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한국이 해낸 세계최대 우주 진화 모의실험

도일 남건욱 2012. 11. 30. 15:59


한국이 해낸 세계최대 우주 진화 모의실험

고등과학원, 표준 우주모형 유효성 입증…18억광년 길이 `슬론 장성` 존재 설명



국내 연구팀이 세계 최대 우주 진화 시뮬레이션을 통해 타당성을 의심받던 표준 우주모형이 유효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표준모델은 우주는 약 137억년 전 대폭발(빅뱅)을 거쳐 균일한 밀도에 한 곳으로 쏠림이 없이 똑같은 성질을 가진 것으로 가정한 이론인데 최근 거대 은하 집단이 발견되면서 반론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번 실험에서 표준 우주모형에서도 실제로 관측되는 거대 은하 집단의 존재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고등과학원(KIAS) 박창범 물리학부 교수와 김주한 연구교수는 세계 최대 규모로 시행한 우주론적 거대구조 시뮬레이션을 바탕으로 표준 우주모형을 입증한 논문을 지난 9월 세계적인 천체물리저널에 '우주 거대 구조에 대한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했다고 14일 밝혔다.

박 교수팀은 2005년 당시 86억개의 입자를 사용한 세계 최대 규모의 우주 진화 시뮬레이션을 수행한 바 있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우주 진화 시뮬레이션을 수행하려는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다시 한번 세계 최대 규모 시뮬레이션에 성공하고 기존 우주론에 대한 정설까지 증명했다.

우주 거대구조 시뮬레이션이란 우주 초기 밀도 상태를 표준 우주모형에 맞게 설정한 다음 이를 중력 진화 과정을 통해 현재의 우주 모양을 재현한 것이다. 즉 우주 거대구조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고 이 결과로부터 실제 관측된 우주 거대 장성들을 볼 수 있는지 없는지 비교 분석이 가능하다.

이번 연구는 2010년 대전에 있는 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호라이즌 런(Horizon Run)'이라는 명명하에 시뮬레이션을 수행했다. '호라이즌 런'은 3750억개의 입자를 사용해 총 200번 반복 시행한 후 관측 통계를 냈다. 그 결과 슬론 장성(Sloan Great Wall)이 현재 우주 모형에서 충분히 가능한 구조물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우주론에 따르면 137억년 전 아주 조그마한 점에서 대폭발(빅뱅)을 거쳐 지금의 우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1920년대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균일ㆍ등방하다는 원리를 기반으로 우리 우주를 기술하는 일반상대성 이론을 발표했다.

우주가 균일ㆍ등방하다는 것은 우주에서 별, 은하, 물질 등이 일정하게 분포돼 있기 때문에 어느 위치에 있든지 관측자들은 모두 같은 상태의 우주를 본다는 뜻이다.

지난 90년 동안 이를 지지하는 수많은 관측적인 증거가 발견됐으며 이로부터 우주론은 확실한 관측적, 이론적 토대를 다져왔다. 그러나 1986년 우주 거대 은하 집단이 관측되고 2006년 30억광년 이내 우주를 측량하는 시스템인 '슬론 디지털 스카이 서베이(SDSS)'를 통해 더 큰 거대 규모의 슬론 장성이 발견되면서 우주의 균일ㆍ등방 원리는 본격적인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슬론 장성의 길이는 18억광년에 달한다.

우주 초기 에너지로 인해 어느 정도의 비균일, 비등방성이 존재한다고 보지만 관측된 거대 은하 집단은 표준 우주모형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

따라서 기존 우주 모형에 문제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반박이 제기됐다. 표준 우주모형이 관측된 거대 우주 구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같이 갑론을박 논쟁이 팽팽한 상황에서 박 교수팀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일각에서 제기한 새로운 우주 진화론의 필요성을 일축하고 현재 표준 우주 모형이 유효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다.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구 성과의 잣대로 평가받는 인용 횟수는 아직 미미하지만 파급력은 실감할 만하다. 김주한 연구교수는 "최근에 발표했지만 각 학계에서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는 이메일을 보내오고 있다"며 "시간이 지나면 영향력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팀은 앞으로도 더 큰 규모의 우주 거대 구조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슈퍼컴퓨터다. 김 연구교수는 "우리 기술로 1조입자를 사용한 더 큰 시뮬레이션이 가능하지만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가 국내에 없다"며 "앞으로 우주 진화에 대한 획기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기기에 대한 지원도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미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