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울진 주민 1만6000명에 방호복 500벌·방독면 2700개뿐

도일 남건욱 2011. 3. 22. 20:37

울진 주민 1만6000명에 방호복 500벌·방독면 2700개뿐
‘원전사고 매뉴얼’ 사고땐 속수무책
한겨레 김광수 기자기자블로그 정대하 기자 메일보내기 박주희 기자기자블로그
» 원전 위치
현재 원자력발전소 21기가 가동중인 부산 기장군, 경북 경주시·울진군, 전남 영광군 등 지방자치단체 4곳의 방사능 사고 대비 매뉴얼을 입수해 실제 매뉴얼 운영 상황을 살펴본 결과는, 우리 정부가 내세우는 ‘원전 강국’이란 화려한 수식어와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인다.

방사능 감시망 허술…지자체 3곳중 1곳꼴 감시기 가동

원전 사고가 났을 때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얼마나 누출됐는지를 측정기로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장소는 4개 자치단체 원전 주변에 10~20곳씩 있지만, 대부분 원전으로부터 반경 8~10㎞ 이내인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에 있다.

부산 기장군에는 방사능 측정소가 12곳이 있는데, 11곳이 고리 원전에서 3㎞ 안에 있다. 경북 경주시의 측정소 8곳은 월성 원전에서 2㎞ 안에 집중돼 있다. 영광군의 측정소 13곳 가운데 9곳이 원전에서 10㎞ 안에 있다. 원전 바로 인근 지역에는 방사능 누출 감시망이 그나마 촘촘한 편이지만, 8~10㎞ 밖은 방사능 감시망이 매우 허술하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주요 지점 70곳에 감시기를 달아 방사능 농도를 측정하고 있지만, 전국 기초자치단체가 228곳에 이르는 것을 고려하면 시·군·구 3곳 가운데 1곳꼴로 감시 장비가 가동되는 셈이다. 방사능이 빠른 기류를 타고 순식간에 퍼지면, 주민들이 어느 쪽으로 대피해야 할지부터 혼란을 일으켜 피해를 키울 수 있는 대목이다.

안전장비 구입 인색…경주·울진 작년 보호장비구입 ‘0’

원전이 있는 자치단체들은 새 원전이 들어설 때 1000억~2000억원의 지원금을 받는 것과 별도로, 해마다 국가와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100억~200억원씩을 지원받는다. 하지만 이들 자치단체가 원전 사고 때 꼭 필요한 안전장비를 갖추는 데는 매우 인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원전 지원금으로 각각 96억원, 165억원을 받았던 경주시와 울진군은 원전과 관련한 장비 구입 등엔 예산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지난해 267억원의 원전 지원금을 받았던 영광군은 원전 사고 대비 장비 구입에 겨우 5000만원만을 썼다. 4개 자치단체의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안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보호장비들은 턱없이 부족하다. 원전 6기가 가동중인 울진에선 비상계획구역 안에 1만6000여명이 살지만 방호복은 겨우 500벌, 방독면은 2700개가 있을 뿐이다. 방호복은 확보율이 20%도 안 된다. 방독면은 경북 경주시만 비상계획구역 안 주민 수보다 많은 1만1000여개를 갖췄을 뿐, 나머지 3개 자치단체의 확보율이 16.7~25.6%에 그친다.

‘대피 못할’ 대피소…영광 19곳 모두 내진설계 안돼

원전 사고가 나면 비상계획구역 주민들은 중간 집결지에서 만나 차량으로 20분~1시간 떨어진 대피소로 가야 한다. 하지만 대피소로 지정된 초·중·고교의 건물 대부분은 지진에 버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건물이 아니다. 영광 원전 인근 대피소 19곳 가운데 내진 설계가 된 곳은 한 곳도 없다. 나머지 3개 자치단체 실무 부서는 대피소가 내진 설계돼 있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광주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지난 10년 동안 규모 5에 가까운 강진 두차례를 비롯해 광주·전남지역에서는 58차례의 크고 작은 지진이 관측됐고 지진의 빈도도 증가하는 추세”라며 “결코 영광원전도 지진 같은 요인에 의한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피훈련은 형식적…월성 주민 “20년간 훈련 실시 몰라”원전이 있는 자치단체에선 원전 사업자와 함께 4년마다 1차례 ‘합동훈련’을 해야 하고, 교과부는 5년마다 자치단체와 함께 ‘연합훈련’을 벌여야 한다. 영광군은 1986년부터 지난해까지 24년 동안 합동훈련은 9차례 벌였고 연합훈련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기장군은 2000년 이후 합동훈련만 4차례 했을 뿐이다.

매우 드물게 벌이는 훈련조차 평일 낮 시간대에 벌여, 노인과 학생을 중심으로 100~200명씩 참여하는 실정이다. 울진군은 1989년부터 지난해까지 7차례 합동훈련을 했으나, 평균 참여 인원은 181명에 그쳤다. 경주시 양남면 월성 원전 근처 주민은 “20여년 동안 이곳에서 살았으나 원전 사고에 대비한 훈련을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부산 광주 대구/김광수 정대하 박주희 기자 k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