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미래 원전기술로 1만 년 쓸 에너지 만들겠다”

도일 남건욱 2011. 12. 12. 12:05

“미래 원전기술로 1만 년 쓸 에너지 만들겠다”

[창간 3주년 기획, 출연연 맏형들이 전하는 R&D 현장]
<11> 박성원 한국원자력연구원 전략사업부원장

2011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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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동아사이언스가 발행하는 인터넷 과학신문 ‘더사이언스’(www.thescience.co.kr)가 창간 3주년을 맞아 ‘출연연 맏형들이 전하는 R&D 현장’ 연재를 시작합니다.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선임(연구)본부장을 만나 연구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기획했습니다.

선임본부장은 출연연의 살림꾼으로 주로 내부 연구 활동을 총괄 조정합니다. 이들은 현장 과학자들이 애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연구원을 대표하는 ‘원장’ 뒤에서 ‘큰 형’ 역할을 하지만 그리 주목받지는 못합니다.

더사이언스는 선임본부장의 인간적인 고민을 비롯해 ‘현장과학자들이 바라는 과학 행정’ ‘현 과학기술계의 문제점’ 등을 취재해 매주 2회 더사이언스를 통해 선보이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선임본부장’또는 ‘부원장’으로 불리는 연구기관의 차상위자는 대체로 한 명뿐이다. 본부장 몇 명에게 권한을 나누어 주고 부원장급 인사를 두지 않는 곳도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자력연)은 부원장이 예외적으로 두 사람이다. 역할에 따라 하는 일도 다르다. ‘연구개발부원장’은 원자력 이용기술, 안전기술 등 연구를 총괄한다. 당장 해야 할 ‘연구과제’를 조율한다. 또 다른 부원장인 ‘전략사업부원장’은 원자력 산업 전체를 이끌 신기술 개발을 담당한다.

더사이언스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원자력 분야 연구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를 듣기 위해 전략사업부원장인 박성원(57·사진) 전략산업부원장을 7일 만났다.

●‘전략기술’ 분야 3개 연구소 총괄

박 부원장은 지난해 12월 부원장이 됐다. 당시 원자력연 원장에 선임된 정연호 원장이 박 부원장에게 손을 내 밀었다. 40년 가까이 한우물을 팠던 박 부원장의 전문지식을 높게 산 덕분이다.

“아는 게 없으니 한 가지만 매달린 거에요. 원자력연 내에서 근무 하는 동안 ‘사용후핵연료 관리·이용기술개발부장’ ‘핵연료주기기술개발단장’ ‘지속가능원자력시스템개발본부장’ 등을 지냈습니다. 모두 핵연료 개발과 관계가 깊은 보직이지요.”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의 말속엔 자부심이 묻어났다. 박 부원장은 핵연료 전문가다. 대학에서 화학공업을 전공하고, 1975년 봄에 원자력연 직원이 됐다. 올해까지 꼬박 37년을 핵연료 한 가지만 연구한 셈이다.

박 부원장이 맡은 역할이 ‘원자력연의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원자력연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권고로 최근 내부 체재를 개편하고 3개의 연구소를 새로 출범시켰다. ‘순환형원자력시스템연구소(순환형연구소)’와 ‘신형원자로개발연구소(원자로연구소)’, 그리고 전남 정읍에 자리한 ‘첨단방사선연구소(정읍연구소)’가 그것이다.

●“전략기술 키우면 1만 년 쓸 에너지 얻을 수 있어”

박 부원장은 “순환형연구소와 원자로연구소, 두 곳에서 미래 에너지 체제를 만들고, 정읍연구소에서는 ‘원자력 기술의 산업화’를 연구한다”며 “이 3개 연구소를 총괄 지휘해 미래 원자력 체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소개했다.

박 부원장이 요즘 가장 집중하고 있는 연구주제는 ‘4세대 원자로’다. 4세대 원자로를 쓰면 타고 남은 핵연료를 재활용해 몇 번이고 다시 발전할 수 는 기술이다.

지금의 원전기술로는 핵연료 속에 들어 있는 핵분열 물질의 0.7% 밖에 쓰지 못한다. 99.3%의 에너지를 내다 버리고 있는 셈이다. 핵연료 제작에 쓰이는 ‘우라늄’은 현재 수 십 년 분량 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원전을 4세대 원자로 방식으로 바꾸면 1만 년 이상 쓸 수 있다.

4세대 원자로가 가진 매력은 또 있다. ‘사용후핵연료’가 위험한 것은 속에 남아있는 방사성물질이 계속 방사선을 내 뿜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방사성폐기물을 깊은 땅 속에 안전하게 보관해 왔다. 하지만 4세대 원자로에서는 방사성물질을 거의 100% 연소시키니 폐기물 걱정도 한결 줄어든다.

여기 쓰이는 핵연료를 생산, 관리하는 ‘파이로프로세싱’ 기술 개발을 이끌어 온 사람도 다름 아닌 박 부원장. 그러니 4세대 원자로 개발에 대한 박 부원장의 자부심도 적지 않았다.

“4세대 원자로 개발을 담당하는 순환형연구소 직원은 모두 200명이 넘어요. 다른 독립 연구기관 하나에 필적하는 규모지요. 그만큼 정부도, 과학자들도 기대가 큰 기술입니다.”

박 부원장은 “2028년이면 4세대 원자로 시스템의 핵심인 ‘소듐냉각고속로’를 완성할 수 있다”며 “아르곤 연구소 등 미국 에너지국 산하 연구기관들과 올해 8월부터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앞으로 10년간 양국이 협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원자력과 다양한 에너지 기술, 함께 활용해야

박 부원장은 지난 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침체된 연구소 내부 분위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원자력연이 세계적 기관으로 거듭나려면 대중과 함께 호흡하지 않으면 곤란하다”며 “소통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또 그는 “원전을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장점이 많은 방식”이라며 “화력, 수력, 신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에너지와 함께 사용하며 단점을 보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원전사태 등을 놓고 우리 과학자들도 반성할 부분이 많다”며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큰 의미가 없다. 국민가 소통하기 위해 정부, 연구기관, 시민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년까지 남은 시간도 얼마 없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역량을 ‘미래’를 위해 쏟아내고 싶어요. 안전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원전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원전을 만드는 게 진정 우리가 할 일 아닐까요.”

대전=전승민 기자 enhanc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