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이 수도 민영화 계획을 마련한 건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 시절이었다. 만델라는 "민영화는 우리 정부 정책의 기초다, 원한다면 나를 대처주의자라고 불러도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IMF)가 요구한 신자유주의 개혁을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명분으로 순진하게 받아들였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 결과는 어땠나. 수도요금이 한 달 생활비에 맞먹을 정도 뛰어올랐고 사람들은 다시 호수에서 물을 길어다 먹기 시작했다. 그 결과 콜레라가 창궐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물 도둑을 막으려고 일부러 물을 한 방울씩 떨어지도록 해서 물 한 잔을 받으려면 15분을 기다려야 하는 곳도 있었고 아예 선불제 시스템을 도입한 곳도 있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IMF가 1억달러를 대출해주는 조건으로 수도 민영화를 요구했다. 프랑스의 쉬에즈와 베올리아 컨소시엄이 수도 사업을 넘겨받았는데 수도 요금을 두 배 이상 올리고도 엄청난 적자를 냈고 결국 정부에 손을 벌렸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수도가 공급됐지만 엄청난 비용 부담은 국민들이 떠안아야 했다.
수도회사가 돈을 벌려면 수도요금을 올리거나 정화시설에 들어가는 비용을 낮춰야 한다. 실제로 아르헨티나 베라자테구이에서는 수도회사가 당초 약속했던 하수처리 시설을 건립하지 않아 라플라타강이 심각하게 오염됐다. 이 회사는 덕분에 하루 10만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과연 이걸 민영화 성공 사례라고 부를 수 있을까.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세계은행이 6억달러의 부채 탕감을 조건으로 수도 민영화를 요구했다. 아과스델투나리라는 회사가 수도 사업을 독점하면서 우물을 파거나 심지어 빗물을 받는 것까지 법으로 금지시켰다. 이 회사는 심지어 물 값을 달러화와 연동시켰고 환율에 따라 수도 요금이 2배, 3배로 뛰어올랐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랬지만 IMF는 자금 지원을 대가로 금융과 수도, 교통, 은행, 교육, 보건·의료, 우편, 통신 등등의 시장 개방을 요구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당초 약속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금 지원이 끊기기도 했다. 이렇게 팔려나간 공공부문은 대부분 선진국의 다국적 기업들에게 넘어가게 된다.
오스트리아의 반 세계화 활동가인 미헬 라이몬과 크리스티안 펠버가 쓴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는 지난 20여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던 민영화 프로젝트의 실상을 파헤친 교과서 같은 책이다. 이들은 '대안은 없다(TINA, There is no alternative)'고 말하는 신자유주의자들에게 '대안은 있다'고 말한다.
흔히 민영화 초기에는 인력과 설비 감축의 효과에 경쟁이 가열되면서 가격이 낮아지고 서비스도 개선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쟁 업체들이 도태되고 과점 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담합을 하고 가격이 뛰기 시작된다. 이때는 경쟁의 효율이 사라지면서 공급도 불안정해지지만 정부의 통제가 먹히지 않는 상황이 된다.
영국이 민영화한 철도를 다시 공영화했던 건 철도회사들이 인력을 감축하고 유지·보수 비용을 절감하면서 열차 사고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국영 기업이던 시절보다 효율이 떨어졌고 서비스도 엉망이 됐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적자가 불어났고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신세가 됐는데도 주주들은 염치없이 배당을 챙겨갔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정전 사태도 비슷한 사례다. 전력 민영화 이후 도매가격을 끌어올리면서 소매 업체들이 잇따라 도산했고 정부가 여기에 엄청난 보조금을 쏟아 부어야 했다. 물론 소매가격도 크게 뛰어올랐다. 전기회사들은 심지어 전략적으로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비슷한 일이 미국과 유럽연합 여러 나라들에서 벌어졌다.
미국에서는 의사가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환자에게 치료를 거부하는 사례가 흔하다. 병원마다 협약된 보험이 달라서 응급 환자를 도시 반대편까지 실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의료 민영화 이후 병원은 영리기업으로 변질됐고 의사들은 보험회사가 지급을 확인해 주지 않는 이상 꼭 필요한 응급 조치조차할 수 없게 됐다.
공적 연금이 채우지 못한 부분을 개인연금이나 기업연금으로 채울 수 있을까. 2001년 미국의 7대 기업인 엔론이 파산했을 때 엔론 노동자들은 12억달러의 기업 연금을 고스란히 날렸다. 4200만명의 미국인들이 401K라고 부르는 기업연금에 2조달러를 투자하고 있는데 이들의 미래는 금융시장의 등락에 따라 대박과 쪽박으로 갈리게 된다.
영국의 연금과 기금은 자산의 80%를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는데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큰 손실을 입었다. 일본 생명보험회사들도 1980년대 말 3만포인트까지 올랐던 닛케이 지수가 1만포인트까지 추락하면서 당초 15%의 수익률을 약속했으나 3% 밖에 지급하지 못하게 됐다. 금융시장에 미래를 의존하는 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수익률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독일의 경제학자 크리스티안 크리스텐은 "금융시장에서는 경제 성장률 수준의 수익률만 기대할 수 있다"면서 "높은 휘발성과 극심한 위기 취약성, 부패, 스캔들, 파산을 특징으로 하는 금융시장을 국가가 조직한 노후 보장과 대조적으로 파고에 견딜 수 있는 반석으로 주장하는 건 참으로 역설적"이라고 지적한다.
"노동자가 주주나 금리 생활자가 되려 하면 제 살을 많이 깎아야 한다. 내 이익을 위해 내가 다니는 회사의 주가가 상승하도록 나 자신은 해고되는 상황이다. ... 주식으로 대중이 부자가 된 적은 없고 언제나 몇몇 소수가 어리석은 대중의 도움을 받아 부자가 됐을 뿐이다. 연금은 더이상 민영화돼서는 안 된다."
미국에서는 민영 교도소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 가운데 한 곳에서 폭동이 일어나 교도관이 칼에 찔려 죽는 사건이 벌어졌다. 수감자들을 하루 43달러의 비용으로 가두고 먹여 살리겠다고 사업 계획을 제출했던 이 교도소는 교도관을 절반으로 줄여 수익을 내왔다. 교도관들의 임금은 맥도널드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당보다 적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난민 수용소를 민영화했다. 악명 높은 우메리 수용소는 비자 없이 입국하려는 사람들을 체포해 수용하고 고문과 성폭행, 온갖 학대를 자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 정도로 열악하지는 않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유러피언홈케어라는 회사가 망명 신청자들을 위한 수용소를 운영하면서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군대까지 민영화했다. 전직 군인들이 설립한 딘코프라는 회사는 이라크에서 특수 임무를 수행했다. 폴 롬바르디 사장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우리 없이도 싸울 수는 있다. 하지만 힘이 들 것이다." 이 회사 소속 군인들은 콜롬비아에 파병돼 마약 밀매상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사망자들은 사고 당한 관광객으로 위장돼 미국으로 돌아왔다.
일련의 사례들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공공부문의 자연독점을 해체해서 영리적 목적의 민간기업에 나눠주는 건 당장 효율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소수 공급자 중심의 민간 과점 체제로 전환되기 마련이고 가격이 뛰고 공급이 불안정하게 되고 서비스도 열악해 지게 된다. 공공성 역시 크게 후퇴될 수밖에 없다.
민영화를 통해 얻는 게 뭔지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여러 사례들이 일관되게 증명하지만 정부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일회적일 뿐만 아니라 막연한 미래 가치인 경우도 있고 국민들이 비용을 부담하는 동안 이윤은 모두 소수의 소유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국가 소유로 남겨둬서는 안될 이유가 어디에 있나. 인천국제공항의 사례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정부가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효율로 모든 걸 따질 수는 없다. 민간 수도회사는 수질을 적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데 관심이 없다. 민간 전기회사는 여름철 폭증하는 전력수요를 대비해 굳이 설비투자를 여유있게 가져갈 이유가 없다. 민간 보험회사들의 최대 관심은 가입자들의 편안한 노후가 아니라 오로지 이윤이다.
무엇보다도 민영화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민영화는 가난한 사람들의 몫을 빼앗아 부자들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민영화가 되면 농촌 지역부터 전기와 수도가 끊기게 된다. 이건희 같은 사람은 의료 민영화가 되거나 말거나 상관없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병원 문턱조차 밟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시간이 있으면 우리나라의 사례를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한국통신과 한국전력, 철도공사 등이 민영화됐고 의료와 수도 민영화가 진행 중이다. 정부 소유 은행이었던 외환은행이 매물로 떠돌고 있고 우리은행과 산업은행 민영화도 진행 중이다. 국민연금을 축소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고 재벌의 자금줄인 생명보험회사들은 계속해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민영화 그 재앙의 기록) / 미헬 라이몬·크리스티안 펠버 지음 / 김호균 옮김 / 시대의창 펴냄 / 1만6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