주로 X선을 사용한다. 단백질 결정에 X선을 쬐여 반사된 정도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도 같은 방법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단백질을 용액에 녹여 결정을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데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도를 거쳐 결정 만드는 방법을 발견했지만 여전히 원리는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세포막 수용체는 결정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졌다. 세포를 보호하는 세포막에 붙어있어 물에 잘 녹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결정을 만들려면 많은 양의 단백질이 필요하지만 수용체 단백질은 생산조차 어려웠다. 수용체의 구조를 알지 못하니 작동 메커니즘 역시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수용체 중 면역활동을 주도하는 ‘톨유사수용체(TLR)’를 연구하던 이지오 교수 역시 같은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TLR은 어떤 형태의 병원체든 발견하는 즉시 다른 면역세포를 불러 함께 제거하는 단백질이다. 병원체를 이루는 필수성분 중 일부를 TLR이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술환자나 노약자와 같이 면역조절능력이 약해진 사람에게 TLR의 활동은 독이 되기도 한다. 면역활동이 멈추지 않아 우리 몸의 세포까지 병원체로 인식하는 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패혈증이다. 사망률이 40%를 넘는 패혈증은 중환자실에서 심장마비 다음으로 많이 나타난다. 아직까지 마땅한 치료제도 개발되지 않았다.


실패 속에 찾은 돌파구

연구단은 결정을 쉽게 이루는 VLR 단백질(붉은색)에 결정을 만들기 어려운 TLR 단백질을 결합해 결정을 만드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연구단은 2003년부터 TLR의 3차원 구조를 밝히는 연구를 시작했다. 5년간 갖은 방법을 썼지만 TLR 결정을 만들 수 없었다. 서서히 지쳐갈 무렵 TLR과 단백질의 기본단위인 아미노산 서열이 비슷한 ‘VLR’ 단백질이 쉽게 결정을 이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교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아미노산 서열이 동일한 부분을 찾아 TLR과 VLR을 붙여보자는 것이다. VLR이 결정을 잘 이뤘으니 TLR을 결합한 융합단백질의 결정도 얻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성공이었다. 만들어진 융합단백질의 결정은 X선 촬영을 거쳐 TLR의 3차원 구조를 밝히는 성과로 이어졌다. 연구단은 2007년 2개의 TLR의 3차원 구조를 밝히는 데 성공했다. 패혈증을 일으키는 주요 TLR로 주목받던 ‘TLR4-MD-2’와 ‘TLR1-TLR2’였다.

TLR4의 구조가 밝혀지면서 패혈증을 억제하는 약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치료제가 잘 반응하도록 TLR2를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렸다. 연구단은 이 기술에 ‘단백질 하이브리드기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연구결과는 생명과학 분야의 최고 권위지인 ‘셀’ 2007년 9월호에 연달아 게재돼 세계를 놀라게 했다.


난치병 치료제로 활용

최근 패혈증 사망자는 급증해 미국에서만 해마다 2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외신은 패혈증 관련 시장이 2010년에 30억 규모가 될 거라고 예상한다. 연구단은 앞으로 패혈증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규명해 패혈증 치료제 개발에 앞장설 예정이다.

연구단은 다른 TLR에 대한 구조를 밝히는 연구도 계획하고 있다. TLR뿐 아니라 세포막 수용체 전체에 대한 구조연구도 진행할 예정이다.

세포막 수용체의 구조를 모두 밝힌다면 세포와 외부환경의 상호작용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지금까지 구조 규명이 어려웠던 거대 단백질 복합체의 구조를 밝히는데도 활용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질환에 대한 신약의 개발도 빨라질 것이다. 특히 원천기술을 갖춘 우리나라의 제약산업이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이지오 교수 약력

1983년~1987년 서울대학교 화학과 학사
1987년~1989년 서울대학교 화학과 석사
1990년~1995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생화학 박사
1996년~2000년 미국 슬로언캐터링암센터 박사후연구원
2000년~2001년 미국 볼티모어 메릴랜드대학교 교수
2002년~현재 KAIST 화학과 교수
2008년~현재 세포막수용체 창의연구단장


세포막수용체연구단은?

세포막수용체연구단
세포막수용체연구단은 세포와 외부환경을 연결하는 세포막 수용체의 구조를 연구하고 있다. 결정을 쉽게 이루는 단백질에 결정을 만들기 어려운 단백질을 융합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세포막 수용체의 구조를 규명하고 있다.

연구단은 박사후연구원 1명, 박사과정 5명, 석사과정 4명, 사무원 1명으로 구성돼 있다. 연구교수와 함께 박사후연구원도 여럿 있는 다른 창의연구단에 비해 작은 규모다. 단장인 이지오 교수가 “잘 훈련된 소수의 학생들과 함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배 집단이 부족하기에 이 교수는 학생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그때마다 “열심보다 더 많이 생각하라”고 강조한다. 시키는 연구만 하지 말고 자신만의 연구를 구상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은 도전적인 일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결과가 예상되는 안전한 연구만 해서는 세계와 경쟁할 수 없어요.”

5년의 노력 끝에 세계를 놀라게 한 세포막수용체연구단. 실패를 두려워 않는 그들의 과감한 도전은 새로운 결실로 또 한 번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글/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2009년 02월 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