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에 선을 보이는 '훌륭한 정치'에 대한
새 책의 탈고로 매달리다 보니까 그동안 메일보내기가 뜸했습니다. 빅터 프랑클의 회상록에 나오는 글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는 3년 동안 테레지엔슈타트, 아우슈비츠, 제3 카우페링 수용소와 튀르크하임 수용소를 전전하면서도 살아남았습니다. 1.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밤에 한 번도 꿈을 꾸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까지도 나는 강제수용소에 있는 꿈을 끊임없이 꾼다. '여기에 오지말았어야 했어. 탈출을 했더라면 제때에 미국으로 망명할 수 있었을 것이고, 미국에서라면 로고테라피 이론을 발전시킬 수 있었을 거야. 그곳에서 필생의 과업을 실현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어. 그래서 아우슈비치로 온 거야. 그것이 결정적 실험9experimentum crucis)이었어.' 2. 분명 강제수용소는 내가 진정으로 성숙할 수 있었던 시험대였다. 최근 몇 년 사이 자주 강조했듯이, 나는 자기초월과 자기상대화에 있었서 근본적으로 인간이 얼마나 무능한지, 그렇기 때문에 그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제수용소에서 확인했다. 3. 가장 광범위한 의미에서 이러한 경험적 지식은, 나의 개념으로 표현하자면, '의미에 대한 의지'나 '자기 초월을, 다시 말해 자기 이외의 무엇인가를 지향하는 인간존재를 일컫는 미국의 심리학 용어 '생존가, suvival value'를 확인하게 해주었다. 4. 다른 조건들이 같다면 미래를 지향하는, 즉 미래에 충족될 의미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살아남기 마련이다. 미국 해군과 육군에서 정신과 의사로 활동했던 나르디니와 리프턴은 일본과 북한의 포로 수용소에서 그와 똑같은 상황을 경험했다. 5. 개인적으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잃어버린 초고를 다시 써야하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고 확신한다. 발진티푸스를 앓았을 때, 독혈증을 이겨내기 위해서 밤마다 뜬눈으로 지새우기 시작하면서 그런 마음을 먹었다. 6. 마흔 살 생일에 동료가 몽당연필과 두어 장의 아주 작은 친위대 서식 용지를 어디선가 구해서 선물했다. 나는 용지 뒷면에 몹시 들뜬 마음으로 마치 속기를 하듯 떠오르는 생각들을 끄적거렸다. 그 덕분에 '의료 성직자'를 다시 쓸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7. 자기상대화의 전형은 ... "나는 우리를 둘러싼 온갖 고통들을 객관화하면서 그것으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지금도 떠오르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수용소에서 나와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 신발 끈도 여미지 못한 채 기아로 인해 부풀어 오르고 추위에 꽁꽁 언 발로 간신히 행진을 했습니다. 나는 희망도 없고 그 어디에서도 위로도 받을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때 크고 훌륭한, 그리고 따스하고 밝은 강의실 강단에 서 있는 내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상상 속의 나는 호기심 어린 청중들 앞에 서서 '강제수용소에서 심리치료 경험'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경험을 얘기했습니다. 여러분, 그 순간에 나는 언젠가 그런 강의를 실제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감히 바라지 못했습니다." -출처: 빅토르 프랑클,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책세상,pp.148-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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