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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 완화로 부자만 웃었다

도일 남건욱 2013. 3. 14. 12:51

양적 완화로 부자만 웃었다

이공순 글로벌모니터 에디터
지난해 억만장자 재산 8000억 달러 늘어 … 민간 가계소득은 감소


미국의 다우지수가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의 전고점을 넘어섰다. 이코노미스트들은 미국 주식시장이 랠리를 이어가리라고 입을 모은다. 5년 만에 이제 세상은 금융위기의 흔적을 깨끗이 지워버린 걸까?

일단 부자들에게는 그렇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3월 5일(현지시간) 세계 억만장자(10억 달러 이상의 재산 보유자) 리스트를 발표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10억 달러 이상의 자산가는 세계적으로 1426명이다. 지난 한 해에만 150명이 늘었다. 이들이 가진 재산을 모두 더하면 5조4000억 달러에 이른다. 2011년보다 8000억 달러 늘었다. 이들의 1인당 평균 재산은 38억 달러다.


미국 거시 경제지표 대부분 악화

그렇다면 경제 상황은 어떨까? 다우지수의 전 고점인 2007년 7월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면 그다지 좋지 않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07년 2.5%, 올해는 1.6%로 추정된다. 가솔린 평균 가격은 당시 갤런 당 2.75달러, 현재 3.73달러다. 

미국의 실업자 수는 당시 670만명, 지금은 1320만명이다. 미국 정부 연간 재정 적자는 당시 970억 달러, 올해는 9750억 달러(추정치)다. 

생계보조비 지원을 받는 극빈층 수는 2690만명에서 4770만명으로 늘었다. 미국의 부채 총액은 당시 9조 달러, 현재 16조4300억 달러다. 거의 모든 거시 경제지표는 2007년 다우지수가 현재 지수대를 기록했을 때보다 훨씬 악화됐다.

그렇다면 눈덩이처럼 불어난 억만장자의 부(富)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영국의 텔레그라프지는 3월 6일(현지시간) 토마스 페스코의 칼럼에서 “이 같은 부의 창출은 서구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푼 돈은 대부분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으로 흘러간다. 더 이상 부채를 늘리기 어려운 대중은 싼 값(저금리)에 대출 받지 못한다. 그래서 기존에 많은 금융자산을 가진 부자만 더 부자가 되기 쉽다.

페스코는 이렇게 금융자산 가격이 오르면 고정 소득자나 가난한 사람은 더 손해 본다고 지적한다. 자산 가격은 오르는데 임금은 물가상승률에 뒤쳐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만히 있어도 더 궁핍해진다. 영국에서 지난해 물가는 3% 올랐지만, 영국 주가(FTSE100 지수)는 6% 상승했다. 이에 비해 영국의 임금은 평균 1.7%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런 조건에서 주식을 많이 가진 사람은 더욱 부자가 되고, 일반 월급쟁이는 더 가난해진다.

버블 붕괴나 인플레이션 창궐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에서 GDP 대비고용비용은 1960년대 이후 계속 줄었다. 임금소득(노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소득)의 비중이 점점 작아진다는 걸 뜻한다. 그렇다면 그 부족분을 미국의 가계는 어떻게 채울까? 미국은 이른바 자산소득(주택·증권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임금 비용의 하락을 상쇄했다. 따라서 집값 상승은 고용 비용을 낮게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주가 상승도 임금의 상대적 하락을 상쇄하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주택 버블 붕괴로 이 같은 자산소득 효과가 사라지자 미국의 민간 가계소득은 오히려 감소했다. 중앙은행이 돈을 쏟아 부어도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주가는 오르는데 사회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가난해진 것이다. 따라서 페스코는 “양적 완화가 중단되지 않으면 빈부격차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면서 “서구에서 통화발행은 사회적 비용을 수반한다”고 주장했다. 이 논리를 따라가 보면, 지난해 재산이 8000억 달러 증가한 세계억만장자의 부의 원천이 어디였는지 나타난다. 그건 바로 중앙은행의 화폐 발행이었다.

물론 미국의 주가가 오른 건 이처럼 단순한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경기 회복 여부와 무관하게 미국 연준은 앞으로도 매달 850억 달러씩 돈을 찍어내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투자가 사이에서 인플레이션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는 방식이 국채를 매입하는 것이다. 이는 국채 금리 하락으로 이어진다. 지난해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국채 금리가 주식 배당 수익률을 밑도는 기이한 현상까지 나타났다.

따라서 주식 가격은 채권에 비하면 싸다. 특히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채권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이런 투자가들의 논리가 미국 주식 가격을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최근 미국 주가를 끌어올린 핵심 업종이 이른바 필수 소비재와 유틸리티 분야인 것도 바로 이 같은 ‘인플레이션 헤지’용으로 주식이 부각된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승 논리(중앙은행의 화폐 발행→인플레이션 우려→주가 상승)의 끝은 어디일까? 좋은 시나리오는 이 같은 통화정책으로 경기가 회복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미국의 고용-임금-소득 구조상 임금이 크게 오르거나 주택 가격이 과거 버블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뜻한다.

나쁜 시나리오는 소로스 펀드의 탁월한 시장 전략가였던 스탠리 드럭켄밀러가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2008년처럼 급작스런 시장의 추락(버블 붕괴)이거나, 아니면 인플레이션의 창궐”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시점이 야구로 말하면 7회 또는 8회쯤에 해당한다고 본다. 

세계 최대의 채권펀드인 핌코의 투자전략가인 빌 그로스는 지금이 10부 능선 중 6부쯤이라고 그나마 여유 있는 판단을 내린다. 제3의 시나리오는 선진국들이 이같은 위험을 막기 위해 보호주의 무역으로 급선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1930년대 대공황의 재판을 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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