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이수혁 전 6자 회담 수석대표 인터뷰 - “한반도가 영구 분단으로 고착될까 두렵다”

도일 남건욱 2011. 12. 27. 16:06

 

이수혁 전 6자 회담 수석대표 인터뷰 - “한반도가 영구 분단으로 고착될까 두렵다”
중국 군대의 북한 진주가 최악의 시나리오
김정일 사망 정보 단속한 북한 지도부는 안도하고 있을 것

이수혁(63) 전 국가정보원 차장은 북한 문제를 오래, 깊숙이 들여다 본 대표적인 ‘대북통 외교관’이다. 이 전 차장은 1997년 시작된 4자 회담의 물꼬를 튼 주인공이다. 그는 주미대사관 참사관 시절 4자 회담을 위한 실무를 맡아 회담을 성사시켰다. 이후 6자 회담 한국 첫 수석대표(2003년 8월~2005년 4월), 독일 대사를 지내다 국정원 제1차장(2006년 11월~2008년 3월)을 끝으로 퇴임했다. 이후 책 저술과 대학 강연 등을 통해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전파하고 있다.

요즘 그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전인 10월에 출간한 책인 『북한은 현실이다』때문이다. 1000권도 팔기 힘들다는 북한 관련 서적으로는 이례적으로 2쇄를 찍었고, 곧 전자책 출간도 앞두고 있다. 이 책은 북한·통일에 대해 새롭고 폭넓은 시각을 제시한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북한은 붕괴하지 않는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중국은 북한을 버리지 않는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이론적으로 입증한다. 요즘 난무하는 근거 없는 예측이 아니라, 경험과 통찰에서 나온 지적 결과물이다.

12월 21일 만난 이수혁 전 차장은 “한반도가 영구 분단으로 고착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내부의 급변 사태와 전쟁 가능성은 작게 봤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북한 정세를 진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분단과 통일에 대한 정치 철학과 역사인식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가 강조했다.

김정일 사망 후 50시간 동안 청와대와 국정원이 몰랐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북한에 대한 정보 부재에 나도 놀랐다. 미국과 일본, 중국도 쇼킹했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로 인해 북한 집권 세력이 굉장히 안도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체제 이너서클에 외부 침투가 없다는 사실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으로 은밀한 프로젝트에 대한 자신감을 가졌을 것이다.”

미국이 몰랐다는 것을 믿어도 되나.
“흔히 미국의 정보력이 전지전능할 것이고, 빅 브라더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경험으로 판단하건대, 미국도 속속들이 북한의 내막을 아는 데 한계가 있다.”

미궁에 빠진 북한에 대한 정보력이 더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대북 정보 부재는 대북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하려면 판단의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대단히 취약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을 알고 정세를 전망할 수 있겠는가. 미국보다 우리가 더 많은 북한 정보를 가져야 한다.”

김정일 사망 후 가장 큰 관심사는 후계자 김정은 체제가 유지될 것인가다. 이와 관련 국정원은 최근 국회 정보위원회 현안 보고를 통해 “(김정은이 최고지도자에 오르기 전까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를 중심으로 과도통치기구를 구성해 그곳에서 당면한 대책들을 협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은 또한 “북한은 대내적으로는 김정은 중심의 체제 안정에 최역점을 둘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 중앙군사위는 북한 인민군을 관장하고 군사정책을 총괄하는 곳이다. 김정은 2010년 9월 부위원장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김정은이 어리고, 후계 수업 기간이 짧았다는 이유로 여러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주목 받고 있다. 그는 킹 메이커가 될까, 아니면 직접 나설까.
“권력의 속성만 본다면 그도 유혹을 받을 수 있다. 장성택은 이미 군부에 많은 힘을 실어놨을 것이다. 만약 북한 내 권력의 암투가 발생한다면, 그가 섭정할 가능성도 있지 않겠나.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가능성이고 소설일 뿐이다.”

 

형제의 난은 가능한가.
“김정철은 체질적으로 유약하고, 김정남은 방탕하다는 소문이 있다. 이를 북한 지도부가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어렵다고 본다.”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 체제가 내부적으로 위험한 적은 없었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북한 지도층은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들의 권익이 박탈될 때 반발할 텐데, 김정일은 관리를 잘했다. 김정일 체제의 가장 큰 위기는 김정일 자신의 건강 문제였다.”

북한 집권세력이 붕괴하거나,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날 경우 민주화 체제로 갈 가능성이 있겠나.
“김정은이 축출되는 혁명적 상황이 발생하고, 누가 지도자로 나서더라도 자유 민주화는 없을 것으로 본다. 북한 주민이 생각하는 세습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조선시대에 왕위가 계승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김일성 왕조의 붕괴만이 북한 체제의 종식을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 김일성 세습 후계자들은 다른 방법으로는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불만에 찌든 북한 주민이 봉기할 가능성도 내놓고 있다. 물론 대다수 전문가는 회의적이다. 북한 내부에 반동세력을 규합할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핵심적인 이유다. 이수혁 전 차장은 『북한은 현실이다』를 통해 “작은 충격으로 시스템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모래탑 패러다임’을 소개했다”. 예측할 수 없는 우발적인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이 봉기할 수 있다는 얘기인가.
“북한 주민들은 정권의 집요한 선전에도 자신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 정권 아래서 견딘 고통에 대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갖고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 작은 충격이 언제 형성되는가다. 북한의 모순은 이미 임계치를 넘었지만,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누군가가 없다면 혁명적 정세는 발생하지 않는다. 북한 주민의 분노와 저항의지가 결집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이 대단히 어려운 정치사회 환경이다.”

김정은 체제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쏠려 있다. 동의하나.
“예측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군부와 문제는 없어 보인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어떻게 보나.
“중국이 생각하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연대성이 아니다. 오로지 중국의 국가 이익일 뿐이다. 중국은 김정은 세습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북한 정치체제가 급변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북한이 남한에 흡수통일되는 것에 호의적일 수 없고, 무력충돌 역시 중국의 국익에 배치된다. 중국이 북한의 생사여탈권까지는 아니더라도, 영향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정치적 영향력은 일정 부분 한계가 있겠지만, 북한의 경제적 대중 의존도는 높아질 것이다.”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전쟁을 제외한다면, 북한 체제가 무너지면서 중국이 북한에 진주하는 것이다. 비상사태로 북한 주민이 대거 국경을 넘으면 중국은 안보를 명분으로 군사 개입에 나설 수 있다. 북한은 살리되, 한반도에서 전쟁은 회피하는 것이 중국의 한반도 전략이다. 북한의 생존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과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이다. 만약 중국 군대가 북한에 진주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65년이나 유지된 장기 분단은 영구 분단으로 고착될지 모른다. 또한 동북아의 새로운 냉전, 미-중 대립구조의 시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어떤 나쁜 평화도 전쟁보다는 낫다는 말이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한국·북한·중국·미국 4개국의 정세와 입장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면, 현재 한반도는 전쟁이 일어날 구조는 아니다. 일단 북한은 전쟁을 각오할 상황이 아니다. 중국 역시 전쟁이 국익에 맞지 않다. 미국과 일전을 각오할 상황도 아니다. 우리 국민 역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전쟁으로 인한 파괴다. 물론 한반도 전쟁은 우발적 사건 또는 의도하지 않은 사건에 대한 과잉 대응에서 생길 수도 있다. 북한은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국지전을 도발할 위험이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딜레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