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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FTA 논란 뜨겁다. 특히 3월 15일 발효를 앞둔 한·미 FTA를 두곤 여야의 정쟁이 치열하다. 폐기 논란까지 나온다. 과연 그렇게까지 형편 없는 협상이었을까. 일부 전문가들은 한·미 FTA 발효 후 효과를 보고 폐기나 재재협상을 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한·칠레, 한·싱가포르, 한·EU FTA 등의 성과도 짚어봤다.
‘더 주고 덜 받았다…동맹 때문에’. 2010년 12월 6일자 중앙일보의 1면 톱 기사 헤드라인이다. 하루 전인 그 해 12월 5일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협상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한 제목이었다. 당시 이 기사에선 추가 협상에 대해 “정부는 ‘주고 받기’라고 설명했으나 실제론 ‘주고 주고, 받기’에 가깝다. 남북 긴장이 고조된 상태에서 미국의 도움이 절실한 우리에겐 불가피한 선택인 셈”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기존 합의보다는 못하지만 FTA가 발효되지 못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전문가의 견해를 인용하며 추가협상 타결을 환영했다.
한·미 FTA의 필요성을 줄곧 주장해온 신문이 추가 협상 결과에 대해 ‘더 주고 덜 받았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는 점에서 당시 중앙일보 보도는 눈길을 끌었다. 추가 협상을 ‘굴욕협상’이라고 비난해온 야당은 자신들의 주장을 전파하는 홍보전에 이 보도를 적극 활용했다. 신문이 나온 6일,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는 아예 중앙일보 1면 지면에서 ‘중앙일보’ 제호만 빼고 해당 기사를 오려낸 뒤 FTA를 폐기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장에 들고 나왔다.
중앙일보 보도는 정부 입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김종훈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은 그 해 12월 5일 추가 협상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일방적 양보가 아닌 양측 간 이익을 각각 반영한 결과물이다. 이익의 균형 여부를 숫자로 또는 계량적으로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전반적으로…(중략)…서로의 이익균형을 모색했다고 본다.”
‘더 주고 덜 받았다’ 논란
그러나 ‘더 주고 덜 받았다’는 분석은 나중에 정부 스스로도 받아들였다. 이듬해인 2011년 7월 기획재정부와 산업연구원·한국농촌경제연구원·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한·미 FTA 추가 협상 영향 분석’이란 자료에서 한·미 FTA 추가 협상에 따른 경제 효과가 원래 협정에서 기대됐던 것에 비해 연간 406억~459억원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에 일부 양보한 자동차의 대미 흑자 증가 폭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반면 돼지고기와 의약품 분야에선 한국 측 손실이 다소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다시 부연하지만 추가 협상으로 FTA의 경제적 효과가 다소 줄었다는 게 결코 한·미 FTA의 반대논거가 될 수는 없다. FTA 비준이 늦어지는 것보다는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죽은 자식 살려냈다는 게 가장 큰 이익”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한상의는 한·미 FTA가 지연되면 연간 15조원의 기회비용이 발생한다고 추정했다.
일국적(一國的)인, 그리고 정략적인 이해에서 벗어나면 한·미 FTA 추가 협상을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10월9일’‘FTA 협정들을 위한 딜(A Deal for the Deals)’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미 의회가 한국·콜롬비아·파나마와의 FTA 비준에 합의하기로 한 직후였다. 이 신문의 시각은 이랬다. “민주당은 2007년 의회를 장악한 뒤 한국 등과의 FTA 비준을 반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한국 등과의 추가 협상을 시작했고 추가 양보를 얻어냈다. 한국은 미국 자동차회사들을 위한 더 좋은 딜을 내놓았다. 콜롬비아는 자국 노조원에 대한 새로운 보호장치를 약속했다. 파나마는 금융투명성을 높이고 자금세탁을 막는 내용으로 법을 개정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FTA 비준을 기다리고 있던 콜롬비아·파나마도 지연되고 있던 FTA 발효를 앞당기기 위해 추가 양보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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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발효를 앞두고 있는 한·미 FTA는 원래 노무현 정부의 작품이다. 미국과 FTA를 맺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도, 체결한 것도 노무현 정부였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2월 국회 국정연설에서 “1990년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편입은 피할 수 없는, 부득이한 선택으로 인식됐다”며 “이제 WTO와 FTA는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적극적 전략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동시다발적인 FTA’ 정책을 추진했다.
동시다발적 FTA 체결의 효과는 어땠을까. 일단 성공적이다. 2004년 발효된 한·칠레 FTA로 양국 간 교역이 크게 늘었다. 자동차·무선통신기기 같은 고부가가치 상품의 수출이 늘었다. 교역량은 2003년 18억5200만 달러에서 2010년 71억6800만 달러로 뛰었다. 2010년 자동차 수출은 11만2000대. FTA 발효 전보다 5배 늘어났다. 칠레 자동차 시장 점유율도 18.8%에서 39%로 늘었다. 우려한 농산물 피해는 거의 없었다. 국내 포도가격은 꾸준히 올랐고, 시설 포도의 재배면적도 점진적으로 증가했다. 키위 농가의 피해가 우려됐지만 가격은 안정세를 유지했고 재배면적 역시 늘었다. 2006년 3월 발효된 싱가포르와의 FTA는 교역량과 무역흑자를 늘렸다. 싱가포르는 이미 고도로 개방된 국가였다. 그래서 FTA 발효로 한국 측이 일방적으로 관세를 철폐하면 무역수지가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무역 흑자규모는 발효 이전인 2003년 23억 달러에서 2010년 79억 달러로 급증했다. 양국 간 투자규모도 늘었다.
유럽자유무역연합(EFTA)과의 FTA로 서비스시장이 개방되고 투자 자유화가 확대되면서 STX그룹의 노르웨이 조선업체 인수, UBS의 하나UBS자산운용 지분 인수 등 양 지역간의 투자가 활발해졌다. 2007년 6월 아세안(ASEAN)과의 FTA가 발효된 덕분에 석유제품·선박·철강 등의 수출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2010년 발효된 한·인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에 따라 교역뿐만 아니라 인적·문화교류도 늘었다. 상용 입국자 수가 2009년 1만5759명에서 2010년 2만5269명으로 60.3% 증가했다. 지난해 7월 발효된 한·유럽연합(EU) FTA는 아직 효과를 따지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유럽 재정위기라는 변수도 있다. 다만, 자동차·석유제품 등 FTA 관세 감면을 받는 품목의 수출 증가세는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다.
한·칠레 FTA에서는 농업 분야 피해도 거의 없어
한국은 현재 세계 45개 국과 FTA를 체결했다.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경제의 61%와 ‘경제 고속도로’를 뚫은 셈이다. 한국의 ‘경제 영토’가 칠레(87%)와 멕시코(72%)에 이어 세계 3위 수준까지 확대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 FTA의 필요성을 제시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인용된 비유가 있다. “토끼는 한 평의 풀밭으로 만족하겠지만 사자는 넓은 초원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경제는 지금 넓은 들판으로 나가야 할 시점에 와있다.” 박흥수 당시 농림부 장관이 말했고 그 후 한덕수 당시 경제부총리(현 무역협회장)가 자주 언급했다. 그 꿈이 바야흐로 현실화 되기 직전이다.
한·미 FTA의 설계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FTA 어록을 보면 지금도 울림이 크다. “진보주의자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존중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진보주의자들이 개방 문제와 관련해 주장했던 내용이 그 이후 사실로 증명된 게 하나도 없다. 진보주의자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은 정책은 반드시 현실 속에서 과학적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거다. 공허하고 교조적인 이론에 매몰돼 흘러간 노래만 계속 부르지 마라.”
한·미 FTA 비준을 둘러싸고 한국은 지난해 홍역을 치렀다. 정치권의 끝장토론에도 국회에서 최루탄이 터졌고 비준안은 강행 처리됐다. 찬반 진영은 지금도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데에만 동의(agree to disagree)한 상태다. 정부도 FTA 찬성론을 적극 설파했지만 반대론자의 진지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세계를 공략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FTA의 이득은 추상적·전체적인데 피해는 구체적·개별적이라는 점 때문에 격렬한 소수 반대자의 목소리만 크게 들린다. 물론 정부가 ‘대외협상’에 신경 쓰는 것만큼 국내 이해당사자를 상대로 하는 ‘대내 협상’을 잘 수행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야당에서 한·미 FTA를 선거 이슈로 부각시킨 것도 이런 점에서 자기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당이 FTA 폐기 내용을 담은 편지를 미국 대사관에 전달한 뒤 ‘너무 나갔다, 오만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국이 무슨 독재국가인가. 왜 외국 대사관에 찾아가서 편지를 전달하고 그러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그는 “FTA 폐기는 협정문 조항에 나와는 있지만 실제로 이를 폐기하겠다는 건 미국 등 국제사회와 관계를 끊고 스스로 고립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전문가들은 FTA를 정치싸움의 도구로 이용하는데 우려를 표시했다. 이경태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석좌교수는 최근 언론 기고에서 ‘FTA 휴전’을 제안했다. 그는 “극한 대립을 그대로 두고 (한·미 FTA가) 3월15일에 발효한다고 해도, 차기 국회에서 끊임없는 정쟁의 도구가 되고 국정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며 “여야는 일단 휴전하고 발효일로부터 3년 후에, 즉 차기 정부 출범 2년 후에 한·미 FTA의 실현된 효과를 평가하고 그 바탕 위에서 재재협상과 폐기 문제를 검토하면 좋겠다”고 했다. ‘평가가 긍정적이면 현재 야당이 집권해도 그대로 효력을 지속시켜야 하고, 평가가 부정적이면 현재 여당이 계속 집권해도 재재협상을 해야 할 것’이라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지금은 설익은 논쟁을 더 이상 하지 말자는 주장이다. 한·미 FTA가 수출 증대, 일자리 창출, 서비스산업과 경제제도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한다는 여당의 주장이 맞을지, FTA가 서민생활의 파탄과 국가 공공정책의 무력화라는 대재앙을 불러 온다는 야당의 주장이 맞을지, 지금 당장은 어느 쪽도 설득하기 힘든 상황인 만큼 실사구시 입장에서 3년 뒤의 성적표를 앞에 펼쳐놓고 제대로 평가하자는 지적은 설득력 있게 들린다는 평가다.
끝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FTA 어록을 다시 인용한다. 노무현은 국민을 믿었다. “경제 효과에 대해 아무리 열심히 연구하고 분석해도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불확실하지만 뛰어들어야 적어도 낙오하지 않는다. 버거운 사태가 벌어졌을 때 우리 국민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그만큼 변화에 적응력이 높았다.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 우리 국민의 역량에 대한 믿음, 그것이 FTA를 결정하게 된 중요한 이유였다.”
협상 임박한 한·중 FTA
반대파 반발로 공청회부터 아수라장
2월2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공청회는 ‘예상대로’ 난장판이었다. 협상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단상을 점거했다. 공청회 일정은 한때 중단됐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이성 정책부회장은 “중국과의 FTA는 그 피해 수준을 예측할 수 없는 농업 말살협상”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공청회는 한·중 FTA 협상 개시를 위한 국내 절차의 첫 단계였다. 협상 개시를 선언하기 위해서는 공청회, FTA 추진위원회 심의, 대외경제장관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지난해 도입된 통상절차법에 따라 협상 개시 전에 국회에 보고도 해야 한다. ‘협상 타결’이 아니라 ‘협상 개시’를 위한 국내 절차를 밟아나가는데도 진통이 예상된다.
한·중 FTA가 공식적으로 거론된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한·중 통상장관 회담에서였다. 중국이 먼저 원했고 한국도 맞장구를 쳤다. 민간 공동연구부터 시작해 2007년부터 2년간은 산·관·학 공동연구를 했다.
5차에 걸친 산·관·학 공동연구를 마치고 2년이 지난 2010년에야 공동연구를 끝냈다. 그 후 양국은 민감 분야 처리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사전 협의를 이어갔다. 연초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FTA 협상 개시를 위한 국내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양국의 FTA 논의가 실제 협상 개시로 이어지기까지 7년 넘게 걸린 것이다.
원래 정부는 지난해 말까지 중국과의 FTA 협상을 개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한·미 FTA 비준이 예상보다 지연되고 이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찬반 논쟁이 거칠어지면서 협상 개시 선언이 올해로 연기됐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중국이 자국 지도부가 바뀌기 전에 한국과의 FTA 협상을 시작하기를 강력하게 원했고, 한국도 북한 등 정무적인 문제를 감안했을 때 협상 개시를 더 이상 미루기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어차피 할 거면 빨리 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중 FTA 민간 공동연구에 참여했던 한 박사는 “양국의 비교우위가 3년 전과 비교해 많이 달라졌다”며 “민간 연구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한국은 자동차 등 제조업 분야가 상대적으로 강했다. 하지만 이제는 양국의 제조업 격차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한·중 FTA는 FTA 허브국가론으로 연결된다. 미국·유럽연합(EU)에 이어 중국과 FTA를 맺으면 세계 3대 경제권과 FTA를 맺은 유일한 나라가 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김영귀 부연구위원은 “중국과 낮은 수준의 FTA를 체결하더라도 발효 뒤 10년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2.28%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문제는 농수산물 분야다. 정부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중국과 협상을 두 단계로 나눠 진행할 계획이다.
먼저 농수산물 같은 민감 분야를 먼저 논의한 뒤 본협상으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어명근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이 지리적으로 인접한 데다 생산구조가 유사하고 인건비가 저렴해 농산물 가격경쟁력이 압도적으로 높다”며 “국내 농가소득에서 비중이 큰 중요 농산물은 민감 품목으로 선정해 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양수산개발원 장홍석 책임연구원도 “세계 최대의 수산물 생산국인 중국은 한국과 동일 어장에서 같은 어종을 생산하고 있는 데다 수입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어 역대 FTA 중 수산분야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