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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9일 오후 1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과 상수동의 카페 밀집 거리. 가게가 문을 여는 이 무렵부터 거리에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는 남자, 스케치북을 든 여자, 배낭을 짊어진 외국인, 다정한 커플까지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였다. 취향에 맞는 카페를 골라 자리를 잡은 이들은 한가한 오후를 즐겼다. 평일인데도 꽤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았다. 손님 행렬은 밤 10시가 넘는 시간까지 이어졌다.
2009년만 해도 이 지역은 유동인구가 많지 않았다. 건물 대부분은 원룸이었고 식당과 사무실도 많지 않았다. 홍대를 찾은 이들이 합정이나 상수까지 이동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홍대 상권 끝자락에 걸쳐 있는 이곳은 지저분한 골목에 불과했다.
지금은 딴판이다. 합정·상수의 거리는 카페 문화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개성만점의 카페만 150개가 넘는다. 카페 문화권에서 생활한 서양 사람들조차 깜짝 놀랄 만한 카페촌이다. 거리에서 만난 필립 블랑(28·프랑스)씨는 “카페 주변의 분위기는 파리가 더 좋지만 카페 자체의 개성은 이곳이 더 강한 것 같다”며 “가끔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면 관심을 보이는 친구가 많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휴일·주말·평일을 가리지 않는다. 카페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 차를 마시고 문화를 만끽한다.
카페문화가 처음 시작된 곳은 홍대 주변이었다. 1990년대 초반 아티스트와 디자이너가 홍대 문화를 주도했다면 중반 이후부턴 뮤지션과 클럽 DJ가 문화를 이끌었다. 음악과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만나 문화를 나누는 곳이 홍대 카페거리였다.
새로운 카페문화의 중심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홍대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수많은 사람이 홍대로 몰렸고 그런 수요를 노린 자본이 유입됐다. 대규모 식당과 카페가 들어섰고 홍대의 중심지역은 프랜차이즈가 장악했다. 홍대 땅값이 꿈틀댔다. 건물 임대료, 상가 권리금이 치솟아 소규모 창업자가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사업자금이 부족한 사람들은 임대료가 싼 주변지역으로 조금씩 밀려났다. 그렇게 생긴 곳이 지금의 합정·상수 카페거리다.
합정·상수의 상인들은 사람들을 불러모을 수 있는 전략이 필요했다. 이곳 상인들은 스토리텔링 전략을 썼다. 골목에 숨어 있는 스토리를 고객유치의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합정·상수에 있는 가게는 그 규모가 제아무리 작더라도 손님의 발길을 끌만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150개 카페에 150개 이야기가 존재하는 것이다.
골목을 걷다가 아무 카페나 들어가도 이야기 보따리가 가득하다. ‘몽마르뜨 언덕 위 은하수 다방’은 인디밴드 그룹 ‘10㎝’가 자주 가는 카페로 유명하다. ‘10㎝’는 카페 이름을 딴 노래도 만들었다. 된장찌개 전문점 ‘이런된장’은 SBS ESPN의 축구 해설가 서형욱씨의 부모님이 운영하고 있다.
가게 곳곳에 서형욱씨와 축구 선수 사진이 걸려 있다. ‘aA 디자인 뮤지엄 카페’는 건물 전체가 하나의 가구 박물관이다. 다양한 종류의 원목으로 만든 탁자와 의자가 있다. 가게 앞에 있는 가로등은 프랑스에 설치돼 있던 걸 그대로 가져왔다. 카페 ‘이누’는 치과의사인 주인이 2층엔 치과, 3층엔 카페를 꾸몄다. 카페가 밀집한 곳에 치과가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스토리 가운데 손님이 만든 게 많다는 것이다. 이는 카페 홍보에 도움을 준다. 카페를 찾는 고객이 직접 이야기를 찾아내 주변 사람들과 공유한다. 블로그나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면 파급효과가 상당히 크다. 고객이 블로그에 올린 글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돼도 정작 카페 주인은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되묻는 경우가 많다. 주인도 모르게 가게가 홍보되고 있는 것이다. 골목 구석에 숨어 있는 가게도 재미있는 스토리만 있으면 손님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빵과 커피를 파는 ‘퍼블리크’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4월 문을 연 ‘퍼블리크’는 상수 지역에서 두 블록 벗어난 골목에 있다. 장소를 알고 가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천연효모를 사용하고 프랑스 전통 방식으로 빵을 만든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서다.
장은철 퍼블리크 쉐프는 “빵의 품질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너무 외진 곳에 가게를 연 것은 아닌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신기하다”며 웃었다. 가게를 찾은 정혜진(32)씨는 “자주 들르던 블로그의 운영자가 퍼블리크에 온 기념으로 인증샷을 올렸는데 분위기가 좋아 찾아왔다”며 “상수지역에 숨어 있는 맛집이나 카페를 찾아 다닐 때는 꼭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임대료 올라 상인들은 한숨
합정·상수지역이 카페거리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상인들의 고민이 없진 않다. 무엇보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3년 전 120만~130만원 정도 하던 49.5㎡(옛 15평) 가게 임대료가 지금은 200만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현재 홍대 중심지의 월 평균 임대료는 300만원 수준이다. 대형 상권과의 싸움도 힘겹다. 합정 지하철역 인근 메인스트리트에 탄탄한 자본력을 갖춘 음식점과 카페가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다.
합정·상수 지역에서는 한달에도 5~6개의 카페가 폐업하고 또 새롭게 문을 연다. 인테리어가 화려하고 개성만점인 카페를 개업해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29.7㎡(9평) 규모의 카페를 운영하는 장효진(가명·33·여)씨는 “한달 순이익이 30만원밖에 되지 않아 생계유지가 어렵다”며 “아침에는 김밥을 싸서 출근하는 직장인을 상대로 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꿈에 그리던 카페 창업을 했지만 1년 7개월 만에 폐업을 고민하고 있었다.
김명한 aA 디자인 뮤지엄 대표는 “차별화된 콘텐트로 승부를 보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20년 동안 카페 사업에만 몰두한 카페 전문가다. 홍대·강남·삼청동·인사동 등 여러 지역에서 카페로 성공을 거뒀다. 카페 문화라는 것이 없던 시절 현대식 인테리어 카페를 열었던 것이 성공 요인이었다. 그는 “콘텐트로 승부를 보되 계속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며 “내 옆에 들어서는 가게는 분명히 나보다 좋은 콘텐트를 가지고 창업을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성민 이코노미스트 기자 sampark2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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