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수출국 한국 방폐장 논란 끝내야 … 경주 대표기업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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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방사성 폐기물은 괴물처럼 여겨진다. 방사능 물질에서 무시무시한 방사선이 뿜어져 나와 인체에 해를 끼친다는 이미지는 강렬했다.
1978년 고리 원전 1호기가 첫 가동을 시작한 지 8년 후부터 이 폐기물을 처분해 관리할 부지를 선정하는 작업이 20년을 끌었던 이유다. 굴업도, 안면도, 울진, 부안 등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이하 방폐장) 후보지가 발표될 때마다 일이 터졌다.
정부는 밀어붙이고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는 결사 반대했기 때문이다. 20년간 아홉 차례나 무산됐던 방폐장 선정은 정부가 상대적으로 방사능 오염도가 낮은 중저준위 폐기물만 저장한다는 원칙을 정하고 나서야 해결됐다. 산통 끝에 2005년 투표를 통해 지역 주민 90%가 찬성한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일대가 방폐장 부지로 선정됐다. 공사는 2007년 착공됐다.
2014년 본사 경주로 이주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이하 방폐물공단)은 경주 방폐장 건설은 물론 방사성 폐기물을 전문적으로 관리할 목적으로 지난해 1월 1일 설립됐다. 부지가 결정되고 이를 관리할 준정부기관이 세워졌지만 이후에도 방폐장 사업은 한 걸음을 내딛는 게 쉽지 않았다.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됐다.
특히 지난해 공단이 방폐장 진입동굴을 굴착하는 과정에서 암반등급이 예상보다 낮아 보강을 위해 공사기간을 30개월 연장한다고 발표하자, 일부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이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며 공사 중단과 추가 지질 조사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진상을 밝히기 위해 대한지질학회에 조사를 의뢰했다.
결과는 “안전성에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직접 조사를 하겠다고 요구했다. 정부와 방폐물공단은 이를 받아들였다. 결국 지난 11일 지역주민이 선정한 전문가로 구성된 ‘방폐장 안전성 검증조사단’은 “방폐장 안전성은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오랜 논란이 일단락되는 날이었다.
지난 17일 만난 민계홍 방폐물공단 이사장은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민 이사장은 “원자력 발전을 수출하는 한국이 방사성 폐기물을 관리할 곳 하나 없다는 것은 문제였다”며 “이제 안전성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을 멈추고 방폐장이 잘 될 수 있는 방향의 논의가 돼야 할 때”라고 밝혔다.
>> 경주 방폐장 공사는 얼마나 진척됐나.
“현재 총 80만 드럼 중 1단계 10만 드럼을 저장할 수 있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2012년 말 준공 예정이다. 종합 공정률은 2월 말 현재 64%다. 지상시설은 대부분 완공된 상태고, 방폐물을 처분하는 지하시설 공사가 늦어지고 있다.”
>> 공사 기간이 연장되면서 지역 주민이 불안해 한 것도 이해가 된다.
“지역 주민의 우려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전성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공사기간을 연장한 것은 방폐장을 더욱 안전하게 건설하기 위한 조치다. 암반 문제는 지하통로 역할을 하는 터널공사의 안전성을 확보해 시공을 원활히 하려는 것이지 방사성 폐기물의 처분 안전성과는 관련이 없다. 안심해도 된다.”
민계홍 이사장은 “공단 임직원 모두 2014년 경주로 이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방폐장에 대해 잘 아는 공단 직원들이 안전하지 않다면 가겠느냐”며 “방폐물공단은 경주 기업으로 활동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단 측은 최근 정관을 변경해 경주로 이주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방폐장은 기피시설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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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실시한 정부 조사단 결과에 이어 이번 조사 결과도 부지선정은 적합했고, 종합적으로 안전한 시공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공단은 무엇보다 지역공동협의회의 조사 결과를 존중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앞으로도 지역 주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
정부나 공단 입장에서 민간 주도의 조사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진상 조사한 결과를 검증 또는 감사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단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신뢰가 중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민 이사장의 설명이다.
지난해 8월. 경주지역 시의회와 방폐장 인근 주민들로 구성된 ‘방폐장 현안사항 해결을 위한 지역공동협의회’가 구성됐다. 지역협의회는 지질구조, 수리지질, 지진공학, 터널공학, 원자력공학 등 5개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안전성 검증조사단’을 구성했다. 조사는 11월 11일부터 4개월간 이뤄졌다.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부지선정은 적합하다. 처분고 시공 및 방폐장 안전성에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진에 대비한 설계도 대체로 적절하다. 다만 지하수 흐름과 관련해 해수 침투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암질이 좋지 않은 일부 처분고는 신뢰성 있는 조사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
엄 이사장은 이에 대해 “민간 검증조사 결과 제시된 제언과 권고 사항도 적극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라며 “무엇보다 이번 조사가 공정하게 이뤄진 것에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다.
>> 방폐장 인근 지역 발전을 위한 선물 꾸러미가 많이 필요할 것 같다.
“3월 중에 경주시 성동동에 경주사무소를 개소한다. 지역공동협의회 활동을 지원하고 4년 후 있을 본사 이전을 준비할 목적이다. 공단 임직원들도 다음 달에 사회봉사단을 창단해 지역사회 공헌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우리 공단이 경주지역의 대표 기업이며 경주의 동반자라는 것을 적극 알리고 실천하겠다.”
>> 구체적인 계획은.
“우선 지역 일자리 창출을 위해 신입 직원 채용 때 경주시 방폐장 지역 주민은 가산점을 주고, 채용 인원의 20% 정도를 유치지역 주민 가운데 선발할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신입사원 중 11명이 지역 주민이었다. 올해는 총 53명을 채용할 계획인데 역시 20% 정도는 지역 주민을 채용하게 될 것이다.
본사가 경주로 내려오면 더욱 높은 고용 창출도 기대된다. 아울러 지역 지원 사업도 본격적으로 할 계획이다. 지역 내 다문화가정 지원, 영어캠프 및 학교 시설 지원 등 교육사업은 물론이고 환경사업, 농수산 진흥사업 등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 아무리 안전성이 확보된다고 해도, 방폐장은 기피시설로 여겨진다. 대안이 있나.
“방폐장 부지 일부에 약 300억원을 투입해 친환경단지 조성 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역주민뿐 아니라 관광객이 찾아올 수 있는 친환경 명소로 만든다는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숲 체험 학습장과 빛을 테마로 한 빛테마공원, 방문자센터 등이 들어선다. 향후 건립 예정인 에너지 박물관이나 방폐장 옆에 있는 문무대왕 수중릉과 연계해 관광벨트화할 경우 경주 지역 관광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안전성 논란, 국가 이미지에 도움 안 돼
>> 공단 출범 2년차인데, 소감은.
“방폐물 처분장 부지 선정에만 19년이 걸렸다. 그만큼 어려운 사업이다. 아흔아홉 가지를 잘해도 하나만 실수해도 안 되는 만큼 중압감이 컸다. 과거와 같은 국력 낭비가 다시는 없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지난 한 해 동안 국제 수준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갖춘 기관으로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혼신을 기울였다. 경영 체계나 기술 축적 등에서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한다.”
>> 지난해 말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수출하면서 한국이 원전 강국으로 부상했지만 상대적으로 방폐물 처리 관련 기술은 부족한 것 아닌가.
“방폐물 처분장 운영 시점만 보면, 원전 선진국보다 20~30년 늦은 셈이다. 방폐물 처리 기술 역시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 기술에 비하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해외와 비교해 우리 기술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족한 부분은 기술 선도국과의 협력을 통해 보완해 나가고 있다.”
>> 원전 수출 때 방폐물 관리 기술도 함께 수출할 방안도 마련 중인가.
“그렇다. 우리 공단은 국제적 수준의 방폐물 관리 기술 개발을 목표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원전과 해외 동반 진출을 추진하고자 한다. 많은 나라가 원전 도입을 추진 중인데, 이들 국가에서 방폐물 관리 기술 확보는 필수적이다. 패키지로 나갈 수 있다고 본다. 다행히 우리나라가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방폐장 사업을 추진하면서 여러 나라에서 한국의 사례를 공부하고 있다. 실제로 대만,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 중저준위 폐기물 외에 요즘 사용후핵연료(용어설명) 재활용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공단은 어떤 입장을 갖고 있나.
“현재 31개 원전 운영국 중 10여 개 국가만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을 확정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방안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다. 분명한 것은 사용후핵연료는 앞으로 자원으로 활용할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에 직접 처분해 폐기하기보다는 일정 기간 중간 저장 방식을 통해 관리하는 등 재활용 가능성을 염두에 둬 생각해볼 문제다.
현재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안에 대한 전문가 용역을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단기, 중장기 관리 대안을 도출하고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위한 로드맵을 개발할 계획이다.”
>> 안전성 논란이 재발할 가능성은 없나.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여러 원자력 선진국에서 30~50년 이상 안전하게 운영돼온 시설이다. 방사성 폐기물이 안전하게 처리돼야 한다는 것에 이견이 있을 수는 없다. 우리나라도 지난 30년간 원전 내의 임시 저장고에서 안전하게 보관되어 왔지만, 더 안전하고 영구적인 처분을 위해 방폐장을 건설하는 것이다. 일각에서 자꾸 정치적으로 접근하려고 하는데, 국가 이미지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민계홍 이사장은 “세계에서 5개국뿐인 원전 수출국에서 중저준위 방폐장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만 되풀이된다면 면목이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UAE 원전 수주 때 경쟁했던 프랑스의 외교 기관이나 언론이 한국의 원전 관련 기사를 모두 번역해 본국으로 보낸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방폐장 안전성을 자꾸 문제 삼는 기사가 나가면 경쟁국에 호재일 뿐”이라고 말했다.
용어설명
사용후핵연료 원자력발전소의 발전 연료로 사용하고 남은 우라늄 등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말한다. 사용후핵연료는 재처리하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과 1974년 원자력협정을 체결해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통제해 왔다. 한국은 이 협정을 준수했다. 하지만 2014년 협정 만료 시한이 다가오면서 정부는 협정 개정안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재처리를 허용하는 조항을 삽입하려고 한다.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 수용능력이 포화 상태로 가고 있고 사용후핵연료는 산업적 활용도가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사용후핵연료는 울진, 월성, 고리, 영광 4개 원자력발전소 단지 내에 1만800t이 저장돼 있다. 연간 발생량은 700t. 2016년이면 저장시설이 꽉 차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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